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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다큐-NewYork

2011. 10. 5. 20:40 from 레크레이션








공허와 열정이 공존하는 도시 


 



 


 하늘이 높아지고 쾌청한 바람이 불 때면 대책 없이 방치해 두었던 향수병처럼 문득 그리워지는 것이 있다. 상쾌한 공기 냄새만으로도 그리워지는 그것은, 푸르름과 웅장한 경치를 자랑하는 절경도 아니고,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시원한 바닷가도 아니다. 높은 빌딩숲의 대명사이자 맨하탄을 품고 세계의 수도라고도 불리는 뉴욕이 바로 그것이다. 너무 아름다워 영화 속 배경으로 많이 등장하는 뉴욕의 가을과 겨울은 아직 경험도 못 해봤지만 내 머리 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는 뉴욕의 이른 봄, 공기 냄새는 그것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곤 한다. 뉴욕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일 정도로 세계의 대표적인 도시로 알려져 있다. 9.11사태 이후 더욱 더 주목 받게 되었지만 까다로운 미국 비자의 발급과 입국 심사로 인하여 뉴욕행 길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뉴욕은 뉴욕이다


뉴욕행 일정이 잡히고 이런저런 자료를 모아 공부하며 여행 준비를 했으나 막상 뉴욕에 도착하고 나니 거대한 도시의 에너지와 엄청난 공간감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빌딩들이 숲을 이루는 큰 도시였지만 공기는 맑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한 거리에 뉴욕에서의 첫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우선 업 타운에서 브로드웨이를 따라 미드타운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브로드웨이라는 거리의 이름은 쇼비지니스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알려져 있으나 뉴욕의 북쪽인 할렘지역에서부터 세계무역센터가 있었던 남쪽의 로어맨하탄까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리의 이름이다. 브로드웨이의 도로 중앙에 있는 화단에는 꽃과 나무들이 잘 조성되어 있고 화단 아래 지하에는 지하철이 다닌다. 거리와 교차되는 곳마다 설치된 벤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커피나 샌드위치를 즐기며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고, 허공에 줄로만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신호등이 불안하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한산한 거리를 낡은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스냅 촬영을 해 가며 거리 풍경을 즐겼다. 유명 명소만을 바삐 몰려다니며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딱딱하게 움직여야 하는 스타일의 여행을 싫어해서인지 내 의지로 갈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이국적인 거리 풍경 하나하나는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큰 빌딩 숲이 전부인지 알았던 도시의 내면을 차분하게 바라보게 되면서 피상적인 이미지는 조금씩 깨어지고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모두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들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다양한 문화의 공존은 뉴욕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주었다. 다운타운의 어느 유명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겉보기에도 도시와는 잘 섞이지 못할 것같이 순박해 보이는 커플은 한 눈에 보아도 미국의 소도시에서 뉴욕으로 신혼여행을 온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경이로워하는 모습은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온 나 만큼이나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는 것이 표정에 숨김없이 드러났다. 그만큼 뉴욕은 특별했다. 두 번째 뉴욕에 다녀와서야 느낀 것이지만 뉴욕에서는 전형적인 미국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뉴욕은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 속의 도시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다 민족들이 재창조해 만들어낸 복합적 문화를 지닌 코스모폴리탄 도시이고 그렇기 때문에 뉴욕은 어떤 한 나라에만 국한시킬 수 없는 국제적 독립 도시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4달러에 팔려진 섬


뉴욕은 브루클린, 퀸스, 스테이튼섬, 브롱크스 그리고 맨하탄 등 크게 다섯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뉴욕은 주요 관광지와 빌딩들이 모여있는 맨하탄이다. 뉴욕은 1602년 인도무역을 위한 항로 개척하고 있던 네델란드인 헨리 허드슨에 의해 발견되었고, 1626년 당시 네델란드의 총독인 피터 미누이트는 원주민인 인디언으로부터 옷감 등 24달러 상당의 물품을 주고 맨하탄섬을 사드렸다. 이 역사적인 거래가 이루어졌던 장소가 로어맨하탄에 있는 배터리파크이다. 1664년 영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맨하탄은 영국에게 넘어갔으며 당시 국왕 찰스2세의 동생 요크공의 영주 식민지가 되면서 ‘뉴욕’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그뒤 100여년이 더 지난 뒤인 1781년 미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787년 미합중국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취임했던 당시의 수도가 뉴욕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번영과 대공황을 거치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 이후 세계의 중심이 된 뉴욕은 미국의 경제, 금융, 문화의 중심이며, 세계의 수도라 불리고 있다.


