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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18 포토그램과 사진의 모더니즘





사진잡지「다스 도이츠 리히트빌트 Das Deutsche Lichtbild」의 1927년 창간호에는 랭거-파츠의 에세이 <목적>과 라즐로 모홀리-나기의 에세이 <전례 없는 사진>이 동시에 실렸다. 18세기 중반에 출간된 레싱(Lessing)의 『라오콘(Laocoon)』이 설파한 장르의 독자성, 매체의 특수성의 구현이 모더니즘 미학의 핵심내용이라면, 타 매체와 구분되는 사진의 독자성, 사진만이 갖는 독특한 특성을 주장하는 이 두 글은 사진의 모더니즘을 통보하는 글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특히 모홀리-나기의 글은 사진에 있어서 모더니즘과 1920년대 유럽을 풍미한 아방가르드 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글로 보인다. 레싱의 모더니즘 미학을 자신의 사진적 실험을 정당화하는 묵시적 근거로 삼으면서, 사진을 현재와 다가올 시대의 주역 매체로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 글의 말미를 제외한 전 부분을 읽어보기로 하자.
  사진이 가야 할 길과 목표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모든 글들과 논의는 그릇된 자취를 좇아왔다. 되풀이해서 사진이 접근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지적된 문제는 미술과 사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현실을 기록하는 한 방법으로 분류되느냐, 과학적 탐구의 한 매체로 분류되느냐, 혹은 사라지는 사건들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여겨지느냐, 복제를 위한 기본 프로세스로 여겨지느냐 혹은 “예술”로 분류되느냐에 따라 가치가 증대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이전에 알려진 시각매체들은 사진 프로세스의 어떠한 전례도 갖지 않는다. 그리고 사진은 사진만의 가능성에 의지할 때, 사진의 결과 역시 전례 없는 것이 된다. 이러한 특성들 중 단 하나를 예로 든다면, 빛의 현상을 포착하는 빛과 어둠의 미세한 계조 영역이다. 거기에는 거의 비물질적인 것의 발산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힘을 수립하기에 충분한 듯하다.
  그러나 사진의 주제는 무한히 더 많은 것을 연루시킨다. 오늘날 사진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순수하게 사진적인 방법들로부터 비롯되는 종합적인 사진 작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정확한, 때로는 부정확한 사진 언어를 발전시킨 후에야 진정으로 재능 있는 사진가가 사진을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어떠한 전통적 재현 형태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이리라! 사진은 이를 위해 어떠한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옛 회화든, 오늘날의 회화든 사진이 행할 수 있는 독특한 효과와 견줄 수 없다. 왜 “회화적”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는가? 왜 렘브란트 혹은 피카소를 모방하는가?
  우리는 허황된 과장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가까운 장래에 사진 자체로 세운 목표들이 달성되면 사진에 대해 모두가 훌륭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그러한 탐구는 대개는 분리된 방식이지만 이미 진행 중이다. 그 예를 들어보면,
  빛과 어둠, 즉 밝은 빛의 능동성, 어둠의 수동성의 의식적 활용, 양화상과 음화상 관계의 도치, 보다 강한 콘트라스트의 도입, 다양한 재료의 질감과 모양새, 짜임새의 사용, 알려지지 않은 형태들의 재현 등이다.
  여전히 연구돼야 할 영역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사진적 실천의 새로운 요소들에 맞춰 수립될 수 있다.

1. 사진기를 대각선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위치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낯선 광경들.
2. 여러 다양한 렌즈들의 실험을 통해 정상적인 광경에 익숙한 관계를 바꾸거나 그것들을 못 알아 볼 정도로 왜곡시키기. (오목, 볼록 거울 혹은 요술거울을 사용하는 촬영 등등은 제1 단계들이다.) 이러한 촬영은 기계적 상상력이라는 모순된 말을 야기한다.
3. 한 장의 원판 위에 대상을 완전히 커버하는 이미지 ( 스테레오 사진의 발전된 양상).
4. 새로운 종류의 카메라 설계. 원근법의 단축효과의 회피.
5. 사진의 사용에 반원근법적이며 물체를 투과하는 X-레이 사진의 적용.
6. 감광면 위에 빛을 투사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사진기를 사용하지 않는 사진들.
7. 색에도 진정으로 감광되는 사진
 
