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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1.09.15 알버트 랭거 - 파츠의 『세계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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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15. 20:30 from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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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거-파츠 (1897-1966)는 라즐로 모홀리-나기와 더불어, 그러나 사진 경향에 있어서는 그의 대척점에서 1920년대 독일 사진계의 흐름을 주도한 주요 인물이다.
  헝가리 출신의 모홀리-나기가 뉴 비전(New Vision)의 선봉장이 된다면, 랭거-파츠는 신객관주의(Neue Sachlichkeit)라는 사진경향을 주도했다. 뉴 비전과 신객관주의는 사진매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나, 의도하는 재현양상에 있어서 철저하게 대립했다. 바우하우스를 근거지로 한 모홀리-나기는 사진매체를 언제나 아마추어의 유희정신과 예술적 자유의 구현 수단으로 접근한 반면, 폴크방 아우리가 (Folkwang und Auriga) 출판사에서 자료사진을 담당했던 랭거-파츠는 철저한 사진전문인으로서, 완벽하게 사진기술을 마스터한 장인으로서 사진매체를 대했다. 헝가리 출신의 아티스트는 종전의 어떠한 회화작업도 창출할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이미지를 빛의 감광성과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여 계발하는데 주력하였지만, 랭거-파츠는 식물과 건축 자료사진, 공업제품 사진의 조형적 탐구에 전념했다. 모홀리-나기는 사진을 현실의 복제수단으로 고려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제약 없는 이미지 실험의 영역으로 여긴 반면, 랭거-파츠는 기록의 순수성에 의거하여 형태미의 탐색에 몰두했다.
  랭거-파츠는 1927년, 사진잡지 「다스 도이츠 리히트빌트 Das Deutsche Lichtbild」의 창간호에 실린 에세이 <목적 Ziele>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엄정하게 기록하는 리얼리즘과 형태와 물질에 대한 객관적 재현을 사진의 임무로 삼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회화적’ 사진과 단호한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회화적’ 사진은 단지 인상주의의 화풍과 소재를 사진적 재현의 모델로 삼은  ‘회화주의(pictorialism)’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적, 역사적, 문학적 주제를 미술아카데미가 존중하는 형식적 규범을 본받아 행한 구스타브 레일랜더, 헨리 피치 로빈슨의 ‘조합인화(combination printing)’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사진에 고유한 도구들을 가지고 회화와 유사한 효과를 구하려 하는 것은 사진만이 갖는 방법, 재료, 테크닉의 특성과 사진만이 갖는 진실성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보자.
  좋은 사진의 비밀, 사진이 조형예술 작품에 견주어 소유할 수 있는 예술적 특성은 사진적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진은 자연, 식물, 동물, 건축과 조각 작품, 엔지니어와 기술자의 생산품에서 우리가 경험한 인상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도구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이 물질의 신비로운 힘을 재생하는 가능성에 대해 너무나 과소 평가한다. 나무와 돌, 금속의 구조는 사진만의 독특함 속에서 조형예술의 여하한 방법으로도 행할 수 없는 완벽함으로 재현된다. 우리는 사진 덕분에 아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높이와 깊이감을 표현하며, 극도로 빠른 움직임을 분석하고 재현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 권위로 자리잡았다. 
  오직 사진만이 현대 기술의 엄격한 선형 구조, 공중을 가로지르는 기중기와 다리의 철골조, 천 마력을 지닌 기계의 역동성을 적절하게 이미지로 번역할 수 있다. '회화적' 스타일에 집착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사진의 이러한 특성, 다시 말해 형태의 기계적 재현을 일종의 결함으로 치부하지만, 실은 이것이 사진이 다른 모든 표현수단을 능가하게 만드는 것이다. 형태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가장 밝은 빛에서 가장 어두운 부위까지 아주 섬세하게 드러내는 기술적으로 성공한 사진원판은 우리의 시각적 경험을 마술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예술은 예술가에게 맡기고, 사진도구로는 사진적 특성 덕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사진을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예술에서 어떠한 것도 빌려옴 없이. 
