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안아버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9.14 감시와 처벌의 초상
  2. 2011.08.31 사진은 무엇을 재현하는가 ? 3
  3. 2011.08.30 다이안 아버스 : 망각된 존재의 추적





 
알퐁스 베르티옹, <인체측정사진>, 1885년경, 파리경시청.
 
1882년 알퐁스 베르티옹(Alphonse Ber-tillon,1853 - 1914)은 파리 경시청에 범죄자 신원확인부 (le Service d'identite  judiciaire)를 창설하고 사진을 활용한 인체측정술을 도입했다. 이제 모든 용의자는 그들의 신체를 샅샅이 측정하고 조사하는 신상파악에 관련된 일련의 작업에 몸을 내맡겨야 했다. 발, 전박과 중지의 길이, 머리둘레가 측정되었고, 몸의 상처자국, 문신 등이 기록되었다. 코의 형태적 특징, 눈과 머리칼의 색깔도 이견이 뒤따랐지만 상세히 기록되었고, 특히 세월에 따른 변화에 가장 둔감하다고 파악된 귀에 대한 묘사는 각별한 주의가 뒤따랐다. 이러한 시각적 묘사를 완결 짓는 것은 일정한 거리에서 동일한 조명과 동일한 포즈의 조건 속에서 실물의 7분의 1의 크기로 촬영된 정면과 측면의 증명사진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범죄자 신상기록 카드에서 활용되는 정면과 측면에서 찍은 코드화된 증명사진을 병치시키는 방법은 알퐁스 베르티옹의 발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1855년에서 1870년까지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의 사진사로 활동한 필립 포토 (Philippe Potteau)가 파리에 거주하는 외국 원주민과 1862년 알제리 여행시 토착인의 인종학적 연구를 위한 자료를 생산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고안한 방식이었다. 그는 장식적 배경을 제거한 후, 상정할 수 있는 모델의 무표정의 상태에서 “언제나 동일한 거리에서 정면과 측면 순으로 자세를 취하게” 한 후, 동일한 결과물을 양산하는 일련생산 방식으로 그들의 상반신을 기록했다. 사진기는 중성적 배경 앞에서 균일한 산광을 받으며 무표정으로 렌즈를 응시하는 동양인과 북아프리카인들을 정면과 측면에서 고정시켰던 것이다. 어떠한 변화도 용인하지 않는 이 규격화된 촬영방식은 바야흐로 식민지 경영에 소용될 ‘미개인’, ‘야만인’의 인종학적 특성의 비교와 검토, 분류를 위한 자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정면사진과 측면사진의 병치가 인종학 연구를 위한  필립 포토의 독창적 발명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얼굴을 정면과 측면에서 사진으로 기록하고 병치한 예는 인간 얼굴에 나타나는 감정의 표현을 연구하기 위해 이미 1854년 경, 신경생리학자인 뒤센느 드 불로뉴 (Duchenne de Boulogne)의 지도 하에 펠릭스 나다르의 동생, 아드리엥 투르나숑이 「인간 신경생리학의 기제 Me canisme de la physionomie humaine」라는 저술을 위한 자료 초상작업을 행한 바 있었다. 이들 역시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배경 앞에서 균일한 채광을 사용해 한 볼품없는 ‘구두수선공’의 얼굴에 드러나는 이런저런 감정표정에 따른 안면근육의 유형을 정면과 측면의 얼굴사진으로 기록하였다. 그들은 ‘감정표정의 신경생리학’의 양태를 드러내는데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일정한 거리에서 동일한 채광 조건 속에서 정면 사진을 보조하는 선에서 측면 사진을 간헐적으로 사용했다. 물론 뒤센느 드 불로뉴와 아드리엥은 정면과 측면의 병치를 필립 포토처럼 체계적으로, 일관성 있게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필립 포토에 앞서 약호화된 정면과 측면의 증명사진을 시도했다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사실, 누가 최초로 어떤 형식을 발명했고, 그 형식의 기원이 누구에게서 발원한다고 주장하는 실증주의적 연구의 대부분은 그 탄생에 관련된 복잡다단한 역사적 조건을 묵과하는 폐단을 갖는다. 어떤 재현 형식 혹은 어떤 발명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비롯한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시도는 거의 대부분은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관점, 혹은 친족주의적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거나 혹은 과장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한 편견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조차, 그 ‘최초’의 귀속은 또 다른 역사의 ‘발견’에 의해 갱신되고, 수정되는 것이 역사의 일반적 양상이다. 사실, 정면과 측면의 인물사진을 병치시키는 예는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840년대 인종학적 연구자료에서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필립 포토, 혹은 뒤센느 드 불로뉴를 정면과 측면 초상을 병치하는 방법의 기원으로 상정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형식를 가능하게 한 시대의 재현체계, 학문체계를 규명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정면과 측면에서 기록하여 ‘열등’ 인종의 형태학적 특성을 규명하고, 각 감정의 표현에 고유한 안면근육의 변화양태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18세기의 박물학 (natural history)을 지배했던 분류학 (taxonomy)의 여파인 유형학(typology)이다. 식물과 동물의 학문적 분류에 소용되었던 분류학은 19세기의 학문적 사고체계를 지배한 유형학으로 발전하여 19세기의 서구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제 현실을 도식과 도표적 형태로 간편 명료하게 분류하여 통제, 지배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인간과 자연의 제반 연구대상들은 각 부분의 특징적인 유형에 따라 비교, 검토되었다. 분류를 위해 선택된 부분이 동질적인 형태적 혹은 기능적 특성을 발현할 경우 동일 그룹에 묶이고, 차이를 보일 경우 다른 그룹에 할당되었다. 인종학의 경우, 피부색의 동일성과 차이는 분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판별단위를 이루었고, 피부색이 하얀 유태인을 다른 백인종과 구분하기 위해서는 변별기능을 수행하는 다른 얼굴부위를 선택한 후, 일반 백인종과 비교했다. 감정 표현의 분류학의 경우, 눈썹 근육의 수축 여부, 이마 주름살의 전개 방향 등이 각 감정의 유형을 결정짓는 중요한 판별단위였다.
  19세기 유형학의 범위는 너무나 폭넓은 것이어서 초상을 활용한 예만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9세기 초반의 정신병리학은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편집광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형태론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 (Th. Gericault, 1791-1824)에게 1822년경 그들의 초상을 의뢰했다. 사진의 발명과 더불어 유형학은 19세기 후반의 지도학문으로 자리잡는 생물학과 결부되어 편집광적 양상을 띠었다. 19세기 후반의 유형학은 ‘선천적 범죄자’, ‘선천적 정신병자’, 그리고 유태인의 전형적 유형을 사진초상을 활용해 정립하려 시도했다. 인간의 얼굴을 정면과 측면에서 포착하여 이 양자를 병치하는 형식은 따라서 어떤 부류의 전형, 유형(type)을 보다 인지하기 쉽도록 도해하려는 한 시대의 유형학적 사고의 결과물이지, 한 개인의 독창적 발명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경찰 사법부가 범죄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사진의 활용에 주목한 것은 무엇보다도 1832년 범죄자의 몸에 낙인을 찍는 야만적 법령이 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자기의 신분을 끊임없이 숨기고 위장하는 범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에 1839년 발명이 공표된 사진을 간헐적으로 응용하고자 했다. 1850년대 경에는 알퐁스 베르티옹에 의해 1880년대에 완벽을 기하게 되는 신원확인 방법의 초안이 제시되었지만, 그 실행은 회의적인 경찰 수뇌부에 의해 계속 미루어졌다. 