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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1.09.12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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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개념의 축소를 위한 소고
최봉림


 

 

I. 들어가면서
아방가르드 avant-garde라는 용어는 현대 미학과 예술 비평의 영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키워드 중의 하나이지만, 그 정의와 평가는 필자들에 따라 너무나 굴곡과 편차가 심하다.  발음 속에 내재된 필자들의 억양, 그리고 의도에는 아방가르드의 외연마저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아방가르드의 역사적 기원, 그 진화의 양상에는 공통된 견해를 피력한다 할지라도, 그 임의적 정의, 미학적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기가 일쑤다. 필자의 미학적 취향,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 그것을  ‘유일무이한 진정한’ 예술로 상찬하거나, 혹은 ‘소외된 데카당스’ 예술로 비난한다. 그러나 논리적 수미일관성, 실증적 자료, 필자의 예술관의 피력을 동반한 그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는 단 하나만의 객관적 판단이 존재할 수 없는 미학과 비평의 영역에서는 언제나 정당한 것이다. 문제는 가치판단을 행하는 필자들이 대상으로 삼는 아방가르드의 범주 규정이 특정 운동, 인물을 일시적으로 거명한다 할지라도 이 어사의 미학적 기원과는 달리 너무나 광범위하고, 그들이 정의하는 아방가르드의 경계, 안과 밖이 너무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아방가르드는 특정 문예사조들, 특정 문예그룹들, 혹은 특정 문예운동들과는 달리, 공시적으로 그리고 통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그것은 인상주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처럼 그 전성기를 일정 시기로 국한할 수 있는 시대적 미학개념이라기 보다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도래할 초시대적 개념이면서, 산업 부르주아 사회의 성립과 낭만주의의 태동과 더불어 생겨난 역사적 개념이다. 다시 말해 관점에 따라 낭만주의, 심지어는 자연주의 혹은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부를 포섭할 수 광의적 미학적 개념이다. 따라서 그 정의와 적용이 임의적일 경우, 그것은 미학과 비평의 역사를 오도하거나, 근대와 현대의 예술적 상황에 대한 혼돈만을 야기할 수 있다. 아방가르드와 관련된 역사적 문맥, 그 어의의 역사적 변이를 고려치 않고, 단지 그것을 자신의 비평적 판단, 미학적 분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아방가르드’는 임의적 비평, 이분법적 분류를 위한 프로쿠루테스의 침대로 사용될 수 있다.

