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깁슨은 거의 언제나 ‘결정적’ 세부에 주의를 집중한다. 그 세부를 ‘결정’하는 것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Cartier Bresson의 ‘결정적 순간’처럼 작가의 대상에 대한 직관력, 섬광처럼 빛나는 구성감각, 빛과 어둠의 효과에 대한 순간적 판단 등이다. 그런데 세부의 상황에 시선을 집중하는 랄프 깁슨의 프레이밍은 대부분 파격적이다. 대상을 과감하게 절단하거나, 예기치 않은 각도에서 다가선다. 그 결과 파편적 형상의 ‘정체성 identity`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지연시킨다. 작가가 부여한 제목을 보고, 주어진 이미지의 형상과 문맥을 해독한 후에 랄프 깁슨의 카메라 앵글, 그리고 대상과의 거리를 추측한 후, 이미지의 상황을 유추해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진 찍는 작가의 사진적 정황, 피사체의 환경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인지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피사체의 전모와 작가의 카메라 워크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들은 대개 랄프 깁슨의 B급 사진일 뿐이다. 그의 걸작들은 거의 대부분, 피사체의 정체성과 사진적 상황을 파악하려는 욕구를 혼돈에 빠뜨린다. 해답 없는 의문, 불확실한 대답을 연장시키면서 논리적 이성을 기능 장애에 이르게 한다. 그의 탁월한 이미지들은 피사체의 의미와 이미지의 상황을 이해 불능은 아닐지라도, 불확실의 상태로 만드는 파편의 이미지이며, 확실한 의미를 지향하는 이성을 불안하게 만드는 트라우마 trauma의 이미지인 것이다.
의미의 불확실성, 우리의 인식능력에 불안감을 안겨주는 랄프 깁슨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파격적인 카메라 워크는 그러나 결코 일탈의 자유, 무질서한 프레이밍에 휩쓸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의 결정적 세부는 즉흥적 감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전주의적 규범, 현실을 엄정하게 바라보는 기하학적 정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일탈적인 구도, 예외적인 구성을 사진의 목표로 삼지만, 그의 프레이밍은 기하학적 균형, 엄격한 공간구획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우연에 내맡긴 일탈적 구도, 사물의 우발적 포착은 결코 랄프 깁슨을 규정하는 어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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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은 초현실주의적 몽환을 기도할 때조차, 혹은 육감적인 여체일 경우조차 냉정함, 엄격함,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따라서 랄프 깁슨은 모순 어법을 수용한다. 그의 사진예술은 ‘냉정한’ 일탈, ‘엄격한’ 파격이며, ‘정제된’ 꿈의 세계, ‘절제된’ 에로티시즘이다. 미니멀리즘 Minimalism의 간결함으로 몽환의 세계를 포착하며, 고전주의적 균형감각으로 비근한 일상을 구획하며, 기하학적 추상으로 여체를 재단한다. 작가가 1969년에 설립한 출판사, 러스트럼 Lustrum에서 출간되어 큰 성공을 거둔 그의 흑백 사진 삼부작, 즉「몽유병자 The Somnambulist」(1970), 「데자뷰 Deja-vu」(1973), 그리고「바다에서 보낸 나날 Days at Sea」(1974)은 랄프 깁슨의 극단적인 클 로즈업, 파격적인 카메라 워크가 고전주의적 절도, 미니멀리즘의 간결함, 기하학적 추상의 엄격함과 기이한 짝을 이룬 예술사진의 희귀한 성공들이다. 한마디로 말해, 불완전한 일상의 조각, 인체의 극단적인 파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엄정한 조화, 단단한 균형, 절제된 통일성을 구현한다. |
남성이 공유하는 페티시즘 fetishism, 보다 정확히 말하면, 랄프 깁슨의 페티시즘의 감각들을 보여주는「왕녀 Infanta」(1995) 시리즈는 강력한 성적 욕망의 시선조차 그의 엄정한 사진미학으로 통제하려는 극단적 시도로 보여진다. 여성 인체의 세부를 거의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환원시키면서, 그의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스타킹, 손톱, 허벅지, 입술을 미학적으로 통제하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 그의 욕망을 기하학적 추상의 미학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욕망을 자극하는 세부의 강도가 작가의 미학적 통제력을 넘어설 때면, 여인의 육체는 무정형적인 유체 amorphous fluid의 모습을 띤다. 작가가 여체 탐구에서 흔히 모델의 머리를 제거하는 것도 그의 리비도의 강도와 깊은 관련을 맺는 듯하다. 이성과 지성을 상징하는 얼굴을 절단하고, 욕망을 통제하고 지휘하는 신체기관인 머리를 어둠 속에 가둬버린 것은 그의 페티시즘에 구속 없이 몰입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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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둠과 그림자는 랄프 깁슨에게 있어서 그의 강력하고도 간결한 사진적 구성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왜냐하면 “프레임이 압박할 때까지, 북의 가죽처럼 탄탄해질 때까지” 불필요한 현실을 빼버리는 작가에게 있어서, 즉 현실의 최소한으로 사진을 구성하려는 작가에게 있어서, 어둠과 그림자는 “원치 않는 현실의 많은 요소”들을 제거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작가가 보기에 그림자는 불필요한 현실을 뺄 뿐만 아니라, 형상을 창조한다. “그림자는 단지 빛의 변형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림자는 형태를 두드러지게 하며, 형상이 된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그림자와 어둠은 그의 사진예술에서 빛보다 오히려 중요하다. 따라서「명암대조 Chiaroscuro」(1990)는 그의 전 사진작품을 관류하는 특징이다. 깊은 그림자는 작가의 비근한 일상의 사물을 의미심장한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며, 어둠은 그의 일상적 현실을 초현실주의적 몽환의 세계로, 그리고 여성의 평범한 육체를 강력한 페티시즘의 대상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랄프 깁슨에게 있어서 사진은 빛의 예술이 아니라, 어둠의 예술인 셈이다. |
어둠과 깊은 그림자에 대한 집착,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피사체를 그 정체성이 애매모호할 때까지, 그러나 기하학적 균형에 도달할 때까지 압박하는 그의 경향은 그의 칼라작업에서도 계속된다. 랄프 깁슨은 칼라사진에서도 거의 언제나 ‘결정적 세부’에 주의를 집중한다. 그리고 그 결정적 세부의 구획은, 흑백사진처럼 작가의 직관력, 섬광처럼 빛나는 구성감각, 빛과 어둠의 효과에 대한 순간적 판단에 의존한다. 강렬한 흑백의 대립이 화려한 색상의 대비로 바뀌었을 뿐, 세부의 상황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일상의 현실을 낯선 새로움으로 바꾸는 랄프 깁슨의 프레이밍은 칼라사진에서도 변함이 없다. 그의 흑백사진 삼부작에서 보여줬던 사진적 특성들은 칼라사진에서도 그렇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