경찰 사법부가 사진초상의 효용을 결정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1870년 보-불 전쟁의 패배와 그로 인한 사회혼란의 귀결인 1871년의 파리 코뮌 (Paris Commune)이라는 좌익 혁명 정권의 출현과 함께였다. 파리 서쪽, 베르사이유에 자리잡은 제3공화국의 의회와 정부는 좌파 세력이 장악한 파리를 무력으로 탈환해야 했다. 파리는 피로 물들었고 혁명정부는 72일만에 끝장이 나고 말았다. 파리 코뮌의 주동자 색출을 위한 증빙자료는 무엇보다도 혁명의 흥분 속에서 가담자들이 뽐내며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파리를 점령한 베르사이유의 경찰 사법부는 파리 코뮌을 이끈 정치, 군 지도자들을 색출하는데 수없이 찍혀진 이 기념사진을 이용하였다. 소설가, 플로베르 (G. Flaubert)와 함께 이집트 유적지를 탐사했던 사진가이자 작가이며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적인 막심 뒤 캉 (Maxime du Camp)은 「파리의 발작」(1878-1880)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판화상이나 문구상들의 진열창은 코뮌의 위원, 시 대표자, 군 지도자, 한마디로 말해 반란군의 수령들이 종종 아주 우스꽝스런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들로 뒤덮였다. 그들은 뽐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말단 배우들처럼 그들은 번쩍거리는 옷을 입고 출세한 그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했다. 그것은 아주 심한 경거망동이었다. 이러한 사진은 전부 파리에만 있지 않았다. 많은 사진이 베르사이유로 넘어갔고 후에는 몸을 숨긴 많은 죄인과 불운한 사람들을 색출하는데 소용되었다. 아마도 스스로 자신들을 그렇게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빠져나가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
  경찰로서는 이러한 경험은 전혀 무용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 시기에 경시청에는 사진실이 설치되었고, 이곳은 죄인들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신원파악을 가능하게 했다.” 베르사이유 경시청의 사진사는 으젠느 아페르 (Eugene Appert)였고, 그는 검거된 수백명의 파리 코뮌 가담자들의 초상을 찍었다.
  1880년, 파리 코뮌 가담자들에 대한 사면 조치령이 내려질 때까지, 프랑스 경찰의 주요 일거리의 하나는 코뮌 가담자들의 추적검거와 추방자들의 입국 금지였다. 이를 위해서 경찰서에는 아페르가 찍은 초상사진들이 비치되었고, 감시 목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진에는 모든 가담자들에 대한 신원정보가 수기로 표기되어 있었다. 1874년부터 파리 경시청은 공식적으로 사진부의 창설을 인준했고, 혐의자와 범죄자들의 초상은 알파벳 순서와 죄질의 성격에 따라 분류되었다. 1888년, 파리 경시청 사진부의 수장이 되는 베르티옹은 정면, 측면사진을 병치시키고 이에 눈, 코, 귀, 머리 등에 대한 묘사를 글로 기입하는 ‘말로 된 초상 (portrait pa-rle)’을 첨부하는 베르티옹 신원확인법 (bertillon -nage)을 체계화했다. 1892년, 그의 신원확인법은 무정부주의자 라바숄 (Ravachol)의 검거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그와 동시에 검거자가 이전에 코에니그스텐이라는 이름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인물이라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베르티옹 신원확인법의 정확도와 신뢰도에 대한 인정은 그 절정에 도달했다.
  그러나 베르티옹은 드레퓌스 사건에 연루되어 용의자의 필적 감식에 관여하면서 그의 명성은 오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유태인 장교, 드레퓌스 대위는 군사정보를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 무관에게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었고, 베르티옹은 필적감식을 통해 드레퓌스가 범인이라고 판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판정은 반유태주의의 ‘의도적’ 오류였음이 1899년 드러나게 되자 그의 명성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베르티옹 신원확인법은 신체측정과 ‘말로 된 초상’을 작성하는 복잡다단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차이를 변별하는데 있어서 찰스 다윈의 조카인 인류학자 프란시스 갈톤 (Francis Galton)이 1892년에 쓴 「지문 Finger Prints」이라는 저술이 증거하는 ‘지문채취법’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서서히 입증되기 시작했다. 1900년에 영국 정부는 “사소한 소홀함이나 실행하는 데에 있어 조금이라도 틀리게 하면 관찰의 정확성이 감소되고 계속된 측정에 영향을 미치면서 인체측정 묘사의 신원확인적 가치가 거의 전무 상태에 이르게 될 수 있는” 베르티옹의 신원확인법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1902년에는 베르티옹조차 지문 감식 방법만으로 도둑 쉐페르 사건을 해결한다. 프랑스에서는 베르티옹의 인간적 영향력 하에서 그의 신원확인법이 계속되지만, 1918년, 의학, 약물학, 탄도학, 생물학, 화학 등을 통합하는 과학 수사연구소가 발족되고 지문 채취와 감별이 일반화됨에 따라 베르티옹의 방법은 정면과 측면 사진의 병치법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폐지된다.
  인간의 상징적 표상인 얼굴을 어떠한 우회 없이 냉정하게 재현하는 19세기 다큐멘터리 초상의 억압적 성격이 그 절정에 이르는 베르티옹의 정면, 측면 증명 사진은 전통적인 초상의 기능과 극단적 단절을 꾀한다. 그것은 인종학적, 의학적 다큐멘터리 초상과 더불어, 어떤 실제 개인을 재현하는 수 천년 초상의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현상을 수립한다. 인종학적 자료 초상사진에서 그 재현 형식을 빌어온 경찰 자료로서의 이 초상은 전통적 초상이 간직한 영생과 사후 구원에의 염원과 같은 종교적 문맥은 물론이고 한 개인의 형상, 삶을 기념하고 보전하려는 의도마저 배제된 초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적 멸시와 비난을 초래하는 이 감시와 처벌의 초상은 한 인물을 이상화하고 유미화시키는 전통적 초상의 기능과 정면으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은 이러한 다큐멘터리 초상을 세계의 중심, 즉 서유럽에서  배제되고 정복된 인종들 -유태인, 식민지인- 이나, 부르주아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한 규범에서 벗어난 유형의 인간들 -정신병자, 범죄자 - 을 엄정하게,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삼았다. 그러나 20세기와 더불어, 정확히 거명하면, 아우구스트 잔더 (August Sander)와 더불어, 19세기 다큐멘터리 초상의 객관적 엄격함은 재현 인물과 그의 시대의 가식 없는 실체에 도달하려는 사진작가들의 형식적 접근방식으로 차용되었다. 사진에 고유한 객관적 현실효과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19세기 후반의 다큐멘터리 초상이 확립한 형식코드를 잔더 이후 온전히 참조하기 시작한 작가들은 그러나 그 접근 형식을 주변부의 인물, 비정상적이고 소외된 인물에 적용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상인으로 여겨지는 인물들,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계층에게도 감시와 처벌은 아닐지라도 엄격한 시각적 비교와 검토를 위해 19세기가 발명한 다큐멘터리 초상의 형식을 냉정하게 적용했다. 「미 서부에서 (In the Ameri -can West)」의 리차드 아베든(Richard Avedon), 토마스 루프 (Thomas Ruff)의 대형 증명사진 작업은 그 대표적 위업이다. 반면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는 소외되고 주변적이고 비정상적인 개인들의 기록에 집착했다는 점에서 19세기가 발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초상의 유형학적 작업에 충실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
 