  사진의 특성은, 랭거-파츠에 따르면, 사물의 형상을 정확하게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다. 대상이 자연의 산물이건, 산업생산물이건, 건축물이건 그것을 변형, 왜곡시킴 없이 묘사하는 것이다. 주관성, 상상력, 예술적 의도에 의해 현실의 대상을 변형하지 않고, 사진도구의 ‘기계적’ 재현을 전폭적으로 수용할 때 사진만의 특성은 구현된다. 이때 사물의 ‘신비로운’ 형태는 완벽하게 전사되고, 사진의 흑백 계조도는 재현대상의 “가장 밝은 빛에서 가장 어두운 부위까지 아주 섬세하게 드러낸다.”
  분명 랭거-파츠의 위의 진술은 예술사진의 ‘회화적’ 경향에서 탈피하려는 유럽과 미국의 사진예술의 전반적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1920년대에 새로운 예술사진을 도모한 사진가들은 회화주의를 포함한 '회화적' 사진을 사진의 독자성, 자율성을 사장(死藏)하는 경향으로 받아들였고, 해서 사진만이 갖는 특성을 모색하여 회화에의 종속성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다시 말해 당시의 사진가들은 회화와 구별되는 가장 ‘사진적인’ 특성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실험했다. 미국의 사진가들이 행한 이러한 사진경향에는 스트레이트 사진이란 명칭이 부여됐고, 독일의 사진가들이 추구한 사진의 특질에 대한 탐구에는 신객관주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두 사진경향은 사회적,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재현양상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차이를 가져왔지만, ‘회화적’ 사진과 확연히 구별되면서, 사진만이 갖는 특성을 실현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일란성 쌍둥이다. 즉, 스트레이트 사진과 신객관주의는 섬세한 세부묘사, 빛과 음영의 계조도에 따른 섬세한 재현, 육안의 능력을 뛰어넘는 깊은 심도감을 사진적 재현의 특질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상정하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교차점을 가정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의 스트레이트 사진의 주제는 현실세계의 역동성과 조화로움에 대한 조형적 탐구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도시의 거리, 자연의 세계, 인공물, 건축물, 신체의 세부 등 스트레이트 사진가들이 다룬 사진의 소재는 광범위하고 다양했지만, 세계의 형상은 조화로우며, 세계 속의 인간은 숨을 잘 쉬도록 만들어졌다는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폴 스트랜드, 스티글리츠, 이모겐 커닝햄, 앤젤 아담스 등 대부분의 스트레이트 사진가들은 독특한 개성으로 대상들에 접근했지만,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로움, 역동적인 삶과 조형적인 신체의 재현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는 법은 거의 없었다. 1920년대 미국의 스트레이트 사진가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세계를 무한한 가능성의 땅으로 받아들였고, 번영을 구가하는 신생대국의 삶을 사는 낙관적 면모를 직접적이고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과 기계문명이 모순적으로 대립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과 환경이 불협화음의 관계 속에 있는 사진적 재현은 스트레이트 사진 저 멀리에 있다.
  반면 독일의 신객관주의 사진을 대변하는 랭거-파츠의 사진은 거역할 수 없는 기계문명으로의 이전을 부정적으로 수긍한다. 자연이 삶의 환경에서 쇠퇴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기술문명의 지배를 불가피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다. “현대 기술의 엄격한 선형 구조, 공중을 가로지르는 기중기와 다리의 철골조, 천 마력을 지닌 기계의 역동성”은 휘트먼적 예찬의 성격을 띠기보다는 자연을 압도하고, 인간의 삶을 지배하러 다가오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산업생산물, 인공구조물의 역동성은 냉엄하고 위압적이다. 랭거-파츠가 클로즈-업한 식물과 동물의 세부의 반복 양상은 도래한 기계문명에 길들여지고 동화된 자연을 암시한다. 꽃잎과 뱀 비늘의 조형적이고 유기체적인 반복은 자연스런 조화, 조화로운 자연의 이미지라기보다는 합리주의적 기술문명에 의해 조직되고, 통제된 질서에 종속된 양상을 띤다. 자연의 대상물은 극단적 클로즈-업을 통해 조각나고 고립되어져,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물이 지배하기 시작하는 세계 속에서 활력을 잃은 채 박제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아마도 1차 세계대전 (1914-1918)이 보여준 기술문명의 파괴적 양상에 대한 충격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 과학기술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세계에 대한  정신분열적 인식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립과 더불어 시작된  독일의 정치적 혼란, 실업과 같은 경제란을 내면화한 양상으로 보여진다.   