II. 상반된 아방가르드 : 모더니티 혹은 키치
아방가르드라는 어사의 의미작용을 설득력 있게 조작하면서 19세기 후반 이후의 예술적 상황을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으로 분할, 비평하는 두 전략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것들은 자신의 미학적 주장을 아방가르드라는 광의적 용어에 투사하면서 현대 예술의 주요 양상들을 지지하고 비판한다. 이러한 미학적 전략들에 있어서 역사적인 동시에 초시대적인 아방가르드의 개념은 근, 현대예술에 포괄적 접근을 허용하는 용어로 기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19세기 후반 이후, 서구 예술의 주요 양상은 ‘아방가르드’로 정의되며, 아방가르드는 근, 현대예술의 긍정적 상황과 부정적 양상을 가르는 경계 개념이 된다. 그 경계선 이편에는 아방가르드를 통해 현대 예술의 새로운 긍정을 보는 클레멘트 그린버그 Clement Greenberg (1909-1994)가 있고, 저편에는 그것을 통해 현대 미술의 불모성을 보는 장 클레르 Jean Clair (1940- )가 있다. 20세기 중반부 미국 미술비평을 주도한 전자에게 있어서 “아방가르드는 우리가 현재 소유하는 유일하게 살아 있는 문화를 형성하며”주1)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파리 피카소 미술관장을 역임하고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인 비평가에게 있어서 “아방가르드는 단지 근대성의 우스꽝스런 희화일 뿐이다.”주2)그들은 한편으로 예리하게 설정한 아방가르드의 개념을 통해 20세기 미술 전반을 조망하는 혜안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의적으로 규정한 아방가르드의 정의, 그 비평적 사용을 통해 아방가르드라는 역사적, 미학적 개념의 이해에 적지 않은 혼선을 야기한다.
아방가르드와 관련된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중요한 에세이는 「Partisan Review」의 1939년 가을 호에 실린 <<아방가르드와 키치 Avant-Garde and Kitsch>> 그리고 동일 잡지의 1940년 7-8월 호에 실린 <<보다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 Towards a Newer Laocoon>>이다. 이 둘의 글에서 미국의 평론가는 아방가르드의 역사적 기원을 개관하면서, 아방가르드 미학의 두 특성을 설파한다. 그 첫째는 예술을 사회로부터 분리, 격리시켜 자족적이고, 자율적인 정신 활동영역으로 규정하는 태도이며, 둘째는 각 예술 매체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전자와 후자 모두는 순수시 pure poetry, 추상 abstract 혹은 비구상 nonobjective 미술을 ‘아방가르드’로 옹호하기 위한 그린버그의 알리바이다.
그린버그는 최초의 아방가르드를, 예술사의 정설에 따라, 낭만주의에 침윤된 보헤미아 그룹으로 간주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당시 부르주아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예술의 절대성과 순수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도래한 대중 산업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은 부르주아의 범속성, 그들의 진보에 대한 맹신 그리고 이상을 모르는 실리적 태도에 저항하면서, 예술로의 도피, 예술을 통한 구원을 꿈꿨다. 부르주아 사회의 세속적 가치관과 절연된 순수한 예술, 사회적 잔재가 배제된 절대적 예술을 추구했다. “공중으로부터 철저히 벗어난 아방가르드 시인 혹은 예술가는 예술을 엄격히 규정하고, 상대적이고 모순적인 모든 것들이 해결되고 논외가 되는 그런 절대의 표현으로 고양시키면서 그들 예술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자 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 ‘순수시’가 나타나고, 그 결과 주제 혹은 내용은 역병처럼 기피의 대상이 된다.”주3)
그린버그가 말하는 아방가르드의 ‘주제 혹은 내용의 기피’는 부르주아 사회의 범속적 일상의 재현의 거부를 의미하는 까닭에, 예술은 세속적 현실과는 무관한 자율적이고 자족적인 정신활동의 영역이 된다. 현실의 재현을 기피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 ‘순수시’의 여파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전통 미학과 아카데믹한 예술형식의 부정을 동반한다. 현실의 재현을 지향하는 ‘모방 imitation’ 이론은 물론이고, 미술의 경우, 문학적 ‘주제 혹은 내용’을 재현하는, 다시 말해 문학성을 모방하는 미술 아카데미의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 ut pictura poesis’주4) 역시 거부의 대상이 된다. 범속한 사회 현실과 멀어지면서 예술의 자율성과 자족성을 추구한 순수하고 절대적인 아방가르드 예술은 현실의 사실주의적 모방은 물론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의 현실보다 우월한 실체적 현실의 모방과도 단절한다. “그리하여 아방가르드는, 실체적 본질 God조차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모방하지 않는다.  아방가르드는 미술과 문학의 창조 규율들과 창조 과정의 절차들 그 자체를 결국 모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추상 abstract’ 예술의 탄생한다.”주5)             
그린버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이후 서구 회화의 질적 저하는 문학성을 재현의 모델로 삼은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에 기인한다. 회화의 본질, 순수성을 저버리고 문학을 전범으로 삼아, 이야기 historia의 재현을 모색한데서 비롯된다. 아카데미 회화라 통칭되는 이 조류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이라는 문학적 담론에 의거한 이야기 서술 narration에 전념했고, 선 원근법 linear perspective의 제도화와 더불어 조각과 같은 삼차원적 효과를 이차원의 평면에 재현하려는 기예들에 몰두했다. 그린버그가 보기에 문학과 조각과 같은 여타 매체의 재현효과를 모델로 삼은 아카데미 회화는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라는 예술들의 혼용 confusions of arts 경향의 전형적 희생양이다. 따라서 회화 장르에 있어서 그린버그의 아방가르드는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와 현실 환영주의 효과 illusionist effects에 사로잡혀, 회화 매체의 본질과 순수성을 저버린 해묵은 아카데미즘을 극복한 일군의 화가들이 된다. 따라서 그린버그의 아방가르드의 총체적 정의는 자신이 종사하는 예술 매체의 특성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여타의 예술 매체들의 방법, 수단, 절차와의 단호한 단절을 꾀하는 예술가 집단이다. 아방가르드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작업하는 특정 매체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으며, 그 매체의 독자성, 순수성, 자율성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각 예술 매체에 고유한 물성 materiality, 작업 과정들에 전념하면서, 타 매체들의 특성에 영향 받고, 타 매체들의 속성들이 개입되는 것을 청교도적으로 금기시한다. “(...) 아방가르드 예술들은 지난 50년 동안 그들 활동 영역의 순수성과 영역을 분명하게 설정하는 성과를 성취했으며, 그것은 전 문화사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것이다.”주6) “피카소, 브라크, 몬드리안, 미로, 브랑쿠지, 클레, 마티스, 그리고 세잔느조차 그들의 영감은 그들이 작업한 매체로부터 연유한다. 그들의 예술이 주는 흥미로운 감동은 거의 전부, 공간의 발명과 배열, 평면, 형상, 컬러 등과 같은 것들에 대한 순수한 우려와 이러한 요소들에 필연적으로 연루되지 않는 여타의 것들을 배제하는데 있는 듯하다.”주7)       
<<보다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는 각 예술 매체에 고유한 특성과 순수성의 탐구를 보다 강조하는 아방가르드를 지지하는 에세이다. 제목이 보여주듯이 이 글은 1766년에 출간된 레싱 Gotthold E. Lessing (1729-1781)의『라오콘 혹은 회화와 시의 경계들』의 현대적 후속편에 해당한다. 레싱의 글은 18세기 후반, 한편으로는 그 당시를 지배한 ‘시는 회화의 말하는 방식이며, 회화는 말없는 시의 양상’이라는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의 예술 상호간의 화합, 예술 매체간의 상호 혼용을 선구적으로 비판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각 예술 매체의 차이, 특수성을 강조하고 그 매체들에 고유한 질서와 규율 속에서 순수한 본질을 추구하는 모더니티을 예고했다. 그러니까 그린버그의 글은 모더니티의 태동을 위한 레싱의 주장을 ‘아방가르드’의 전투적 이름으로 옹호하는 ‘보다 새로운’ 모더니티를 위한 주장이다.
당연히 조형미술에 종사하는 그린버그의 아방가르드는, 레싱의 주장을 본받아, “문학성과 주제를 강력히 배제하며” “여러 예술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확립하려 시도”한다.주8) 그리고 각 매체에 고유한 특성, 순수한 본질을 따른다. 따라서 “아방가르드 회화의 역사는 회화 매체의 저항에 점진적으로 승복하는 역사다. 회화 매체의 저항은 주로 사실주의적 원근법 공간 (재현)을 위해 회화의 (지지체인) 평면에 ‘구멍을 내고 바라보는 to hole through’ 노력들에 대한 회화면의 저항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승복을 행하면서 회화는 (외계 현실의) 모방과 아울러 ‘문학성’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아울러 사실주의적 모방과 상관관계를 맺는 회화와 조각의 혼용을 제거한다. (한편 조각은 돌, 금속, 나무 등과 같은 재료들을 그 특성과는 무관한 형상들로 만들려는 예술가의 노력에 그 재료들이 저항하는 양상을 강조한다.) 회화는 명암 대조법과 음영 부조법을 포기한다. 붓질 brush strokes은 대부분 붓질 그 자체를 위해 분명히 드러난다.”주9)
이제 그린버그의 아방가르드를 간략히 정의 내려도 될 듯싶다. 그의 아방가르드는 예술의 자율성, 자족성 속에서 각 예술 매체의 본질적 특성을 구현하는 작가 군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조형예술의 경우, 매체의 순수성 속에서 추상, 비구상을 추구하는 작가들이다. 이 아방가르드들이, 그의 가치판단을 인용한다면, 예술 생산에 있어서 ‘현재의 최상 present supremacy’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린버그의 키치는 간단명료하다.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와 모방 이론에 침윤된 아카데미 회화, 사실주의적 모방이론을 보듬으며 예술의 자율성, 순수성을 저버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리고 상업 예술이다. 그것들 모두는 모더니즘, 그린버그 용어로 애기한다면, 아방가르드 미학의 바로 옆에, 저편에 있으면서 아방가르드와 대립한다.
반면 장 클레르의 아방가르드는 그 표면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그린버그가 키치로 규정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구조적 상동물 structural homologue이다. 그 구조적 등가성은 무엇보다도 예술 완성의 시간성에 있다. 둘 모두는 우선 현재를 부정하면서, 예술 완성의 시간을 미래로 지연시키는 구조를 갖는다.

“그런데, 아방가르드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이데올로기와 형태의 효과에 있어서 명백히 대립하지만, 그것들은 동시적으로 전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시간의 도식, 동일한 목적론적 비전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과거 신고전주의 미학을 주재했던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드라마 축을, 아방가르드는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축으로 대체했다. 이제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아방가르드의 전범들을 보유한다 (...) 그런데 찬란한 미래가 완성될 전범들의 수탁자가 되리라는 이 사고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착상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사회주의적 종말론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는다. 사회주의적 종말론은 기독교가 영원한 구원을 설정했던 지점에, 인류의 미래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반 자체를 설정했던 것이다.” 주10)