최봉림 (사진역사,  홍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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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테마 사진과 글의 따로 국밥
 
  사람이 살다보면 뭔가 남기고 싶고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갔을 때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 경우라든지, 어떤 상황이 인상적일 때 혹은 괴로울 때 흔히 일기 형식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그때의 심경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흔하고 또한 오랫 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별히 시(詩)적 형식을 빌리지 않는 한 이러한 방법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왜냐면 뭔가 남기고 싶은 대상들이 아쉬움이나 애석함, 무기력하고 허탈한 일종의 공허함, 갑작스런 충동 혹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거나 당해야하는 상황 등 대부분의 경우 사실상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음색(tonalite)이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상황같이 불확실하고 추상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것들을 언어 대신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다소 미술에 소질이 있을 경우 화폭에 자신의 심경을 재현(특히 추상적 방법으로)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표현은 일반적으로 주관적인 번역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사실상 자신도 그러한 표현적 번역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비록 추상적인 것이지만 뭔가 재현할 대상이 있었다는 사실(존재의 형이상학적 대상)인데, 그것은 현상학적으로 말할 때 장님이 추리하는 코끼리의 실체 혹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술에 소질이 없어 카메라로 그것을 재현하려고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 알다시피 특별한 소질이나 기술 없이도 누구나 카메라로 대상을 녹음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인화도 해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방법은 어렵다. 차라리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쉽다. 아니 황당하다. 왜냐하면 카메라는 최소한 찍는 순간만큼은 어떠한 번역도 허락하지 않는 너무나 단순한 기계이면서 동시에 일단 결정된 대상에 대하여서는 무차별하게 기록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작가의 번역 방법은 사실상 파인더로 들어오는 대상의 선택적 방법 외에는 없다.1) 그러나 시각적 재현이라는 장르에서 사진은 오랫동안 그림의 형식에 동화되어 왔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진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타인에게 내 보일 때 전시, 카탈로그, 서명, 판매 등의 최소한 외형적으로 사진을 그림화 하고 또 그러한 사진 작품이 출현했을 때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림의 양식에 따라 작품의 제목과 주제 그리고 적절한 해설(분명한 정답 ?)을 찾는다. 사진 비평 역시 마치 손으로 그려진 그림 이미지에 대한 분석적 담론을 행하듯이 거의 정확히 그림의 비평 양식을 따른다.

  그러나 사진은 근본적으로 미술과 다른 매체다. 우선 그 진행 과정에서 그림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재현하려고 할 때 마치 베틀에서 한 올 한 올 엮어 직조를 하듯이 혹은 벽돌을 쌓아 올리듯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붓 터치의 확산에 의해 완성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림을 이루는 최소 단위를 “조형적 세포”라고 할 때 사진의 경우는 “광자(光子)적 세포”라고 한다.2)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라도 사진을 이루는 세포들은 빛에 의해 동시에 생성되고 또한 동시에 확산되기 때문이다. 그처럼 그림적 사실주의와 사진적 사실주의3)는 본원적으로 서로 다른 출현 조건으로부터 생성되기 때문에 결국 의미적으로도 분명히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림적 사실주의는 세포의 확산에 따른 작가의 필연적인 “번역”을 허락한다.
 