 


도심 속 오아시스


두 번째 방문이어서 그런지 익숙한 길거리 곳곳의 낯익은 풍경이 반갑기만 했다. 뉴욕은 도시계획이 잘 돼 있다.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은 도로인 에비뉴와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도로인 스트릿이 바둑판처럼 교차하고 있어 길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쉽게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다.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마다 에비뉴라는 이름과 몇 번째 거리인지를 나타내는 표지판이 잘 정리되어 있어 표지판만 보며 걷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치장된 도시의 겉모습 보다는 도시 안쪽의 평범한 길거리의 풍부한 표정들과 뉴요커들의 평범한 생활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중에서 업타운 쪽의 거리를 몇 번씩 반복해 걸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원래부터 살고 있었던 곳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맨하탄은 남북으로 길게 생긴 섬이다. 동쪽으로 이스트강과 서쪽으로 허드슨강, 북쪽은 할렘강 남쪽은 대서양이다. 지도 없이 처음 맨하탄을 걷게 되더라도 반드이 만나게 되는 엄청난 규모의 공원이 있다. 바로 유명한 센트럴 파크이다. 황폐한 쓰레기처리장이었던 그곳을 남북 4킬로미터, 동서 1킬로미터 규모의 아름다운 공원으로 만들었다. 공원에는 한 아름이나 되는 나무들이 녹음을 이루고, 곳곳에 호수와 연못들이 있어 도심 속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잘 가꾸어진 잔디에는 자유롭게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연인들과 가족들로 넘쳐났고 산책로에는 조깅하는 사람이나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성시를 이뤄 여유로움과 자유가 한층 더 느껴졌다. 가끔 운이 좋을 때면 소년들의 야구게임을 볼 수 있는 등 다양한 종류의 인종들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숲이 우거진 곳이나 인적이 뜸한 곳은 조심해야 한다. 하루는 공원 안에서 휴식을 취하다 굵은 소나기가 갑자기 내려 공원을 빠져나와 비를 피했었는데 그날 저녁 식사 중에 우연히 보게 된 뉴스에선 그 날 오후 센트럴파크에서 있었던 강간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뉴욕은 가시를 지닌 장미처럼 향기로운 매력 속에 돌발적인 위험을 내포한 도시라는 생각을 다시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영원한 이방인 뉴요커


시간은 어느덧 한 달이 흘러 뉴욕생활에도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만나게 되는 관광객들이 재미있어질 때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이었다. 관광객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듯 똑같은 표정을 짓고, 똑같은 옷차림으로 돌아다녔는데, 얼마전까지 나 자신도 저런 표정으로 돌아다녔을 생각을 하니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관광객과 뉴요커들이 구분이 되고 거리의 풍경들도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을 때, 뉴욕을 사진에 담고자 했었던 처음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엇을 찍어야 할지 점점 고민만 깊어가고 있었다.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보이는 맨하탄의 빌딩들은 멋있지만 그것 자체가 더 이상의 감동을 주지는 않았다. 그때 즈음 도시 자체가 호흡처럼 내뿜는 느낌들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뉴요커, 먼 곳으로부터 떠나온 사람들, 다시 돌아가기엔 어쩌면 너무 멀리 떠나온 사람들에 의해 재건설된 인공적인 고향. 그들이 하루하루 일상을 묻고 꿈을 꾸고 혹은 꿈을 접고 살아가는, 설명하기 어려운 강한 에너지들이 넘쳐나는 다민족 공동체의 작은 별나라 뉴욕. 그곳은 내겐 경이로웠지만 생각해 보면 이유는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화려한 네온사인들도 하늘을 찌를 듯한 스카이라인 때문도 아닌, 크고 화려한 도시가 내뿜는 알 수 없는 공허감과 함께 공존하던 열정 때문은 아닐까? 뜨거움과 차가움, 삶의 열정과 삶의 공허, 자유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도시. 꿈이 잠들지 못 하는 도시.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내뿜는 호흡들이 그들과 그들의 별을 잊고 쳇바퀴처럼 일상에 젖어 살아가는 나를 가끔씩 뒤흔드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사진 이창석 (월간사진 2005년 10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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