  ‘회화적’ 사진을 거부하고 사진의 특성을 구현하면서, “자연, 식물, 동물, 건축과 조각 작품, 엔지니어와 기술자의 생산품에서 우리가 경험한 인상을” 작가의 주관성, 상상력, 감성을 최대한 지우면서 사물 자체의 ‘객관적’ 인식, 사물 자체의 현존을 드러내는 랭거-파츠의 작업은 1928년 출판된다. 랭거-파츠는 어떤 수사적 요소가 없는, 그야말로 ‘객관적인’ 책제목으로 ‘사물 (Die Dinge)’을 생각했지만, 출판사 측은 『세계는 아름답다 Die Welt Ist Schon』라는 아주 낭만적인 책 제목을 선택한다. 근접촬영과 심도 깊은 이미지를 가장 주된 특징으로 삼는 100장의 이미지로 된 이 사진집은 엄청난 성공을 경험하면서 사진가에게  전례 없는 명성을 가져다준다. 이에 따라 그의 사진 기법을 추종하는 사진가들이 생겨났고, 그의 작품집을 칭송하는 여러 논평과 아울러 예외적이지만 강력한 비난이 뒤따랐다.
  당시 유명한 사진 연간지 「다스 도이치 리히트빌트 Das Deutsche Lichtbild」의 1927년도 창간호의 편집을 맡았던 한스 빈디쉬(Hans Windisch)는 1928/1929년 합본호에서 인용한 랭거-파츠의 사진을 ‘자연의 다큐먼트’로 정의하면서 이 규정에 부합하는 사진들을 이렇게 높이 샀다. “이번 호가 분명하게 혹은 암시적으로나마 증명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 그것은 자연의 다큐먼트에는 형태에 대한 개인적 감성, 따라서 예술적 감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다큐먼트에서 우리는 사진 행위의 본질을 보다 더 천착할 수 있으며, 또 예술적 창조에 접근한다고 주장하며, 교묘한 술수로 끝나는 수천의 사진에서보다는 사진 행위의 본질이 더욱 순수하고 정직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시키고자 한다.”
  사진의 본질론을 상정하며, 랭거-파츠로 대표되는 ‘자연의 다큐먼트’ - 필자는 신 객관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에 반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를 예술사진의 정수로 간주하는 한스 빈디쉬의 논법은 분명 증명해야 할 것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는 논증선취의 폐단을 드러내는 한 예지만, 어떠한 재현적 특질을 사진의 ‘정수’로 규정하고 있었는지를 알기란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다큐먼트'라는 용어는 정확하고 심도 깊은 사진적 재현, 대상을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의지를 이미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큐먼트’는 랭거-파츠 부류의 사진적 특성을 정확히 지시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시각적 자료를 요구하는 특정 학문의 부산물, 어떤 실용적 사용의 시각적 도구라는 인식을 불식시킬 수 없기 때문에 필자는 ‘자연’이라는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실체의 수식어를 첨부했다. ‘자연’은 실용적 목적, 학문적 용도로 사진 ‘다큐먼트’를 주문하고 생산한 주체일 수 없다. 오히려 ‘자연’은 사진작가의 ‘형태에 대한 개인적 감성’,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실체로 인식되기 때문에, ‘자연의 다큐먼트’는 다큐먼트를 재현하는 형태적 양상으로 실현된 ‘예술’ 사진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다시 말해 한스 빈디쉬가 말하는 ‘자연의 다큐먼트’는 ‘사진 행위의 본질’- 육안의 한계를 뛰어넘는 선명도, 세부 묘사 등 -을 구현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통합하는 사진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의 사진이 “예술적 창조에 접근”하며, “교묘한 술수로 끝나는” 모홀리-나기의 뉴 비전보다도 “사진 행위의 본질이 더욱 순수하고 정직하게 나타나는” 예술사진이다.