회화의 극사실주의가 말해주듯 작가가 아무리 대상과 똑같이 모사한다 하여도 완성된 그림 이미지에는 최소한의 자신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림은 그 메시지가 객관적 의미를 가지든 혹은 무의미(탈 의미 즉 음영의 불특정 의미)를 암시하든 재현되는 대상 위에서 적어도 의도적인 번역에 의해 완성된다고 할 수 있고, 그때 작가의 예술적 의도와 완성된 이미지와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일 대 일” 대응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그림은 비교적 분명한 회화적인 메시지를 이미 표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보다 정확하고 올바른 작가의 예술적 의도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작품에 첨부되는 비평문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래서 비평은 원칙적으로 작가의 의도와 그 의도로부터 번역된 작품(그림적 사실주의) 사이에서 작품이 표명하는 메시지에 대한 일종의 보조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광자적 세포를 갖는 사진적 사실주의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의도 혹은 번역을 그림처럼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선택된 대상의 절대적 모사(caaete)뒤에서 은닉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진은 번역적 재현이 아닌 함축적 재현이다. 그래서 재현된 사진적 사실주의에서는 그림의 경우와는 달리 작가의 의도가 언제나 이미지의 모호한 함축적 의미 즉 내시(혹은 공시, connotation)의 형태로 나타난다. 쉽게 말해 대상의 절대적 닮음(analogon)만을 갖는 사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그림의 분명한 “일 대 일”의 시각적 번역과는 달리 언제나 찍혀진 대상이 상징하거나 암암리에 객관적으로 약속된 의미 즉 코드의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그림 역시 상징적 메시지를 표명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진은 근본적으로 그 절대적 외시(denotation)로부터 “무엇을 뜻한다” 혹은 “무엇을 상징한다”라는 의미적 코드(symbol)에 묶이게 된다.4) 달리 말해 사진적 메시지는 처음부터 상징이라는 우회적인 틀 속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흔히 작가들은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사진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분명히 인정되는 함축성 즉 공동체적 코드에 동화시키기도 하며, 반대로 관객 역시 이러한 문화적 사회적 코드 속에서 공통된 메시지를 찾으려 한다.
 
사실상 우리는 이러한 사진적 메시지(특히 다큐멘터리 사진)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림과 달리 사진이 쉽게 진부하고 판박이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판박이 혹은 붕어빵의 형상(form)들은 사진이 찍는 자와 찍히는 자 그리고 구경꾼 같은 관객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약속된 메시지(studium)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판박이의 주제는 언제나 모호하고 유동적이다. 왜냐면 아무리 과거에 드물고 특이한 사진 주제라도 오늘날 이미 보편화된 주제(앎)라면 그것은 하나의 붕어빵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왕따”라는 개념은 이미 보편화된 사진적 주제 즉 판박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이 아직 인식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현실에서 징후로서만 나타난(말하자면 음의 세계에서 존재했던) 과거 시대에는 의심할 바 없이 특별한 사진의 주제였을 것이고 아마도 당시 위대한 사진작가(장님)는 자신의 감각적 지팡이로 이미 이러한 개념을 재현했을 것이다.

  사진적 사실주의에서 일반적으로 내시는 이미지가 지시하는 외시의 조건에 달려 있다 : 함축적 메시지인 내시가 증폭되면 사진 메시지는 모호해지고 반대로 축소되면 그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초보적인 현시 광고의 첫 조건은 텍스트를 동원하여 최대한 사진 이미지의 내시를 극소화하는 것인데 내시를 무력화시키는 사진적 조건은 사실주의와 상징주의 그리고 쇼크 사진이다.5) 왜냐하면 광고는 그 속성상 메시지가 누구에게나 즉각적으로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카메라에 담겨지는 함축적인 메시지를 분명히 하면 할수록 사진은 결국 광고와 같이 어떤 목적을 위한 사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익히 약속된 메시지는 사진의 형식적인 측면(조형성, 기술성, 솜씨 등)에서 전통적으로 인정되는 작품성을 가질지는 몰라도 사실상 우리에게 감동은 주지 않는다.6)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감동을 주는 좋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보다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이 빈약한 매체라는 사실은 보다 엄밀히 말해 예술적 표현 방식에 있어 사진적 사실주의는 극히 제한된 매체라는 사실에 관계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예술적 의도와 재현된 이미지가 함축하는 의미와의 관계가 사실상 “일대다수”의 관계를 갖는다는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림적 사실주의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를 외시적으로 표명하고 있지만 사진적 사실주의는 이미지 그 자체인 외시적 메시지 외에 어떠한 시각적 번역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함축적으로 모호한 다수의 번역 가능성만이 내포되어 있을 뿐이다. 그림을 그릴 때 화가는 붉은 사과를 자신의 감정에 따라 파란 사과로 그릴 수 있지만 사진은 단지 붉은 사과만 재현할 뿐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재현된 붉은 사과는 함축적으로 찍혀지는 상황이나 조건 혹은 첨부된 텍스트(주제, 설명, 비평 등) 그리고 관객의 주관적인 관점(지시론적 관점)에 따라 달리 읽혀 질 수 있다.
 