서구의 아방가르드와 공산권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구조적 동일성은 완성의 시간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식 미술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하는 구조도 등가적이다. 차이점은 아방가르드 미술을 공식 미술로 삼는 서구의 경우, 그 지배구조가 현대 미술관들의 프로그램 전략 혹은 비엔날레, 아트 페어 등과 같은 대규모 미술행사들을 통해 예술 표현의 자유의 이름으로 은밀하게 작동하는 반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우, 공산당의 강령을 통해 명시적으로 작용하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둘 모두 그 공식 미술을 각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보존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간단히 말해, 아방가르드 예술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각 사회가 요구하고 수용하는 기대지평에 순응하는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규범들의 대립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소련의 화가들이 서구의 화가들에 비해 ‘뒤쳐졌다고’ 말하는 것은 미학적 층위에서 무의미하며 터무니없는 애기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구의 회화나 소련의 회화나 공공연하게 혹은 음험하게 제시한 전범에 눈에 보이지 않게 혹은 눈에 띄게 순응한다는 것이다. 회화는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는, 회화에 대해 사회가 기대하는 바에 복종해야만 한다.” 주11)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구조적으로 등가적인 아방가르드는, 잘 클레르에게 있어서, “인간 드라마가 배척되고, 현실이 쫓겨나고, 너무나 손쉽고 편안하며, 아울러 그 다양한 표명들 속에서, 공산주의 국가의 미술과 유사한 것이 되었다.”주12)  더욱이 아방가르드 미술은 “서구 미술계의 지적 조야함, 비평의 악취미, 수많은 기관장들의 교양과 취향의 결핍”에 기대는 “일찍 꺼져버리는 즐거운 예술의 거품”주13) 이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장 클레르의 아방가르드는 그린버그가 키치라 명명한 현대의 저급한 미술과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 비평가에게 있어서 키치는 진정한 문화의 저급하고 공식화된 모상들을 simulacra 원재료로 사용하여 진정한 예술에 무감각한 자들의 몰취미를 부추기고 가꾸면서, 그것을 이익의 원천으로 삼기 때문이다.주14)  결국, 그린버그가 현대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켰던 아방가르드와 키치는 장 클레르와 더불어 등가적인 것이 되었다. 그린버그가 아방가르드=모더니티, 아방가르드/키치라는 도식을 사용했다면, 장 클레르는 아방가르드=그린버그의 키치라는 등식을 사용한 셈이 되었다.



III. 아방가르드의 역사적 기원의 의미론
어떻게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한편으로 예술의 모더니티와 동일시 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어떻게 그것은 서구 현대 미술의 부정적 조류, 경향으로 통칭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그 용어는 그린버그에게 있어서는 쿠르베에서 피카소, 한스 아르프 Hans Arp까지 감쌀 수 있으며, 장 클레르에게 있어서는 말레비치, 마리네티, 몬드리안에서 앤디 워홀, 이브 클렝 Yves Klein까지 포괄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아방가르드라는 용어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미학적 개념이기 때문에 그것을 고정시켜 놓고 검토하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게다가 오늘날 예술 비평에 이르기까지 아방가르드라는 용어에 결부된 급진적이며 체제 부정적이라는 정치적 무게를 털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평가의 정치 성향, 미학적 취향에 따라 아방가르드는 ‘선험적으로’ 부정적,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방가르드라는 용어의 역사적 출현과 그 용례의 역사적 변화를 주의 깊게 검토하면서, 그 개념과 범주를 한정하는 것이 아방가르드와 관련된 미학적 해석, 비평적 논의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한 미술사학자에 따르면, 아방가르드라는 용어의 출현은 앙리 드 생-시몽 Henri de Saint-Simon 백작이 1815년에 출간한 선집,『문학과 철학 그리고 산업에 대한 견해 Opinions littéraires, philosophiques et industrielles』에서 부터이다. 산업에 의한 사회의 부흥 그리고 인간애와 인류의 진보에 대한 열정에 불탄 이 사회주의자는 예술가들이 사회 변혁의 전위부대 avant-garde를 형성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사회에 대해 긍정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예술가들에게 공리주의적 이상 사회의 도래를 위한 ‘성직자적 임무’, ‘계몽자’의 역할을 촉구했다.주15) 이러한 논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푸리에주의자인 가브리엘 데지레 라베르당 Gabriel-Désiré Laverdant의 1845년의 책,『예술의 의무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하여 De la mission de l`art et du rôle des artistes』에서 되풀이된다. “사회의 표현인 예술은 가장 높은 비상 속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회적 경향들을 표명한다. 예술은 선구자이며 계시자이다. 따라서 예술이 그 고유한 임무를 선창자에 걸맞게 완수하고, 예술가는 진정으로 전위부대 avant-garde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인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류의 운명은 어떠한지를 알아야만 한다 (...) 행복의 찬가와 함께, 슬프고 절망적인 시가와 함께 (...) 우리 사회의 기저에 있는 모든 야만과 모든 더러움을 거친 붓으로 폭로해야 한다.”주16)
바로 여기에서 아방가르드의 정의와 범주에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주요한 개념이 태동한다. 아방가르드 의미론의 기원에 위치하는 까닭에, 언제나 아방가르드의 개념에서 배제할 수 없는 요소가 명백히 드러난다. 아방가르드는 이상적 미래를 위해, 아방가르드의 본래 의미인 전위부대처럼 앞장서서 길을 트는 예술가 집단이다. 미래에 도래할 이상적 사회에 열광하고, 인류의 진보를 계시하는 존재들이다. 예술을 현재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넘어서는 전투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작가들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의 정의에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열광적으로 계시하는 ‘성직자적 임무’와 인류의 운명을 선도하려는 ‘계몽가’의 의지로 무장한 예술가 진영을 고려하는 역사적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20세기 초엽, 예술의 형식과 내용의 전반은 물론이고,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 사회 제도들을 혁명적으로 타파하고, 심지어는 전통적 풍습, 윤리, 의식구조까지 송두리째 변혁하려 했던 두 예술운동을 알고 있다. 새로운 ‘이상적 도시’, 파시즘을 위해 광적인 선동자 역할을 담당한 이태리의 미래주의 Futurism와 공산주의 혁명의 완성을 위해 정치 메커니즘의 엔지니어의 기능을 담당한 러시아 구성주의 Russian Constructivism는 결코 성직자나 계몽 철학자의 면모는 아니었지만,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이상사회의 실현을 위해 소환한 아방가르드와 그 사회적, 정치적 역할에 있어서 일맥상통한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를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위한 ‘계몽가’로 주창한 생시몽과 푸리에주의자들은 아방가르드의 정의와 관련하여 또 다른 시사적인 발언을 했다. 미술과 문학의 영역을 포괄하는 아방가르드의 개념에서주17)  회화 장르에만 국한한다면, 그들은 이상적 미래 사회에 걸 맞는 디오라마 Diorama와 파노라마 Panorama에 대한 선호를 분명히 했다. 극사실적 회화로 완벽한 현실의 환영감을 주는 새로운 무대미술 장치인 디오라마와 파노라마는 그들이 보기에 공리주의적 유토피아를 향해 열린 이미지였다. 1831년 5월 12일자「Le Globe」를 통해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 기술적 technique 관점에서 우리는 회화에 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디오라마는 아직은 무척 불완전하다. 그것은 아주 최신의 발명이기 때문에 다른 도리가 없다 (...) 예술가들은 바로 이렇게 열린 방향 속에서 새로운 회화 예술을 추구하여야만 한다.” 주18)
 새로이 도래할 사회에 부합하는 새로운 이미지의 발명을 촉구하는 이 발언은 아방가르드를 새로운 매체, 새로운 형식의 실험을 시도하고 탐색하는 예술가들로 규정하게끔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제언은 자가당착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디오라마와 파노라마는 전혀 ‘열린 방향 속에 있는’ ‘새로운’ 회화 예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자의 새로움은 관객들이 어둠 속에서 조명을 통해 커다란 무대화를 보는 색다름이었고, 후자의 새로움은 10m에서 15m에 달하는 높이와 길이 100m에서 120m에 달하는 거대한 원형 벽화의 새로움, 그리고 그 무대화를 위에서 아래로 관람하는 특이함이었다. 반면 디오라마와 파노라마의 화풍은 생시몽, 푸리에주의자들이 비판한 신고전주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주19)  재현의 주제 혹은 소재도 거의 전적으로 미술 아카데미즘이 애호한 역사화, 종교화의 범주에서 길어온 것이었고,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의 내러티브에 집착했다. 아카데미 회화를 강력한 스펙터클과 오락을 환호하는 대중사회에 걸맞게 매머드로 개작한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우리는 아방가르드의 개념을 주창한 생시몽, 푸리에주의자들이 환호한 ‘새로운 회화 예술’의 전범인 디오라마가 언제, 어떻게 ‘기술적 관점에서’ 완성되는지를 알고 있다.
‘불완전한 디오라마’의 창시자인 작크 다게르 Jacques Daguerre는 1836년 사진이라는 광화학적 기록의 발명을 통해 ‘완전한’ 현실의 재현을 이룩하며, 어둠 속에서 조명을 통해 비춰지는 ‘불완전한 디오라마’의 착시효과는 19세기 말, 뤼미에르 Lumière 형제의 활동‘사진’의 발명과 더불어 ‘완전한’ 무대화로 완성된다. 그런데 아방가르드 개념의 주창자들에게 ‘새로운 회화 예술’로 비쳤던 디오라마, 그리고 그것의 온전한 완성인 사진과 활동사진의 재현 모두는 본질적으로 전통적인 아카데미 회화의 재현원칙인 선 원근법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현실 환영주의에 기초하고 있었다. 1839년에 그 발명이 공표된 다게레오타입이나 정지한 낱장의 사진을 움직이는 연속사진으로 발전시킨 활동사진의 현실의 모사는 르네상스 시대가 발명한 선 원근법의 편리한 재현도구로 쓰였던 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니까 디오라마, 사진, 활동사진 모두는 재현형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카데미 회화의 규범이자 재현의 원칙인 선 원근법, 현실 환영주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셈이다. 사태가 이러하다면, 생시몽, 푸리에주의자들이 회화의 아방가르드 형식으로 천거한 디오라마와 파노라마는 ‘새로운 회화 예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롭게 갱신된 아카데미 회화, 혹은 대중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점증하는 강도로 확인되는 산만한 오락”주20) 의 원칙에 부응하는 상업적 아카데미즘에 지나지 않았다. 생시몽, 푸리에주의자들은 젊게 치장한 복고주의, 상업적 아카데미즘을 아방가르드 회화로 착각했던 것이다.
보들레르는 1860년대 중반에 작성한 그의 단상 초고집인『내 마음을 벌거벗고 Mon cœur mis à nu』에서 생시몽, 푸리에주의자들이 주창한 아방가르드를 조롱으로 비난했다.