  사진집『세계는 아름답다』의 출간은 당시 독일 사진예술계를 여러 상반된 견해들을 표출하게 만든 계기였다. 한스 빈디쉬처럼 ‘자연의 다큐먼트’를 ‘사진 행위의 본질’로 여기는 사람은 랭거-파츠의 사진집을 바우하우스 (Bauhaus)를 무대로 “빛을 형상화하는 사진”의 유희적 실험을 즐겼던 모홀리-나기를 공격하는 최상의 방편으로 삼았다. 그 대표주자는 에른스트 칼라이(Ernst Kallai)로 그는 모홀리 나기가 1928년, 바우하우스를 떠나자, 학교의 기관지 「바우하우스」의 편집을 뒤이어 맡은 인물이다. 그가 보기에 모홀리-나기의 포토그램은 “광화학적 술수의 미학으로 유희적 책략과  완전히 우발적이고 눈을 현혹시키는 성공을 ‘실험’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반면 “랭거의 사진들에서 나타나는 세계에 대한 관찰의 윤리학은 판화작품이나 옛 그림에 현존하는 정신적 태도만큼이나 진지하고 고상하다. 그의 사진의 조형적 통일성, 아름다움은 제재에 내재하는 비전의 통찰과 극도로 숙련된 작업기술에서 태어난다.” 한 마디 더 인용한다면, “랭거의 사진 창작태도에는 아주 깊은 인간애와 드높은 사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랭거-파츠의 사진을 ‘사진 행위의 정수’로 파악하는 논객들은 전통적인 미학을 그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빈디쉬가 말하는 ‘감수성’ 그리고 칼라이가 원용하는 ‘정신적 태도, 조형적 통일성, 숙련된 작업기술, 인간애, 사상’ 등은 르네상스 이후 19세기말까지 서구의 이상주의 미학의 기본 개념인 까닭이다. 그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미학 개념에 의거하여 1920년대 독일을 풍미한 새로운 두 사진경향을 바라보고 평가했다. 전통적인 미학적 관점에서 볼 때, 모홀리 나기가 행한 포토그램은 어떠한 정신적 가치나 숙련된 기예가 필요 없는 값없는 유희 행위로 여겨진 반면, 랭거-파츠의 신객관주의는 상당히 이상주의적 미학관념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세계는 아름답다』를 해설하는 글에서 주의를 끄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질적인 사물들의 상응, 상호유사성을 랭거-파츠의 사진들에서 찾아냈다는 점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물질, 형상들이 사진의 클로즈-업을 통해 보면 서로 닮아있고, 상호 관련성을 맺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이러한 이미지의 독법은 이미지의 역사에서 랭거-파츠의 사진집이 최초로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두 평론가의 글을 인용해 보겠는데, 첫 번째는 후고 지커(Hogo Sieker)가 <알버트 랭거-파츠의 사진에 대하여> 쓴 글이며, 두 번째는 쿠르트 투콜스키(Kurt Tucholsky)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란 제목으로 쓴 글이다.
  난초의 꽃잎들을 부감 촬영한 사진은 거의 동물의 목구멍만큼이나 끔직한 형상을 띠며 어떠한 수줍음도 없이 추잡한 성기의 모습을 드러낸다. 눈 위에 놓여진 마른 풀은 일본 목판화의 우아한 형태를 갖는다. (...) 스스로 나선형으로 감긴 새싹으로 미로에서는 선사시대의 괴물이 동굴에서 뛰쳐나오는 듯하다.
  어린 수목은 영양의 몸과 동물의 발바닥을 닮았다.
  이렇게 상호 이질적인 형상과 물질이 클로즈-업 사진을 통해 서로 상응하고 교류하는 양상은 칼 블로스펠트, 에드워드 웨스톤, 이모겐 커닝햄 등 1920년대 독일의 신객관주의 사진가와 미국의 스트레이트 사진가들이 아주 체계적으로, 집요하게 탐구한 사진 항목이다. 블로스펠트는 속새풀에서 고대의 원주를 보았으며, 웨스톤은 피망에서 남성의 근육질을, 양파의 단면에서 여성의 성기를 발견했다. 커닝햄은 꽃들의 클로즈-업을 통해 꽃과 남성성기의 유사성을, 여성성기와의 상응을 찾아냈다.