 예컨대 신문에 실리는 많은 보도 사진은 편집자의 의도나 텍스트의 조합에 의해 하나의 의미만을 갖도록 인위적으로 편집된 종속 사진인데, 어떤 경우에는 원래의 사진 메시지가 전혀 다른 메시지로 둔갑되는 경우가 바로 이러한 특수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사진은 그 자체의 외시 만으로 정확한 전달적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코드화(codific -ation)된 형식, 달리 말해 함축적 의미를 최소화시키는 보조적 장치(대표적으로 텍스트의 첨가)가 필요하다(Roland Barthes). 그래서 사진은 근본적으로 조작과 왜곡 혹은 인위적인 의미 변경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사진을 도용하는 현대미술의 주요한 테마들 중 하나).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진과 관객을 이어주는 사진 비평은 마치 신문사의 편집장이 사진이 가진 다변적 의미들 중 자의든 타의든 그의 의도에 가장 적절한 의미만을 노출시키기 위한 편집과 같은 역할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진 비평은 그림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관객으로의 의미적 전달에 거의 절대적 역할을 한다. 더구나 일단 사진과 텍스트가 조합되면 사진의 기록성과 증거성 앞에서 우리들의 “논리적 사고”는 텍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사진은 본원적으로 모호한 전달 매체이기 때문에 비평은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코드화 작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만큼 의미적으로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경우 사진과 글의 관계는 따로 국밥이다.

  또 다른 따로 국밥의 원인은 사진이 작가의 근원적 메시지 즉 음영의 “무의미 혹은 탈 코드”로부터 재현되었을 때 그것에 대한 “코드화된 비평”으로부터 온다. 사진은 함축적 번역만을 허용하기 때문에 작가의 정확한 의도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텍스트(비평)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작가의 사진적 메시지가 코드화된 의식(틀)에서 올수록 비록 그 메시지가 사진의 함축적인 장치 속에 은닉되어 있다 하더라도 비평가나 관객의 의미적인 눈에 그것이 쉽게 읽혀 질 수 있다. 그러나 코드의 영역을 떠난 음의 대상들은 객관적 논리로 코드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특별한 작가의 주관적 해설이나 정확한 비평가의 설명 없이는 사실상 의미적인 코드에 익숙한 관객의 눈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더구나 사진은 절대적인 대상과의 닮음 이외에 어떠한 번역적 재현(그림에서는 가능한)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의 비논리적인 메시지는 더욱 더 은닉되어 있다. 이는 오랫동안 광고나 보도사진 혹은 대중사진과 같이 코드화된 사진 이미지 그리고 그런 비평에 익숙한 우리들의 맹목적인 사진 읽기에도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래 전에 자신의 고향인 시골을 떠나 대도시에 살고 있는 어떤 사진 작가가 대도시의 냉정하고 비정한 인간 관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정 넘치는 시골 노인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카메라로 재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고향에 내려가 고향 노인들을 찍어온 사진들이 있다(도판1). 우선 오늘날 우리들의 객관적인 코드에서 짐작해 볼 때 흔히 노인의 웃는 모습이나 거기서 보이는 몇 남지 않은 이빨과 주름살, 문화의 옷을 입지 않은 할아버지의 남루한 차림새와 때묻은 골동품 같은 물건, 금방이라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상기시키는 할머니의 자연스런 제스처 등에서 풍기는 소박한 이미지일 것이고, 또한 거기서 즉각적으로 “노심(老心)”이라는 서정적이고 추상적인 메시지 즉 하나의 분명한 의미적 코드가 읽혀 질 것이다. 또한 이때 조합되는 비평은 이러한 사진적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코드화된 비평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정작 고향 노인들과 만나 느낀 것은 자신이 찾고자 했던 시골노인의 소박한 인간미가 아닌 뭔가 잘못된 노인들의 비정한 눈초리나 경계의 시선(?)에서 감지되는 형용할 수 없는 모순된 상황이었다. 어쩌면 비교적 교육의 기회와 문화와 접촉이 잦은 대도시의 노인들에게서 오히려 순수한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을 지 모른다 : 오늘날 시골 노인들의 가치관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긴 하루의 고독을 메우는 수단과 또 그들에게 세상 정보를 제공하는 유일한 채널은 사실상 대중 매체 특히 텔레비전 뿐이다. 몇몇 사회적 치부가 단지 우리 사회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사회 전체의 단면인양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엄청난 뉴스와 고발기사의 홍수는 결국 획일화 된 맹목적인 믿음과 잘못된 판단, 물질에 대한 절대적 가치와 숭배 또 그것을 위한 지나친 자기 방어와 타인에 대한 경계 등 변질된 가치관을 그들에게 고착시키게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늘날 대도시의 정신적 병폐 현상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의 이성적 구조에서 시골 노인의 왜곡된 가치관은 쉽게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대도시와 시골이 역전된 듯한 다소 황당하고 모순된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의 눈에 비친 시골 노인의 얼굴은 괴물이었고 이러한 괴물을 재현하기 위해 그는 마치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의 사진처럼 의도적으로 가능한 한 엉뚱하고 이상한 노인의 모습을 찍었다.
 
그러나 이렇게 재현된 사진은 진짜 괴물 같은 노인이 아니라 단지 이상한 노인의 모습일 뿐이다. 왜냐면 미술의 영역에서 이러한 괴물의 재현은 역사적으로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인간 유형의 변태나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인간 실존의 왜곡된 모습과 같이 분명한 시각적 언어로 번역될 수 있지만 사진에서는 특별히 조형적인 요소(조형 사진)를 도입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번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적 실체인 괴물의 사진적 재현은 단지 현실의 자국인 징후(index)로만 가능하다. 이와 같은 자국의 재현이 바로 사진이다. 그래서 음의 세계를 재현한 사진적 이미지를 객관적인 코드의 눈으로 보면 사진은 일종의 수수께끼가 되고, 또한 징후로서 암시된 사진적 메시지를 코드화된 비평으로 설명한다면 사진과 글의 관계는 분명히 따로 국밥이다. 결국 이 작가가 재현하고자 한 괴물은 코드가 없는 하나의 징후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코드화된 정태적 의미가 아닌 진화적인 “동태적 의미”로 이해된다. 이는 곧 음의 세계에 존재하는 진정한 사진의 대상인데 이때 그 존재의 출현을 철학적 용어로 “내재적 형상(La figure immanente)의 재현”이라고 한다. ●

주)
1)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오늘날 비평가들은 사진을 그림과 비교하여 “빈약한 사진(La photogra -phie pauvre)”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진은 그 조형성에 대하여 절대적인 한계를 가진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외시적으로 절대 빈약한 표현 매체임을 시사하고 있다. Dominique Baque, La photographie plasticienne, Regard, Paris, 1998, chapitre I.