“군사적 메타포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사랑과 편애에 대하여. 이 모든 메타포는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전투적인 문학
돌파 지점에 있다.
깃발을 높이 들다.
(...)
군사적 메타포들을 더 첨가하면,
투쟁 시인들.
아방가르드 문학인들.
이러한 군사적 메타포를 사용하는 습관은 전투적인 정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다시 말해 순응적인, 하인으로 태어난, 오직 사회집단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벨기에 사람들의 정신을 가리킨다.”주21)

사실 19세기의 프랑스가 ‘전위부대’를 지칭하는 아방가르드와 같은 군사용어를 미학적 용어로 전용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은 “당연히 프랑스 혁명이 야기한 전반적인 삶의 정치화의 귀결이다.”주22) 프랑스 혁명이후 계속 되풀이된 정변 속에서 아방가르드라는 군사용어는 사회적, 정치적 색채를 띠고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그것은 사회의 진보에 예술을 연계시키는 사고를 대변했다. 보들레르가 아방가르드를 조롱한 것은 바로 사회의 진보에 예술이 ‘하인’으로 종속되는 상황 때문이었다. 예술지상주의는 아닐지라도, 예술을 숭고한 정신활동으로 신봉하고, 예술을 통한 유한한 삶의 구원을 믿었던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사회의 진보에 봉사하는 아방가르드는 예술의 자율성과 자족성을 부인하는 태도로 보였음에 틀림없다. 더욱이 그가 혐오하는 속물적인 부르주아들은 생시몽, 푸리에주의자들처럼 과학과 산업의 발전에 대한 맹신 속에서 언제나 사회의 진보를 확신하고 있었고, 현실 환영주의적 디오라마와 파노라마, 그리고 다게레오타입에 열광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아방가르드는 당시를 지배한 상투적 사고체계에 저항하는 ‘전투적인 정신’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그것에 ‘길들여지고 순응하는 정신’이었다. 보들레르의 조롱 섞인 글이 보여주듯이, 생시몽, 푸리에주의자들이 주창한 예술의 아방가르드는 그 용어가 회자되는 만큼 역사적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빈약한 영향력과 예술적 성과 때문에,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개념의 명료성을 상실한 채 임의적이고 유동적인 다의적 어휘로 변색되었다.
소명을 부여 받은 아방가르드가 미술사에서 아무런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그린버그가 상찬한 아방가르드, 즉 ‘모더니티’의 태동에 기여하지 못한데 있는 듯하다. 모더니티에 참여하기는커녕, 디오라마와 파노라마에서 ‘새로운 회화 예술’을 찾은 예가 보여주듯이, 갱신된 복고주의에 머문데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생시몽, 푸리에주의의 전성기가 19세기 초반부에 국한된다는 한계를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 미술 아카데미의 규범이 여전히 시효를 상실하지 않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회화 예술’의 ‘열린 방향’을 모더니티에서 탐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회화의 모더니티는 1848년 2월 혁명 이후, 제2제정과 더불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토피아적 이상 사회의 도래에 대한 메시지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요구받은 아방가르드가 회화에 본질적인 형식의 제 문제, 회화의 순수한 물리적 조건에 침잠한다는 것 역시 이율배반적이었을 것이다. 