  『세계는 아름답다』에 대한 비판은 주로 정치적인 관점에서 행해졌다. 프리츠 쿠르(Fritz Kuhr)의 <세계는 아름답기만 한가?>는 그 전형적인 예다. 그의 비판을 인용해 보자. “초점거리 너머에 있는 모든 것은 흐릿하거나 거짓이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본인은 랭거-파츠에게 하루 날을 잡아 빈대 집이나 노동자의 집, 그보다는 농부의 집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도 우리의 중앙형무소나 ‘현대식’ 감옥을 그가 사진을 찍으면 아주 괜찮을 듯싶다. 당신은 교도소에 대해, 보호감호소에 대해, 집 없는 노동자 합숙소에 대해, 빈민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수적으로 본인은 참호와 반혁명 장교들의 지휘본부의 바리케이트, 진압용 곤봉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결국 랭거-파츠 식의 세계의 아름다움은 흔히 ‘지적 매음’이라고 아주 적절하게 사람들이 부르는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제 현실에 눈을 감아버리고 세계에 대한 미학적 탐구에 전념하는 예술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은 1934년의 발터 벤야민의 글, <생산자로서의 작가>로 이어진다.
  『세계는 아름답다』 - 이것은 랭거-파츠의 유명한 사진선집의 제목이다 -  속에서 우리는 신객관주의 사진술이 그 정점에 달해 있음을 보게된다. 이를테면 신객관주의 사진은 비참한 생활까지도 완벽할 정도의 유행적 방식으로 파악함으로써 이를 즐거움의 대상으로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다.
  사진의 신객관주의를 대변하는 랭거-파츠의『세계는 아름답다』는 사진의 본질에 관한 질문과 그 예술적 평가, 그리고 사진의 정치적 기능과 예술적 기능에 대해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1920년대 말의  ‘화제작’이었던 것이다. ●
 
글·최봉림 (사진역사학  박사)

알버트 랭거 - 파츠 Albert Renger-Patzch, <파구스 사의 인두>, 1927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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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뢴트겐 (Wilhelm Conrad R ontgen)은 독일 남부의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물리학 연구소에서 1879년에 발명된 크루즈(Crookes) 음극선관을 실험하던 중 놀라운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음극선관을 작동시킬 때, 형광물질이 칠해진 판 위에서 희미한 빛의 존재를 발견했고, 그의 손을 음극선관 앞에 세우자 판 위에는 그의 손뼈 마디들이 그림자 형태로 나타났다. 실험실은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고, 음극선관은 흑색 판지로 에워싸여졌기 때문에 그곳에는 어떠한 가시광선도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미지의 빛이 음극선관에서 나와 그의 손을 투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살은 투과하여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 반면 뼈는 투과하지 못해 그림자를 투사한 것이었다.
  물체의 성질에 따라 투과의 정도가 다른 이 미지의 광선의 존재와 작용을 사진감광판에 기록하기 위해 뢴트겐은 우선 그의 연구실의 문을 찍었다. 문의 나무는 투명하게 나타났고, 금속 손잡이와 납연 페인트 자국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어서 그는 그의 아네 버타 (Bertha)의 반지 낀 손을 X 레이 사진으로 찍었다. 광선이 통과하지 못하는 손마디의 뼈와 반지는 사진감광판 위에 그림자로 자신을 기록했고, 광선이 통과하는 피부살은 투명하게 나타났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신체의 내부를 드러내는 X 레이 사진은 그 발명이 공표되자 과학계와 의료계의 즉각적이고도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눈에 보이는 외계의 현실을 손의 수고를 들이지 않고 정확히 기록한 다게레오타입의 경이로움이 평이한 일상적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19세기의 끝에서, X 레이 사진은 다시 한번 사진의 마술적 경이로움을 촉발시켰다. X 레이 사진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닫힌 상자의 내부와 신체의 내부를 속속드리 꿰뚫어 보는 마법적 혜안을 구현한 것으로 국제적 찬탄을 불러 일으켰다.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 광선이 꺼풀을 드리운 사물과 신체의 내부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쾌거는 사진의 경이로운 위력을 세상에 다시 한번 알리는 것이었다.