2)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Cahier de la photographie, Paris,1987 에서 인용된 용어.

3) 사진(The photograph)은 분류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 흔히 물질(특히 인화지)에 관계하는 반면, 사진적 사실주의(The photographic realism)는 비물질적인 실체로서 사람의 손이 아닌 기계적 방법에 의해 생산된 총괄적인 복사 이미지를 말한다. 예컨대 캔버스에 복사적으로 나타난 사진 이미지나 혹은 디지털 화면에 출현한 사진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사진적 사실주의라고 언급해야 한다. 이는 손에 의해 복사된 그림적 사실주의와의 분명한 구별을 위한 개념적 용어이다. 그러나 사진과 사진적 사실주의는 넓은 의미에서 사실상 동의어로 이해된다. 특징적으로 이러한 비물질적인 실체의 출현은 언제나 종이, 천, 캔버스, 화면 등 물질적인 것을 동반하고 있다.

4) 사진을 대다수의 19세기 사진과 같이 그림을 위한 대상의 복사적 기능(icon)으로 보는 관점은 제외하고 

5) Roland Barthes, L’obtus et l’obvie, Cahier de la photographie,Paris, 1977 참조

6) 엄밀히 말해 이러한 유형의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창조적 의미에서 볼 때 작품성과 예술성은 이론적으로 분명히 다르다. 왜냐하면 적어도 예술은 발견되지 않은 대상에 대한 감각적 추적이기 때문이다(존재론). 감동은 반복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움에서 온다. 감동을 주는 것 혹은 느낌을 주는 것, 그것은 진정한 작가의 예술적 의도다. 그러나 감동을 주는 모든 사진 이미지들을 예술사진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가령 광고지 귀퉁이에서 발견되는 푼크툼는 단지 찍혀진 대상과 관객과의 주관적 관계에서만 이해될 뿐이지 작가의 의도에 의한 모두에게 공유된 메시지는 아니다. 영상 이미지에서 푼크툼과 작가의 예술적 의도는 사실상 별개의 문제이다.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김선희, 낯선 초상 시리즈 중,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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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서 혹은 육교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의 초라하고 측은한 모습들 특히 오늘날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불구를 강조하며 구걸하는 소위 장애인이라는 사람들의 거의 반 폭력적인 행위들,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존재들의 출현에 관해 우선 부정적이다.
 