IV. 나가면서 혹은 제언

“일반적으로 아방가르드는 고립된 창조적 개인이 아니라 그룹이며, 이들은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혁명적인 작업들로 그것을 ‘실험하고’, 이 작업들을 아카데미즘, 전통, 질서에 충실한 반대자들의 비방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을 자신들의 임무로 삼은 자들이다. 그 대표자들은 제 형식들을 바꿔야 한다는 필연성을 천명하고, 현 예술 생산이 의존하고 있는 사상과 원칙을 폐기하고, 그것을 새로운 ‘세계의 비전’으로 대체하기 위해 투쟁한다. 아방가르드 정신은 예를 들면, 관습,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작업방식들에 대한 패러디를 극단으로 몰고 가면서, 이른바 부르주아 예술을 비웃는다.”주23)  아방가르드에 대한 오늘날 사전적 정의는 모순되게도 생시몽과 푸리에주의자들이 전파했던 사회진보에 대한 믿음이 환멸로 바뀌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향도로서의 예술가 지위에 회의적 시선을 보내게 되면서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론을 일정 부분 수렴하지만, 중요한 다른 부분에서는 남용, 일탈하는 미학적 해석, 비평적 평가들이 쇄도했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윤색되었고, 마르크시즘은 그것을 데카당한 서구예술로 간주했다. 미술상 역시 이 용어를 남용하면서 장사 속을 챙겼고, 큐레이터, 작가들도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홍보의 언어로 활용했다. 이 과정 속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회적 경향들을’ ‘성직자의 임무’로서 표명하고, ‘열린 방향 속에서’ 디오라마와 같은 ‘새로운 회화 예술’을 추구해야 하는 아방가르드의 본래적 개념은 상당 부분 부식되었다.
언어의 의미작용은 언제나 시대와 더불어 변형되고, 추가되고, 탈락되어 본래의 의미는 퇴색된다. 그럼에도 중요한 비평의 용어가, 살아 있는 미학적 개념이 이데올로기, 미학적 취향 그리고 자기 이해관계 속에서 자의적으로 남용되는 것은 비평의 효율성, 논쟁의 성과, 의사소통의 실질성에 부득불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효율적 비평, 성과 있는 논쟁, 실질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한 언어의 탄생에 관계된 역사적 문맥, 본원적 의미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따라야 한다. 무절제한 전략적, 편의적 사용에 의해 어사의 내포 connotation는 무한정 확대되는 반면, 그 외연 denotation은 계속 줄어들어 의사전달에 장애를 초래하는 현상은 부적절하고 불합리한 사태임에 틀림없다. 다시 한 번 아방가르드라는 어휘의 역사적 기원을 살피는 것은 이러한 까닭 때문이다.
장 클레르가 상정한 아방가르드의 완성의 시간도식은, 그의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 어원의 역사적 의미작용을 포괄하는 혜안이다. 이 탁월한 안목을 변화된 문장으로 다시 한 번 인용하기로 하자.

“아방가르드 운동은 예술의 완성을 더 이상 현재에서 과거로 이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그 과거를 미래로 이전시키기를 주장하면서, 현재 예술의 진중한 판단을 진보의 패러다임으로 넘겨버린다. 아방가르드 운동은 마르크스가 헤겔의 이상주의를 ‘밑바닥에서’ 다시 세우려했을 때 사회학에서 행했던 바와 동일한 재건을 행하려 했다. 그러나 예술의 완성이 현재의 앞에 있건 혹은 역으로 뒤에 있건, 그것은 언제나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남는다. 아방가르드는 황금시대를 과거에서 상상하지 않고, 미래로 투사했다. 과거의 노스탤지어에 매몰되는 정신이 아니라, 미래의 진보에 몽롱해진 정신이기를 원했다. 진보의 사고는 잃어버린 낙원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 이론은 방향이 바뀐 노스탤지어일 뿐이었다. 시간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미래에 예술의 완성을 투사했던 것이다.” 주24)

“사회의 기저에 있는 모든 야만과 모든 더러움”이 사라지는 미래, ‘불완전한 디오라마’가 완성되는 미래 등, 미래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아방가르드 미학의 기저를 이룬다. 따라서 장 클레르의 지적처럼 아방가르드의 범주는 사회적, 미학적 완성의 시간축이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미학적 시도의 경우에만 국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린버그가 옹호한 아방가르드, 즉 매체의 문제에 전념한 ‘순수한’ 모더니즘 작가들이 그들 예술의 완성을 미래에서 구했는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아울러 장 클레르가 아방가르드로 규정한 몬드리안, 이브 클렝이 아방가르드의 역사적 기원에서 살펴본 의미론의 핵심 사안을 이루는 사회적 진보를 위한 현실참여 engagement를 행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디오라마를 ‘열린 방향 속에 있는 새로운 회화 예술’로 간주한 생시몽, 푸리에주의자들의 경솔하고 깊이 없는 미학 의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의 도래를 위해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야만성, 모든 오물을’ 전통적 리얼리즘의 형식으로 ‘폭로하여야 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들만이 아방가르드의 역사적 의미론에 충실한 예들로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현행 아방가르드의 사전적 정의와 너무나 상충되어, 현실적 용례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상적 미래의 도래를 위해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고, ‘열린 방향 속에서’ 새로운 예술형식을 탐구한 작가와 예술집단만을, 그러니까 마리 

네티 Marinetti의 미래주의나 알렉산더 로드첸코 Alexander Rodchenko, 엘 리시츠키 El Lissitzky의 러시아 구성주의,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혹은 한스 학케 Hans Haacke, 앨런 세큘러 Allan Sekula  등등만을 아방가르드의 개념, 범주로 축소해 고려하는 것은 아방가르드의 본원적 의미론에 부합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비평, 보다 생산적인 미학적 논의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이정도의 작가 군들로만 아방가르드의 개념과 범주를 축소, 제한한다 해도, 아방가르드 연구의 볼륨은 만만치 않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너무나 회자되지만 혹은 너무 회자되어 아방가르드와 유사한 의미의 혼란에 빠진 미학과 비평의 용어 하나를 거명하면서 글을 맺기로 하자.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더니티, 포스트모더니즘.




1) Clement Greenberg, <<Avant-Garde and Kitsch>> (1939), in The Collected Essays and Criticism Vol. I, Perceptions and Judgements 1939-1944, John O`Brian (ed.),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6, p. 11.

2) Jean Clair, Considérations sur l`état des beaux-arts, Critique de la modernité, Paris, Gallimard, 1983, p. 71.

3) Clement Greenberg, art. cit., p. 8.

4) ‘시는 회화와 같고, 회화는 시와 유사하다’는 말로 호라티우스의 『시학』에 연유하며, 문학 담론에 의거한 아카데미 회화의 재현특성을 지칭한다.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의 역사적 전개와 이론에 대해서는 W. Lee Rensselaer, Ut Pictura Poesis, Humanistic Theory of Paiting, W. W. Norton and Company Inc., 1967을 참조할 것.

5) Ibid.

6)Clement Greenberg, <<Towards a Newer Laocoon>> (1940), in John O`Brian (ed.), op. cit., p. 32.

7) <<Avant-Garde and Kitsch>>, art. cit., p. 9.

8) <<Towards a Newer Laocoon>>, art. cit., p. 23.

9) Ibid., p. 34. 괄호안의 어사는 필자가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첨가한 것이며 ‘구멍을 내고 바라보는’의 의미는 선 원근법의 소실점을 중심으로 한 외계현실의 재현을 의미한다.

10) Jean Clair, op. cit., p. 77.

11) Ibid., p. 91.

12)  Ibid., p. 87.

13)  Ibid., pp. 79-80.

14) Cf. <<Avant-Garde and Kitsch>>, art. cit., p. 12.