 이러한 모든 요소들과 최대한 상호관련을 맺으며 종합하는 작업만이 진정한 사진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사진의 발전은 여러 곳에서 이미 고도로 계발된 새로운 빛의 문화로부터 강력한 동력을 얻고 있다.
  금세기는 빛의 세기이다. 사진은 빛의 전환된 형태로 아마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거의 추상적 형태로나마 빛을 촉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제1의 수단이다.
  영화는 더 멀리 간다. 일반적으로 사진은 영화에서 정점에 도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경험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의 개발은 영화를 통해 보다 더 훌륭하게 성취되었다.
  그러나 정(靜) 사진에 의해 이룩된 기초작업은 영화의 발전에 필수 불가결하다. 이렇게 하여 스승이 학생에게서 교시를 받는 특별한 상호관계가 수립된다. 이 둘은 상호 공동 연구소이다. 사진은 영화를 위한 탐구영역으로서 기능하며, 영화는 사진을 부추기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진은 전례가 없는 이미지
 
인용한 글은 내용상 세 문단으로 나뉜다. 첫 문단은 사진적 재현의 특수성,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이며, 둘째 문단은 ‘전례 없는 이미지’의 생산을 위한 여러 제안들을 열거하며, 셋째 문단은 사진이 ‘빛의 세기’의 제1의 기초를 이루는 재현 매체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모홀리-나기의 사진에 관한 모더니즘은 분명 레싱의 미학론에서 자양분을 길러내고 있었다. 후자의 『라오콘』에 따르면, 시와 회화는 분명한 경계와 자기 영역을 지니고 있다. 시는 언어의 선조성(linearity) -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발화되는 언어의 특성을 말한다 -에 종속된 매체이므로 시간에 따른 행동과 상태의 변화 양상을 기술할 수 있다. 반면, 회화는 재현양상을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계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전체를 동시적으로 (simultaneously) 보여주는 평면예술인 까닭에, 재현 대상의 변모 양상을 시간에 의거하여 묘사할 수 없다. 회화는 특정 순간의 동작, 상태만을 묘사할 수밖에 없는 재현의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16세기 이후 서구를 지배한 매너리즘 미학이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 인용한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Ut pictura poesis)’, 다시 말해 “회화는 말을 하지 않는 시이며, 시는 말하는 회화”라는 슬로건은 매체의 특성, 순수성을 무시한 미학 강령이다.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에 따르면, 시는 회화처럼 눈으로 보는 것처럼 대상을 생생하게 묘사하여야 하며, 회화는 시로 대표되는 문학의 소재를 이야기서술(narration)의 원칙에 의거하여 묘사하여야 한다.
  레싱은 이러한 매너리즘 미학의 매체 특성의 혼용을 시와 회화의 기호학적 특성에 의거하여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시는 시에 내재된 기호학적 특성에 의거하여 생산될 때만 가장 시적일 수 있으며, 회화는 회화에 본질적인 기호양상에 충실할  때 가장 회화적일 수 있다.