이와 같이 신체적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경우 소수의 예외적인 존재 혹은 부속적인 걸림돌로 간주되며 결국 우리에게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집단이라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는 우월과 열등이라는 부등호의 원칙이 성립하는데 오랫동안 이러한 원칙에서 소위 가진자의 “동정”이라는 우월적인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동정이라 함은 예컨대 구걸하는 맹인에게 동전을 적선한다든지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 등과 같은 선의적인 제스처들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소외된 자에 대한 의도적인 배려는 사실상 집단과 전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편견과 불평등의 신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행위는 거의 상징적으로 “인본주의”의 명분 아래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 모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강압적인 원칙에 복종되어 있다. 이러한 원칙에는 두 가지 교묘한 지배 논리가 있다 : 하나는 “평등”이라는 집단 우선적인 개념이고 또 하나는 “정상”이라는 모든 대상에 대한 절대적 가치관이다. 원래 평등과 정상은 관용(똘레랑스 tolerance)① 이 아닌 불관용(앵똘레랑스 intolerance) 즉 특정한 집단 이기주의를 위한 마스크이고 계몽의 이성이 낳은 과학적 사고(합리와 경험)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근대 국가 지배 개념의 산물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해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대상들은 그 대상이 훈련된 우리의 인식으로 의식할 수 있든 없든 여하간 “그냥 있는 그대로” 즉 서로 절대 가치의 우위를 측정할 수 없는 불평등한 존재로 출현할 뿐이다. 다시 말해 원래 존재는 “그대로의 출현”이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평등을 빙자한 “민주”와 보편 타당성을 원칙으로 하는 “정상” 다시 말해 어떠한 불순도 허용하지 않는 획일성 혹은 통일성이 강요하는 절대적 흑백 논리는 오직 집단을 위한 이성이라는 시퍼런 칼날을 앞세우는 사변적 폭력으로 간주된다. 오늘날 물질 사회 속에서 특히 유일하게 자본주의만 부화된 한국의 물질만능의 현실에서는 오직 민주와 평등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할 뿐이다. 마치 아메리칸 인디언의 입장에서 볼 때 콜롬부스는 침략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콜롬부스는 언제나 발견자 혹은 정복자(또한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의 우월성)가 되듯이 자신과 다른 상대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 정상과 비정상만 인정하는 흑백 논리의 세상 그것은 바로 평등과 민주에 대한 맹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원래 진보는 소수를 위한 개념적 포용이지 다수를 위한 논리적 반전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러한 개념을 언급해 보자. 종교적 전도라는 명목으로 지하철 안 많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멀쩡한 외모를 가진 어느 독실한 교인의 침튀기는 설교, 오직 기존 정권의 전복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야당 인사의 정치적 폭력, 북한 사회주의 관점에서 본 남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사회를 전복하려는 과격한 노동 파업과 그 연대 투쟁, 이러한 명분과 주장들은 우리의 정상적인 의식에서 마치 지하철 안에서 구걸하는 장애인과 같이 비정상적 존재의 돌출로 간주되며 또한 사실상 거의 설득력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것들은 단지 정상이 의도적으로 구획해 놓은 상대적인 관점일 뿐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진자 혹은 기득권자의 지배논리로 이해되는 동정이 아니라 또한 옳고 그름을 가리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획일화되지 않는 다양한 사변적 “공존”이다. 이러한 공존은 정상과 비정상, 강자와 약자, 혹은 다수와 소수의 존재론적인 일치(관용 혹은 포용)를 말하고 있다 : 예컨대 두 눈을 가진 사람이 외눈박이 세상에서 장애인이 되듯이 정치에서 우파의 눈에는 좌파가 적이 되며 좌파의 관점에서 우파 역시 적이 된다. 또한 심지어 우리가 흔히 위험하다고 하는 소수의 극좌파 혹은 극우파의 지배 이데올로기 안에서 온건파나 중도파의 노선은 오히려 억압되고 망각된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견인데 후설은 “우리는 언제나 중성인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언급하면서 이러한 것의 상황을 이미 암시하고 있다.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들이 누설하는 은밀한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공존” 혹은 “관용”에 있다. 그녀의 많은 사진들이 공통적으로 외시하는 비정상적인 장애인들은 이러한 사변적인 징후를 암시하는 가장 좋은 모델로서 선별되었을 뿐이다. 쉽게 말해 그녀의 사진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회적 지표로서의 다큐멘터리도 아니며 장애인에 대한 사진이 사회적 현상을 고발하면서 또 다른 사진의 사회적 역할을 호소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동정이나 인본주의적 명분을 앞세우는 계몽적 사진은 더욱 더 아니다. 더욱이 우울증이나 강박관념과 같은 자신의 정신분석학적인 성향에 대한 은유적 메시지나 불행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도 아니다. 그녀에게 모델로서 장애인은 흔히 우리가 정상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누락된 존재의 가장 확실한 출현이기 때문에 사진은 단지 의도적으로 또한 노골적으로 이러한 “존재적 진실”을 폭로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나 아버스의 사진들은 서로 대립되는 두 세계의 출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예 : 사진 2). 이성에 의해 규정된 “정상”의 세계(보이는 세계)와 “비정상”의 세계(안 보이는 세계)를 병치하면서 소위 괴물이라고 간주되는 비정상적인 존재들의 출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 신체 불구자, 거인과 난쟁이, 정신박약, 동성연애자, 성전환자 등 마치 생물학적 도감을 보듯이 공통적으로 뭔가 엉뚱한 괴물로 나타난다. 정면으로 출현한 이들은 장애인 이전에 하나의 인간 유형으로 마치 누군가(조물주) 만들어 놓은 피조물로서의 숙명적인 존재로 규정된다(사진 1, 3, 4). 이를 위해 그녀의 촬영방식(거의 50mm 표준 렌즈 / 초기에는 소형 카메라, 60년부터 6 x 6 필름을 사용)은 일반적이고 도식적인 단순한 방식을 하고 있고 또한 그 구성에서도 대칭성과 정면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폭로는 방법적으로 역설적이고 동시에 대조적인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결국 그녀가 포착한 것은 대상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음의 존재들(ombres)이었다. 이러한 존재들은 “이성의 눈으로 볼 때 공통적으로 비정상적이고 산발적(소수)이고 또한 징후적인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이러한 것들은 사회가 규정한 범주 밖의 괴물, 기형, 히피와 같은 비정상적인 존재들 즉 프리크(freaks)들로만 나타난다. 원래 어원학적으로  프릭크는 알려지지 않은, 불명의 혹은 미지의 어떤 것을 지칭하고 그들은 본원적으로 ‘이상한 혹은 엉뚱한 것(oddity)’ 즉 부등의, 부조화의, 기수의, 짝이 맞지 않는, 비스듬한, 삐딱한, 만사가 신통치 않은 불완전한, 부족한 등 공통적으로 어떤 비정상(imparite)에 관계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들은 모두 조물주의 동등한 작품으로 원래 정상적인 존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획일성과 보편성 그리고 타당성이라는 집단적 개념에 의해 소외되고 억압되어 ‘비정상’으로 치부된 것들이다.
 
사실상 정상과 비정상은 상대적인 것이다 : 가령 모두가 왼손잡이인 집단에서 오른손잡이의 출현은 상대적으로 기형의 분류에 속할 것이고 또한 키 작은 난쟁이 집단에서 키 큰 사람 역시 기형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성혼을 원칙으로 하는 집단에서 이성의 결혼은 물론 금지될 것이다. 그와 같이 비정상은 단지 한 집단이 선별적으로 규정한 편견에 의한 것이다.”② 그래서 아버스의 인물들은 단순한 장애인의 유형학적 진술이 아니라 소외된 존재의 누설로 간주된다. 역설적 방법으로 매조키즘(피학대 음란증)적인 비관주의적 시각에서 세상의 ‘추함’을 의도적으로 들추어내는 것은 일종의 불행의 신호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특별히 그녀가 의도적으로 활용한 과도한 플래쉬는 모델을 더욱 더 경직스럽고 인위적이고 순진한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는 낮보다 밤에 오히려 더 많은 기형(oddity)를 생산한다는 유태인의 사고에서 온 논리이기도 하다.

  1971년 여름 그녀가 자신의 집 욕조에서 신경안정제인 바르비투스산제를 먹고 동맥을 끊고 자살하기 얼마 전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창가에서 보이는 뉴욕 센트럴 파크를 인간 동물원이라고 규정하고 거기서 산보 중인 사람들을 마치 각기 다른 동물들의 종족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특별한 시각은 사회학적 관점 이전에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아버스의 사진은 정상적인 우리들의 이성의 눈(코드)으로 이해하기 힘든 작가 자신의 고유한 표현이 있으며 또한 이를 위해 응시자의 눈에 원칙적으로 이러한 시각의 개종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기형인, 늙은이, 정신박약자와 같은 비정상인은 사실상 정상인과 같은 인간 존재의 원초적인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은 단지 집단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한 다수의 보편적 기준에서 그들을 예외적인  존재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신호로서 나타난 그들의 출현은 열등한 종족의 괴물이 아니라 모두에게 감추어진 우리의 ‘이중적인 얼굴’임(Norbert Bernard)과 동시에 오랫동안 망각된 존재의 진실 즉 우리 모두의 ‘증세와 기념비’(Henri Van Lier)가 된다.”③
 