   X 레이 사진의 국제적 수용은 신속했다. 프랑스의 경우, 신문 「르 마텡 Le Matin」과 「릴뤼스트라시옹 L'Illustration」은 1896년 1월 21일과 25일 양일에 거쳐 “새로운 빛”의 발견에 대한 보고서를 게재했다. 파리의 살페트리에 (Salpetri-ere) 병원의 사진부장인 알베르 롱드 (Albert Londe)는 과학 아카데미에서 X 선에 대한 최초의 보고가 행해진지 3주만에, 그러니까 1896년 2월 10일, X 레이 사진 촬영요령에 대한 보고서를 꿩의 날개를 찍은 사진을 첨부하여 제출했다. 그리고 그는 X 선의 의학적 사용과 연구를 위해 그의 사비를 들여 프랑스 최초로 살페트리에 병원의 사진부 부설로 X선 연구소를 설립했다. 곧이어 정부의 지원금을 받은 그는 1898년, 「X선 촬영과 검사 개론, 그 기술과 의학적 적용 Trait -epratique de radiographie et de radioscopie. Techniques et applications medicales」을 출판했다.
   X 레이 사진의 발명과 더불어 의학사진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환자들의 관상학적 특징, 병리적 증세의 기록, 연속사진을 통한 신체동작의 생리학적 연구에만 소용되었던 의학사진은 이제 오히려 그것들보다도 X 레이 사진을 의학사진의 본령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불투명한 육체의 내부를 드러내는 이 보이지 않는 빛의 사진을 신체구조의 보다 정밀한 연구와 질병연구에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의학계는 사용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X 선의 충격과 그 여파는 의학과 물리학의 영역, 과학적 연구와 의학적 적용에만 머물지 않았다. 불투명한 물체의 속을 보여주는 이 ‘미지의 빛’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심령학, 영매학과 같은 의사(擬似)과학, 사이비과학의 기상천외한 연구를 북돋았다. X 레이와 더불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신체의 속을 찍게 되자, 심령학, 영매학에 실증가능한 증거물을 첨부하려는 학자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혼, 영기(靈氣)를 사진적 방법으로 기록하여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피부와 살에 가려진 뼈와 장기를 X 레이로 손쉽게 보게 되자, 의사과학자들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인간 영혼과 심령, 신비의 실체를 사진적 방법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사진적 기록은 일반 도상이 갖지 못하는 재현대상의 실재성을 증거하므로, 다시 말해 사진이 기록한 대상은 상상력이나 환상이 꾸며낸 허구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에 실재로 존재함을, 존재했음을 실증하는 까닭에, 19세기 끝의 심령학자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심령의 세계, 신비의 세계를 사진으로 찍어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과학적 해설에 언제나 뒷걸음질치는 심령학, 신비학은 사진이라는 과학적 증거물을 학계에 제출하여 과학적 학문의 권리와 지위를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이폴리트 바라딕 (Hippolyte Baraduc)은 그 대표적 인물이었다.
  살페트리에 병원의 수장, 샤르코(Charcot) 학파의 일원으로 히스테리와 같은 정신병리학 연구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고, 부인과 의사였던  바라딕은 뢴트겐이 X 레이를 발견한 이듬해, 그러니까 1896년에 「인간 영혼의 움직임과 그 빛 그리고 보이지 않는 유체의 도상학 L'ame humai-ne, ses mouvements, ses lumieres et l'iconogr-
aphie de l'invisible fluidique」을 출간했다. 물론 X 레이의 발견에 의거한 연구는 결코 아니었지만 - 그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연구는 뢴트겐의 발견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 보이지 않는 신체의 내부를 찍은 X 레이 발견에 힘입어, 그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는 신념을 굳건히 했음에 틀림없다. 뢴트겐의 쾌거 덕분에 널리 퍼진 과학계와 세간의 사진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제것으로 삼아 그는 ‘인간 영혼’의 세계를 사진으로 입증하려 했다. 그에 따르면 어린이나, 신경질환을 앓는 여성, 종교인들의 영혼은 대단히 “민감하여 감광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어느 날 바라딕은 그의 아들을 사진찍었다. 아이는 그때 그의 작은 손에 방금 전에 죽은 꿩을 들고 있었다. 바라딕은 이 사진에서 어떤 미지의 빛이 바람에 휘날리는 돛의 모양으로 사진찍혀져 있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영혼의 빛”이라 믿었고, 그는 이것을 발터 벤야민이 훗날 애호하게 될 신비주의적 미학개념과 동일한 용어인 아우라(aura)라 명명하였다. 