15) Cf. André Chastel, <<Nouveaux regards sur le siècle passé>>, Le Débat, No. 44, mars-mai 1987, p. 79.

16) Renato Poggioli, The Theory of the Avant-Garde (eng. tr.), New York, Evanston, San Francisco, London,  Harper & Row, 1968, p. 9에서 재인용.

17) 생시몽은 아방가르드에 화가, 조각가 상징의 창조자 즉 문학인을 포함시켰다. 

18) Nicos Hadjincolau, <<Sur l`idéologie de l`avant-gardisme, Histoire et critique des arts, No. 6, juillet 1978, p. 52에서 재인용.

19)  “미리 말해두지만, 우리는 결코 두 학파를 절충하지 않는다. 우리는 낡은 학파, 즉 고전주의적 경향을 분명히 죽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새로운 학파, 즉 낭만주의적 경향은 완전한 예술로서 삶의 진정한 기호들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1831년 5월 2일자「Le Globe」, ibid에서 재인용. 

20)  Walter Benjamin, <<L`Œuvre d`art à l`époque de sa reproduction mécanisée>>, in Ecrits français, Paris, Gallimard, 1991, p. 169.

21)  Charles Baudelaire, Œuvres complètes, Paris, Aux Editions du Seuil, 1968, pp. 634-635.

22)  Francis Haskell, <<L`Art et le langage de la politique>>, Le Débat, op. cit., p. 107.

23) Etienne Souriau, Vocbulaire d`esthétique, Paris, P.U.F., 1990, p. 209.

24) Jean Clair, op. cit., p. 35.


<참고문헌>

Baudelaire (Charles), Œuvres complètes, Paris, Aux Editions du Seuil, 1968.

Benjamin (Walter), <<L`Œuvre d`art à l`époque de sa reproduction mécanisée>>, in Ecrits français, Paris, Gallimard, 1991.

Chastel (André), <<Nouveaux regards sur le siècle passé>>, Le Débat, No. 44, mars-mai 1987.

Clair (Jean), Considérations sur l`état des beaux-arts, Critique de la modernité, Paris, Gallimard, 1983.

Greenberg (Clement), <<Avant-Garde and Kitsch>> (1939), in The Collected Essays and Criticism Vol. 1, Perceptions and Judgements 1939-1944, John O`Brian (ed.),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6.

Greenberg (Clement), <<Towards a Newer Laocoon>> (1940), in Ibid.
Hadjincolau (Nicos), <<Sur l`idéologie de l`avant-gardisme, Histoire et critique des arts, No. 6, juillet 1978.

Haskell (Francis), <<L`Art et le langage de la politique>>, Le Débat, op. cit.

Poggioli (Renato), The Theory of the Avant-Garde (eng. tr.), New York, Evanston, San Francisco, London,  Harper & Row, 1968.

Rensselaer (W. Lee), Ut Pictura Poesis, Humanistic Theory of Paiting, W. W. Norton and Company Inc., 1967.

Souriau (Etienne), Vocbulaire d`esthétique, Paris, P.U.F., 1990.

 

출처:『미술평단』, 제90호,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08, pp.187-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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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크툼? 그것은 바르트의 사진 읽기에서 분리된 두가지 요소 중의 하나가 아닌가? 두가지 요소?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말이다. “스투디움은 나른한 욕망, 잡다한 흥미, 분별없는 취향 따위의 지극히 넓은 영역이다...스투디움을 알아본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사진가의 의도와 마주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 의도와 조화를 이루고, 찬성하든가 혹은 반대하든가 하는 행위인데, 그러나 언제나 내 자신 속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따져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문화란(스투디움은 문화에 속한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과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하나의 계약이기 때문이다.”(“조”. 32-33쪽)

그러면 푼크툼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르트는 푼크툼이 스투디움을 파괴하기 위해 또는 그것과 박자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간주한다. “스투디움을 방해하러 오는 이 두번째 요소를 나는 푼크툼(punctum. 라틴어로 點을 뜻하는 말-역주)이라고 부르겠다. 왜냐하면 푼크툼은 찌름, 작은 구멍, 작은 반점, 작은 홈이며 또한 주사위 놀이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푼크툼은 그 자체가 나를 찌르는(또한 나를 상처입히고 주먹으로 때리는) 이 우연이다...늘 단일한 공간에서, 때로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참으로 드물게) 하나의 ‘하찮은 것’이 바로 (나를 찌르는) 푼크툼이다...그것이 선명한 윤곽을 갖건 혹은 그렇지 않건간에 하나의 추가(supplément)라는 것이다. 푼크툼은 내가 사진에 덧붙이는, 그러나 이미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조”. 32, 46, 58쪽)

바르트가 말하는 푼크툼의 사례로 이영준이 안동 하회마을의 돌담길을 찍은 주명덕의 『경북 안동』(1968)에서 “사진 앞 아래쪽에서 왼쪽 위로 난 자전거 바퀴 자국”을 들 수 있겠다(근데 이영준의 목소리는 케르테츠A. Kertesz의 『바이얼리스트의 발라드』(1921)를 읽은 바르트의 목소리를 닮았다. 물론 그 사진에 나타나는 도로의 결은 바르트가 읽었던 단지 수많은 (인간의) 발길로만 다져진 도로로 국한되기보다, 이영준이 주명덕의 『경북 안동』을 보면서 말했던 자전거 바퀴 자국 그리고 마치나 자동차 바퀴 자국도 겹쳐져 있다). 이영준은 “자신의 신체를 그 사진의 공간 속에 이입”시켜 그 자전거 바퀴 자국을 “권 대감은 버석거리는 포도자락을 휘날리며 ‘이런 고얀지고’하며 돌담의 저쪽으로 사라졌다는 식으로” 해석한다.(“이”. 109쪽)

그 이영준의 해석마저도 바르트의 목소리와 닮았다: “흙투성이 도로에 파여진 결들은 나에게 중부 유럽에 와 있다는 것을 확신을 준다. 이 사진을 보면(여기에서, 사진은 참으로 자신을 넘어선다. 그것이 이 예술의 유일한 표지가 아닐까? 마치 靈媒처럼 자신을 無化시키고 이미 하나의 기호가 아닌 사물 그 자체가 되는 것?), 예전에 헝가리와 루마니아를 여행할 때 지나갔던 작은 마을들을 나의 온 육체로 알아보는 것이다.”(“조”. 48, 51쪽)

바르트가 케르테츠의 사진 속에 자신의 온 육체를 이입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이영준은 자신의 신체를 주명덕의 사진 속에 이입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말하자면 이영준이 사진의 공간에 권 대감을 등장시켜 자전거 바퀴 자국을 인간의 의미를 위한 해석으로 차용하듯이, 바르트 또한 자신의 주관적인 기억을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이다. 그들은 사진에 “무엇인가를 덧붙이”고자 한다. 『바이얼리스트의 발라드』나 『경북 안동』은 하찮은 것들과 동거하면서 “언제나 하나의 모습을 갖도록 강요”(“조”. 19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꼴(形)로 열려져 있다. 그러면 주명덕의 풍경-사진에서 푼크툼은 무엇일까?