  근본적으로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집단 사회(특히 물질사회)가 규정한 획일적인 가치기준에 대한 의심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경험했던 패션사진 작업에서 발견한 것은 사회적 빈부차이나 물질 만능사회에 대한 체제적인 모순이 아니라 도덕과 관습을 대표로 하는 집단사회가 통일된 지향성을 위해 규정해 놓은 미(넓은 의미에서)적 가치에 대한 편파적 기준이다 : 오랫동안 우리는 이성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불행, 비극, 추함 혹은 소외를 부정하면서 언제나 인간조건의 이상적인 조화와 긍정적인 시각에 익숙하여 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것은 사회가 추구하는 우상이나 모델을 위한 강압적인 규범으로 사실상 반쪽 세상의 불관용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불행의 신호로 간주되는 비 정상인을 모델로 하여 그녀가 생물학적 관상학적 방법으로 세상의 추함과 불행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은 역설적으로 앞서 말한 억압된 존재의 폭로로 볼 수 있다.”④ 그것들은 이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오늘날 시뮬라크르임과 동시에 하나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
 
<주요 참고 도서>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김희숙 정보라 옮김, 똘레랑스, 길, 2000. (참고 : 임지현 평, 동아일보)
Doon Arbus, Diane Arbus, Aperture, New York, 1972.
Regis Durand, La part de l'ombre, Essais sur l'experience photographique, La Diffrence, Paris, 1990.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Cahier de la photographie, Paris, 1987.
La photographie comme destruction, Universite de Provence, Arles, 1993.
Diane Arbus Sans Titre, Aperture/Edition de La Martiniere, New York/Paris, 1995.
Diane Arbus, Photoraphe de presse, Aperture/Herscher, New York/Paris, 1984.
 
주)
① 똘레랑스(tolerance, 라틴어 tolerare)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무엇을 “지탱한다 혹은 감수한다(supporter)”라는 뜻에서 유래한 외래어로 이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관용”이라는 단어로 번역될 수 있다. 흔히 관용은 사전적 의미로 남에게 베푸는 너그러움이나 자선이라는 다소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개념으로 이해되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동양의 미덕을 상기시키는 단어이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개념은 어떠한 억압된 상황에 묶인 무엇에 대한 “허용”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앵똘레랑스(불관용, intolerance)”는 일반적으로 지배적이고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보다 엄밀한 단어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외래어(불어)인 “똘레랑스”는 우리의 전통적 계급사회에서 통용되었던 “관용”의 개념과는 다소 의미적인 차이를 보인다. 오랫동안 우리의 가부장적 사고에서 특히 유교문화의 미덕이라는 개념에서 이해되는 동양의 관용은 우선 가진자 혹은 지배자를 말하는 베푸는 주체와 그 수혜자인 객체와의 분명한 계급체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부처님이 베푸는 자비, 주인이 죄지은 하인이나 구속된 자들에게 주는 사면, 혹은 가진자들이 서민들을 위해 만든 빈민구제 제도 등에서 볼 수 있는 동양의 “관용”은 절대자 혹은 지배자의 선행이 피지배자에 대한 “동정”으로 행하는 일방적인 진행을 가지며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평등적인 계급체제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양의 똘레랑스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사고방식 혹은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행동의 자유를 “존중한다”라는 뜻이며 적용되는 두 개체 사이에서 주체와 객체는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물론 “불관용”은 이와 반대로 언제나 타자와의 구별 속에서 자신의 주체를 모든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놓는 절대적인 개념이다 :  일반적으로 서양의 입장에서 발견자로 기록되는 콜롬부스가 당시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의 상대적 입장에서는 침략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니체의 상대적 이론)은 이러한 관용의 상대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두 개체 사이의 똘레랑스 개념은 계급관계가 아니라 평등관계 즉 동등한 두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그 철학적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소외된 개체의 존재론적 인정(승인)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두 개체 사이의 계급관계에서 야기되는 동정이나 자선 혹은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미덕이 아니라 동등한 수평관계에서 이해되는 “상호 존재의 일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경률, “똘레랑스와 사진”, 사진비평, 2001년 가을호, 타임스페이스, 서울.

② 같은 책.

③ 같은 책.

④ 다시 말해 그들의 흑백논리에서 이러한 소외된 존재들은 비정상적인 존재들이다. 결국 물질과 집단을 배경으로 하는 양의 세계에서 인정하는 보편적 대상들을 정상이라 규정하고 역으로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난 소수의 비정상적인 대상들을 괴물로 간주하여 억압하고 멸시하고 소외시키는 편견적 사고를 불관용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관용은 상대적인 관점으로 이러한 비정상적인 것들을 인정하면서 정상과 비정상의 공존 즉 존재의 다양성을 원칙으로 하는 포괄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전자의 시각을 통일된 하나의 논리만을 인정하는 “존재의 획일성”에 관계된다는 의미에서 “불연속(discontinuite)”이라고 하며 반대로 후자의 경우는 보이는 세계를 관통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투시한다는 의미에서 “연속(continuite)”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조르주 바타이유) 또한 넓은 의미에서 “망각된 존재의 추적”이라고도 한다(마르틴 하이데그). (집단사회가 강요한 미적 추종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는 “추의 예찬”은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눌프 라이너(Arnulf Rainer)의 “복개(couvering)”작업에서 분명히 설명된다) 같은 책.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사진 1) 호텔 방에서 타올을 덮은 멕시코인, 1970
(사진 2) 뉴욕 브루클린 젊은 가족의 일요일 나들이, 1966
(사진 3) 뉴욕 100번지 거실의 러시아 난쟁이들, 1963
(사진 4) 뉴욕 20번지 집에서 파마를 한 젊은이,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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