아우라가 사진에 의해 처음으로 계시된 이 날 이후 바라딕은 아우라의 전모를 밝히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사진에 그 흔적을 남기는 형상에 의거하여 아우라를 분류하고 묘사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의적인 어떤 작용, 신비한 영상, 후광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설명에 과학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그는 사진이라는 증거물을 제출했을 뿐만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치, 칸트, 뉴톤 등의 과학이론을 엉성하게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과학적 설득력을 부여하려 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그러나 어느 특정한 순간에 사진적 재현으로 볼 수 있는 “영혼의 빛”은 한마디로 사진 촬영의 오류, 현상과 인화의 그릇된 과정에서 비롯되었지만, 심령의 세계를 종교적 신념으로 믿는 자의 눈에는 그것은 “영혼의 움직임”, “삶의 베일”, “생명력”의 기록이었다. 한편으로 심령의 세계와 다른 한편으로 과학주의에 홀린 자의 신념에 따르면, “오늘날 사진 원판은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감춰진 힘을 잠시 보게 해준다. 그리하여 신비적인 것을 거부할 수 없는 통제에 놓이게 하며 그것을 실험 물리학의 영역인 자연계로 되돌아가게 한다.” 신비주의적 심령의 세계를 믿으면서 그것을 이성과 과학의 ‘통제’에 놓으려는 바라딕의 이러한 발언은 신비주의와 과학주의의 어설픈 결합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먹혀들었던 19세기 서구 학계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진이라는 과학적 실증 수단과 당시 서구를 지배한 권위있는 과학용어와 개념을 어설프게 도입하면서 전근대적인 신비주의적 사고를 해명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는 19세기 후반의 지적 풍토에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유사한 그러나 보다 더 신비주의와 관련된 또 다른 예가 있다. 그것은 이태리 북부 토리노 시의 과리니 (Guarini) 성당에 보존된 성해포(聖骸布)의 사진적 검증이다.
  토리노의 성해포는 십자가에 못 받혀 죽은 예수의 몸을 감싼 것으로 여겨지는 수의포로, 약간의 피 얼룩이 남아있는 커다란 사지포이다. 이것의 한쪽 면은 붉은 명주로 대어져 있고 은으로 된 성 유물함에 넣어져 과리니 성당의 돔형 지붕 아래에 있는 제단 속에 엄정히 보관되어 있다. 성당은 이 성 유물을 성당 밖에서 현시를 행하는 적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므로 순례자들은 보통 제단에 상감되어져 안에서 조명을 주는 실물크기의 네거티브 슬라이드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네거티브 상을 양화상으로 전환시키지 않고 네거티브 상 그대로 전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양화상의 경우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예수의 얼굴이 음화상태에서는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해포의 이 음화상이 만들어지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1898년 5월에 행해진 토리노 성당의 성해포의 공개는 수많은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를 계기로 법조인이자 사진사인 세콘도 피아 (Secondo Pia)는 성해포의 사진 복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노출부족으로 적절한 사진원판을 얻지 못하던 그는 5월 28일과 29일 밤사이에 또 다시 네거티브를 현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이 생겨남을 보았다. 예수의 얼굴이었다. 육안으로 성해포를 볼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예수의 얼굴이 사진의 네거티브 상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네거티브의 ‘계시’, 사진의 ‘현시’였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몸 속을 뢴트겐의 X 레이 사진이 보여주었듯이, 그리고 일상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아우라’를 바라딕은 사진으로 포착했다고 믿었듯이, 세콘도 피아는 피흘리며 죽어간 예수를 감쌌던 성해포에는 ‘하나님 아들’의 영이 배어있었고, 그 ‘영혼의 빛’이 보이지 않는 빛을 발하여 그가 찍은 네거티브에 예수의 얼굴이 감광되었다고 믿었다. 바라딕과 피아 모두는 인간의 영혼은 빛의 성질을 띠고 있다는 해묵은 상상력을 빛에 감광반응을 보이는 사진적 재현을 통해 증명했다고 믿었다.