  모홀리-나기가 글의 시작을 “이전에 알려진 시각매체들은 사진 프로세스의 어떠한 전례도 갖지 않는다”라고 단언하고, “빛의 현상을 포착하는 빛과 어둠의 미세한 계조 영역”을 사진만이 갖는 본질적 특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진이 이전의 여하한 시각 재현매체와는 다른, 새로운 재현특성을 지닌 시각매체임을 고지하고자 하는 의도의 발현이다. 레싱에 충실한 모홀리-나기의 모더니즘에 따르면, “사진은 사진만의 가능성에 의지할 때”, 즉 사진의 재현적 특징에 전념할 때, “어떠한 전례도 갖지 않는” “사진의 결과 역시 전례 없는 것이 된다”. 사진적 본성에 충실할 때, 어떤 촉각적인 ‘물질성’을 드러내는 데생, 회화, 조각과는 달리, 사진은 “거의 비물질적인 것의 발산처럼 보이는 것”을 가시화하면서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힘을 수립”한다. 따라서 “순수하게 사진적인 방법들”에 의거하여 작업을 행할 때만이, 그의 말을 다시 빌면, 사진이 아닌, “어떠한 전통적 재현 형태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이 될 때만이, 사진도 레싱의 모더니즘에 부합하는 ‘예술’이 될 수 있다. 첫 문단의 말미를 장식하는 흥분된 어조는 레싱의 모더니즘을 전도하는 자의 설교에 다름 아니다. “사진은 이를 위해 어떠한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옛 회화든, 오늘날의 회화든 사진이 행할 수 있는 독특한 효과와 견줄 수 없다. 왜 “회화적”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는가? 왜 렘브란트 혹은 피카소를 모방하는가?”
  모홀리-나기는 이어 “순수하게 사진적인 방법들”에 의거하여 “거의 비물질적인 것의 발산처럼 보이는 것”을 생산하면서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힘을 수립”하는 사진적 ‘실험들’을 열거하는 바, 그것들은 1910년대 후반 이후 기존의 시각 재현양상, 재현 이데올로기를 거부, 전복하고, 새로운 시각질서를 구축하고자 한 유럽의 아방가르드들이 사진을 통해 성취한 성과들이다. 1번의 경우, 다시 말해 “사진기를 대각선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위치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낯선 광경들”은 모홀리-나기의 청년기를 인도했던 러시아 구성주의(Russian Constructivism)가 부르주아적이고, 귀족적인  미술 아카데미즘이 선호한 원근법과 조화, 균형, 통일이라는 구성원칙을 전복하기 위해 개발한 파격적인 사진 구도들이다. 2번의 “여러 다양한 렌즈들의 실험”을 통한 왜곡상은 1920년대 후반, 모홀리-나기와 마찬가지로 헝가리 출신이면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앙드레 케르테츠의 누드 시리즈에 의해 예술적 성과를 이룩한 사진적 재현양상이다. 3번은 분명 초광각 렌즈, 혹은 어안렌즈의 이미지의 양상이며, 4번과 5번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시각 재현의 규범으로 자리잡은 원근법과 이것의 파생양상인 단축효과를 내재화한 일반 사진기의 암상자(camera obscura)를 파기하여, 사진을 통해 ‘전례 없는 이미지’를 얻으려는 시도의 표현이다. 6번은 1920년대 아방 가르드 사진의 표상인 포토그램이다. 이것은 원근법에 의거하여 외부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사진기의 매개 없이 이루어지는 빛의 이미지이다. 감광판이나 감광지 위에 사물들을 직접 올려놓고 빛을 쏘이면 사물의 투명도에 따라 음과 양의 그림자를 남기는 포토그램은 1919년 경 화가인 크리스티앙 샤드(Christian Schad)와 1921년 경 만 레이(Man Ray)가 즐겨 행했던 빛의 이미지로 모홀리-나기와 더불어 ‘포토그램’이란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샤드와 친했던 다다이즘의 수장인 트리스탕 차라(Tristan Tzara)는 샤드를 포토그램의 발명자로 여기고 ‘샤도그래피’라 불렀고, 만 레이는 스스로를 발명자로 자청, ‘레이요그램’이라 불렀지만, 이것은 결코 그들의 발명이 아니었다. 1910년대 이미 여러 사진잡지들은 포토그램을 특집으로 다루었고, 사진을 발명한 탈보트 역시 많은 양의 식물 포토그램을 남겼다. 모홀리-나기가 포토그램을 선호한 것은 이것이 “사진 자체로 세운 목표들”이라고 그가 규정한 양태, 즉 “빛과 어둠, 즉 밝은 빛의 능동성, 어둠의 수동성의 의식적 활용, 양화상과 음화상 관계의 도치, 보다 강한 콘트라스트의 도입, 다양한 재료의 질감과 모양새, 짜임새의 사용, 알려지지 않은 형태들의 재현 등”을 포괄하는 까닭이었다.
 