 

이영준은 주명덕 사진의 짙은 어두운 톤을 푼크툼으로 간주한다. 주명덕은 숲이나 꽃들 혹은 풀들을 찍지만, 그 각각의 풍경은 어둠 속에 �혀있다. 그러나 노출이 숲이나 꽃들 혹은 풀들이라고 말했듯이, 주명덕의 풍경-사진이 가시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출은 주명덕의 풍경-사진에서 어느 곳에 시선을 둘지 망설인다. 당신은 여러 곳에 시선을 흩뿌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 주명덕의 풍경-사진에는 중심(원근법)적 시점이 부재한다. 그것은 당신의 시선을 사방팔방으로 산재케 하는 펼쳐진 풍경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신정아의 시선은 엇갈리기도 하고 겹쳐지기도 하고 비켜가기도 하고 평행을 이루기도 하고 교차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유혹자가 말했듯이, “그것은 순수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당신에게 유령처럼 나타나 당신의 머리를 공백으로 채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유령은 꼴(形)/뜻(象)이라는 대립 구조로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유령은 그런 대립 구조보다 선행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령의 놀이를 먼저 생각해야할 것이다.” 유령의 놀이?  

 

“...단순한 풍경사진으로 오인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자연은 피사체에 불과할 뿐, 작가들이 바라보는 것은 자연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메라에 잡힌 자연 풍광들을 통해 자연 자체보다는 인간의 자취를 보게된다. 황폐한 문명, 억눌린 욕망, 슬픔, 도피, 꿈 그리고 추상적 평면을 보게 된다. 의도하지는 않았다 해도, 자연에 대한 예술가의 우위와 인간정신의 강력한 파워가 예술가의 눈길에 의해 강간되고 길들여진 야생의 자연, 그것을 바라보는 행위의 처연함, 이 모든 것의 인식이 주는 독특한 미적 체험이 이 전시회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패러독스이다.”(『모노크롬-자연과 영혼-에 부쳐』김혜경. 출저: monochrom : natura & soul. Gallery Artbeam. 1997. 쪽수 기입 부재)

풍경 사진은 풍경이 아니다. 이 너무 명확한 말은 사진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진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주명덕의 풍경-사진은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사진의 풍경이란 말인가? 왜냐하면 실재의 풍경이 사진화 되었을 때, 그 사진은 이미 자연의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풍경-사진은 그 자연의 풍경을 회복할 수 없단 말인가? 노출은 지나가면서 김종태의 진술을 빌려 실경산수화가 진경산수화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김종태는 정선의 산수화를 실경산수화 안에 진경의 의미가 내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정선의 산수화는 실경 속에 진경의 의미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허다한 평론가와 미술사학가들이 정선의 그림을 평가할 때 실경과 진경을 혼돈하여 설명하였다. 정선의 그림이 특출한 것은 사실이고 감탄할 만한 요소가 가득차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왜 그의 화풍이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키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구도가 어떻고 표현이 어떻고 왼편의 윤택한 산이 있고 수직으로 된 암산이 있고 오른편이 어떻고 하는 소리는 겸재의 그림을 오욕되게 할 뿐이다. 겸재의 근본적인 회화사상은 도가철학과 불교철학을 깊이 이해하는 심오한 진경의 의미를 깨달은 데에 있다.”(“김”. 186쪽)

하지만 정선의 그림을 언급하지 않고 단지 그가 도가철학과 불교철학을 깊이 이해한 화가라는 진술만으로 그의 그림이 진경이라고 단정내릴수는 없지 않은가? 김종태는 정선의 진경산수에 대한 적절한 논의로 최완수의 진술을 인용한다: “인왕산 특유의 잘 생긴 백색 암벽들이 마치 음화인 양 겸재의 대담 장쾌한 묵찰법(墨擦法)에 의해 검은 바위로 표현되어 있는데 묵백의 상반된 색채 감각 속에서 어떻게 그리도 백색 화강암에서 느낄 수 있는 사실감을 그대로 인지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나무의 표현도 둥치 거친 붓으로 속도 있게 처리함으로써 일체의 기교와 세밀한 표현을 배제하였는데 그것이 가지는 우람하고 장대한 기품이 우리 주변에서 보는 수묵의 특징을 너무도 잘 반영해 준다. 특히 이곳에서 보이는 버드나무․소나무․전나무․느티나무 등 노거수의 거친 표현은 바로 그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재현해 낸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이것이 모두 겸재가 60평생을 사생으로 일관하면서 터득해 낸 진경의 묘리다.”(“김”. 187쪽)

그런데 노출에게 그 최완수의 진술은 도교의 철학적인 이념이 들어 있는 자연의 풍경화로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실경을 토대로 하여 작가의 예술적 재량과 재질에 의하여 산수화를 이룬 실경산수화로 들릴 뿐이다. 그러면 김종태 자신이 진술한 정선의 그림에 관한 해석을 들어보자: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겸재의 「금강전도」는 “구도면에 있어서 전면을 꽉 채우는 구도법을 택하였으며, 또 주봉을 정하지 않고 여러 군봉(群峯)을 실경대로 그리는 방법을 택하였으며 그 필법이 예리하고 빠르며 수림이 별로 없고 대부분 암산의 표현이 양광(陽光)으로 표현되어 실경 그대로의 운치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 더구나 골짜기와 좌편의 수림은 겸재 초기의 숙련된 필법인 미불점법(點法)으로 처리하여 겸재 특유의 의경을 표현하였다.”(“김”. 앞의 쪽수)

정선의 「금강전도」에 관한 김종태의 해석 또한 최완수의 진술과 마찬가지로 실경을 토대로 하여 작가의 예술적 재량과 재질에 의하여 산수화를 이룬 실경산수화로 들린다. 그들의 진술은 구도가 어떻고 표현이 어떻고 왼편의 윤택한 산이 있고 수직으로 된 암산이 있고 오른편이 어떻고 하는 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아니다. 김종태는 정선의 그림에 자연의 신비사상과 도가의 유명(幽冥)사상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언급했다:

정선의 “작품 속에서는 표현의 강약이 살아 있는데 이것은 일찌기 노자가 말한 우주 생성의 원리인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 원리를 이용하여 청나라 초기의 화가 석도는 1획론을 창안하였는데 정선의 그림 속에는 강약이 맞는 리듬이 있으며, 하나를 강하게 그리고 그 밑에 약한 미불점법이 뒤따른 것으로 보아 석도의 1획론을 잘 이해한 것 같다.”(“김”. 188쪽)