  토리노의 성해포의 ‘계시’는 지표 (index)의 기호학적 특성과 사진의 ‘현상’ 과정을 이중으로 담보하고 있었다. 우선 성해포에 흩어져 있는 얼룩 반점은 죽음으로 쓰러져간 예수의 흔적이다. 고통 속에 죽어간 ‘인간의 아들’의 육체가 사지포와 직접적으로 접촉하여 만든 비정형의 형상이다. 찰스 퍼스 (Charles Peirce)의 대상과 그 재현기호의 관계에 따른 분류를 인용한다면, 성해포의 얼룩들은 지표이다. 그것은 발자국이나, 지문처럼 물리적 접촉 (physical contact)에 의해 생겨난 기호이다. 지표는 발자국이나 지문 혹은 데드 마스크 (dead mask)처럼 재현대상과 유사성, 닮음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직접 접촉에 의해 생겨날 수도 있지만, 성해포의 얼룩처럼 비유사성의 관계 속에서 생성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기호의 한 범주로서의 지표, 인덱스는 재현 대상과 그 형상이 유사할 수도 혹은 상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재현대상과 형태의 유사성은 지표의 본질적 특성일 수 없다. 지표가 다른 기호범주들, 즉 상징 (symbol - 이것은 의사소통을 위해 사회적 관습, 규약이 임의적으로 생산한 기호로 언술 언어는 그 대표적 예이다)과 도상 (icon - 이것은 재현대상과 유사성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 기호로 그림, 데셍, 지도 등이 대표적 예이다)과 구별되는 변별적 특성은 물리적 접촉이 그 생성의 기원에 있다는 점이다. 눈 위에 새겨진 토끼의 발자국은 토끼가 그곳을 지났다는 증표이며, 유리창에 지문이 새겨졌다면 누군가 그것을 만졌다는 증거이다. 데드 마스크는 죽은 자의 얼굴에 석고를 직접 접촉시키지 않고는 생성될 수 없는 지표이다. 성해포의 반점들은 피흘린 예수의 몸이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면 생겨날 수 없는 기호이다. 따라서 지표는 생성된 기호대상의 실존을 증명한다. 그때 거기에 재현대상이 있었음을 증거한다. 성해포의 반점은 ‘예수가 그때 이 수의포 위에서 피흘리며 죽었음’을 증거하는 지표이다. 그런데 사진적 재현 역시 기호론적 관점에서 보면 지표이다. 재현대상과 완벽한 닮음, 유사성의 관계를 유지하는 인덱스이다. 사진에서 ‘물리적 접촉’에 관여하는 요소는 사물이 발산하는 반사광이다. 이 반사광을 통해 사진원판과 재현대상은 ‘물리적으로 접촉’한다. 반사광에 의한 ‘물리적 접촉’이 없다면 사진적 재현은 불가능하다. 지표로서의 사진은 재현대상이 감광판의 시계 속에 있었음을, 혹은 감광판에 직접 접촉했음을 증언한다.
  예수의 피흘리는 몸과 직접 접촉하여 생성된 성해포는 세곤도 피아의 ‘계시’와 더불어 일종의 잠상 (latent image)이 되었다. 성해포에 예수의 얼굴은 잠상의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가 피아의 네거티브 현상액 속에서 현현한 셈이었다. 현상(現像)된 예수의 얼굴로 토리노의 성해포는 전대미문의 전시가치와 숭배가치를 동시에 획득했지만 사기라는 불경스런 비난도 끊임없이 뒤따랐다. 1931년 움베르토 (Umberto)왕의 결혼식을 계기로 이를 검증하는 일련의 사진촬영이 다시 행해졌고, 사진작업은 보다 정밀한 예수의 얼굴을 네거티브로 재현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1988년에 행해진 수의포의 연도 테스트는 그것이 중세에 만들어졌다고 판정했다. 현대과학은 성해포의 예수의 얼굴이 신의 현현을 보려는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임을 우회적으로 선언했다. “영혼의 빛”을 보려는 바라딕의 심령주의적 시선의 욕망 곁에 피아의 종교적 신념도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판정했던 것이다. 뢴트겐의 발견에서 가속화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신비주의적 욕망이 과학적 검증과 다시 한번 반목하는 판정이었다. ●
 
최봉림 (사진역사,  홍익대학원 겸임교수)

사진캡션:빌헬름 뢴트겐, <뢴트겐 부인의 손, X 레이 사진>,1895년 12월 22일, Deutsches Museum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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