빛의 세기를 주도하는 시각매체는
사진과 영화
 
그의 포토그램에 관한 애착은 유별난 것이었다. 1929년에 발표된 <포토그램과 인접 기술>에 따르면, “빛의 직접적 형상화”인 포토그램은 “미래의 시각적 창조의 관건”이며, “빛을 물질적이고, 조잡하게 형상화하고, 빛을 간접적으로 물질화하는 옛 사진을 폐기한다”. 그는 ‘옛 사진’ 다시 말해, 사진기에 내재된 원근법에 의거하여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사진을 “현실모사에만 헌신하는 평이하고, 빈약한 사진”으로 규정했고, 포토그램을 “사진작업의 본질인 빛의 글쓰기, 빛의 데생의 구사”로 여겼다. 그리고 사진기의 매개 없이 빛을 직접적으로 투사하여 생겨나는 포토그램을 그가 ‘빛의 세기’라고 규정한 시대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이미지로 확신했다.
  모홀리-나기가 보기에 ‘빛의 세기’를 주도하는 시각 매체는 사진과 영화였다. 빛을 고정시키며, 빛을 형상화하는 사진과 빛의 형상을 투사하여 빛의 움직임을 창출하는 영화는 1923년 모홀리-나기를 바우하우스에 초빙하고, 1928년 모홀리-나기와 함께 자신이 설립한 바우하우스를 떠난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말을 빌면, ‘예술과 테크놀로지를 통합’하는 전형적 매체였다. 그에게는 과거의 여하한 시각매체의 재현방법과 단절을 꾀하는 사진과 영화만이  테크놀로지 시대의 감수성, ‘빛의 시대’의 시각경험을 수용하는 매체로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통적 현실모사의 기계적 재현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새로운 비전을 탐구하는 매체로 사용한다면, 테크놀로지에서 상상력을 길러내며, 기하학적 추상화에 몰두하는 아방가르드 미학을 선도할 수 있다고 모홀리-나기는 확신했다.
  모홀리-나기가 생각하는 사진과 영화의 관계는 상호 보조적이며, 상호 의존적이다. “정(靜) 사진에 의해 이룩된 기초작업은 영화의 발전에 필수 불가결하지만”, “영화는 사진을 부추기는 기능을 수행한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한다면, 사진은 ‘빛의 문화’의 하부구조를 점하고, 영화는 상부구조를 형성한다. 그러나 하부구조가 일방적으로 상부구조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영화라는 상부구조 역시 사진이라는 하부구조를 자극하고, “부추긴다”. 그러나 ‘빛의 문화’ 속에서 하부구조로서의 사진의 기능과 역할은 절대적이다. 사진이라는 ‘기초작업’이 없이는 “영화는 더 멀리” 갈 수 없다. 사실, 영화는 ‘빛의 문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사진 없이는 ‘빛의 문화’는 있을 수 없다. 
  모홀리-나기는 사진을 홀대하는 에르노 칼라이의 1927년 글, <회화와 사진>에 대한 답변에서 사진을 ‘빛의 문화’의 하부구조로 설정하는 유명한 말을 했다. “오늘날 사진은 모든 분야에서 열광적으로 추구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사진에 어떠한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미래에는 문맹이 되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다가올 시대에는 사진은 읽기, 산수와 마찬가지로 학교의 기본과목이 될 것이다. 오늘날 사진애호가들이 갖는 모든 바람들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앞으로는 누구나 배워야 하는 제2의 천성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모홀리-나기의 사진에 관한 본질론은 사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사진의 정수(essence)일 수도 없으며, 또 그가 사진의 특수성, 독자성이라고 간주한 사항만이 사진의 특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다만 그의 주장이 오늘날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사진을 기계적 복제, 복사 수단으로 여기거나 혹은 사진이미지를 회화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 당시 예술계의 일반인식을 불식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는데 있다. 당시 미학의 이론의 중심에 자리잡은 레싱의 매체와 장르의 독립성, 특수성에 관한 주장을 자기의 미학적 논지로 삼으면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당시의 시각문화의 주체로 승격시키려는 모홀리-나기의 정열은 사진역사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중요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
 
글·최봉림(사진역사학 박사)

라즐로 모홀리-나기, <포토그램>, 1925-1929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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