아니, 정선의 그림에 표현된 강약이 어떻게 석도의 일획론과 관계하며 더욱이 노자의 우주 생성 원리와 관계한단 말인가? 주명덕의 풍경시리즈는 어두운 톤으로 가득한 숲이나 나무들 그리고 꽃들이나 풀들 등의 풍경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김혜경은 노출에게 그것을 단순한 풍경사진으로 오인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 물론 당신은 한 점의 사진작품을 보면서 각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고자 할 것이다. 그 의미는 김혜경이 말했듯이 작가 주명덕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마치 그 점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을 달리 생각해 보면 바로 우리 자신의 욕망의 흔적(황폐한 문명, 억눌린 욕망, 슬픔, 도피, 꿈 그리고 추상적인 인간적 자취)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읽(보)고 싶은대로만 읽(보)고자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노출이 앞에서 말했듯이, 주명덕의 풍경사진에 주명덕 자신의 주관적인 옛 향수가 지독하리만치 제거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노출의 진술 또한 노출이 읽(보)고 싶은대로만 읽(보)고자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출은 노출의 태도를 유지하고자 한다. 노출이 본 주명덕의 풍경사진은 그가 가능한 자연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있는 그대로와 표현에는 피치못할 간극이 있다. 왜냐하면 풍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표현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출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있는 그대로는 문자 그대로 있는 그대로, 즉 이미 의미로 오염된 시각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자연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에는 절제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절제는 다름아닌 주체의 의미에 대한 절제이다. 노출은 그것을 주명덕이 찍은 장소로 언급했다. 말하자면 주명덕은 흔히 아름다운 혹은 특별한 풍경을 찍고자 하는 것과는 달리 노출이 손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불특정한 풍경에 시선을 던졌다고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노출의 시각에 덜 길들여진 것이라고 노출은 생각한다(특정한 장소,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장소는 우리의 의미들로 대리되어 버리기까지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노출은 그 사례로 사람들이 흔히 주명덕의 풍경사진을 보고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나 그 풍경사진에 말이 사라졌다는 이영준의 진술을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출이 몇 평론가의 글을 인용했듯이, 그들은 그 주명덕의 풍경사진을 그들의 시각으로 길들이게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것은 김혜경이 말한 패러독스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녀의 문제는 그것을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출이 김종태의 진술을 인용하면서 읽을 수 있듯이, 그는 정선의 산수화를 진경산수화로 부르는가 하면 때로는 실경산수화로 부르기도 한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을 뜻하(지 않)는가? 혹시 그것은 김종태가 말했듯이 정선의 실경 속에 진경이 표현되어져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진동선이 구분했던 진경/실경이라는 대립구조는 형이상학적 담론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진동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풍경(실경)은 김혜경에게 자연 자체보다는 인간의 자취, 즉 황폐한 문명, 억눌린 욕망, 슬픔, 도피, 꿈 그리고 추상적 평면으로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작가가 의도하지는 않았다 해도, 자연에 대한 예술가의 우위와 인간정신의 강력한 파워가 예술가의 눈길에 의해 강간된다고 김혜경은 냉정하게 단정내린다. 하지만 주명덕의 풍경-사진은 자연의 풍경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진의 풍경을 폭로(révélation)한다는 점에서 자연을 강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 김혜경은 사진의 요술적인 힘을 함정이 아니라 운명으로 착각한 것 같다. 때문에 그녀가 의도하지는 않았다 해도, 자연에 대한 관람자의 우위와 인간정신의 강력한 파워가 관람자의 눈길에 의해 강간될 수도 있다는 점을 스스로 노출시키게 될 것이다. 주명덕이 흔히 우리가 이해하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일듯 말듯 흐려 놓는다고 신정아는 중얼거린다. 이영준은 주명덕의 풍경-사진에서 나타나는 검은 톤이 그 자체로 무엇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말을 피하는 그만의 방식으로 간주한다. 그는 그것을 지우기에 비유한다. 그러나 당신이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주명덕의 풍경-사진은 숲이나 꽃이나 풀 등이 완전히 지워진 검정-모노크롬(black-monochrome)은 아니다.

그렇다. 그것은 흑․백-사진(monochrome)이지만 다양한 묵(墨)의 색처럼 폴리크롬(polychrome)이다. 이영준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그것은 뭔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있는 것 같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사라진다. 그와같은 묘한 분위기를 이영준은 마치 지우려는 힘과 지워지지 않으려는 힘이 맞서고 있는 대치 상태 같은 것으로 해석한다. 아니다. 그것은 서로 맞대하여 버티는 것(對峙) 혹은 서로 마주 놓음(對置)이라는 대립적인 관계라기보다 오히려 변화를 뜻한다.

그러면 그것은 하이데거(M. Heidegger)가 존재문제(Seinfrage)를 탈-구축(De-struction)하기 위해 존재(Sein)라는 문자에 삭제표시를 한 것처럼 풍경(존재)에 삭제표시를 한 것인가? 이를테면 그것은 이전의 개념이 변화했기 때문에 혹은 부정확하기 때문에 지운 것이지만,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에 완전히 삭제하지 않고 볼 수 있도록 삭제한 것이라고 말이다(따라서 그것은 이영준이 말한 “사라짐의 저항”이라기보다 차라리 사라짐의 긍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면 그것은 지금 스스로 현전하는 것이라고 단정내릴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러면 그것은 지금 현전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교부된 것이란 말인가?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그것은 존재론적 차이(ontologische Differenz)를 유보시키는 것이란 말인가?

아니, 그것은 나타남-사라짐(Erscheinen-Verschwinden)이라는 존재론적 차이에 사라지는(zu verschwinden)을 덧붙인, 즉 나타남-사라짐의 사라지는(Erscheinen-Verschwinden zu verschwinden)이 아닌가?(혹시 주명덕의 풍경-사진에서 드러나는 어두운 톤이 다름아닌 존재와 부재 사이에 삽입시킨 사라지는의 기능을 떠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왜 데리다는 존재론적 차이를 유보시키는 것일까? 유영미(you young me)는 『책보다 표지가 더 좋다』에서 그 이유를 관념적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한다.

관념적 위험? 그/녀는 그 문구의 옆에 괄호를 위치시키고, 그 괄호 안에 거세의 동어반복(Topologie der Kastration)이라고 삽입했다. 그러면 존재론적 차이의 유보는 거세의 동어반복에 처할 위험에서 이탈하는 것이란 말인가?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를 통해 사진미학을 구분하는 잣대로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스투디움(studium)'이란,

대상에 대한 호의와 맥락적 관심은 있으나 특별한 강렬함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감정을 의미한다.

즉 '외부 여진 문화적 앎?'을 전제로 한 가장 일반적인 사진감상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라틴어로 '점'을 의미하는 '푼크툼(punctum)'은 순간적으로 꽂히는 어떤 강렬함을 의미한다.

즉 사진의 세부적인 구성요소 등을 통해 감상자나 뇌리 속으로 불현듯 찾아오는 정서적 울림이 바로 푼크툼이라 할 수 있다.

푼크툼은 보편적이고 분석적인 맥락 이전에 감상자의 개인적 취향이나 경험, 잠재의식 따위와 연결되어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강렬한 자극이다. 따라서 푼크툼을 관통하는 미학적 특성은 논리성이라기보다는 우연성이다.
롤랑 브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은 위험한 것이지만, 스투디움은 대상을 코드화시킴으로서 사회와 화해시킨다.

푼크툼은 세부, 다시 말하면 부분적인 대상이다.

이 하찮은 세부가 사진에 관한 나의 시선을 흥분시킨다.

그것은 관심의 격렬한 변화, 하나의 섬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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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12. 12:57 from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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