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테마 공유된 주관성과 감각의 뇌관
 
소위 예술적 표현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에 대한 객관적 진술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체험을 통한 자신의 순수한 주관적 메시지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편적 앎의 테두리 안에서 출발된 객관 타당한 코드에 관계하거나 혹은 비록 그것이 자신의
 
순수한 감각에서 출발하였다 하더라도 슬그머니 이미 공론화된 이슈나 의미화된 논리적 옷을 입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어떤 사실이 객관적이라는 것과 주관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구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보편 타당성에 대한 논리적 사고로부터 온 일종의 착각이다. 엄밀히 말해 어떤 사실이 절대적으로 주관적이다, 혹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다 라는 것은 집단사회의 획일적인 사고로부터 강요된 편견적인 인식이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나 혹은 타인이 생각하는 것을 어떤 특정한 기준이나 규정에 의해 일종의 흑백논리 방식으로 객관과 주관을 구별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로부터 형성된 보편적인 앎(지식)에 의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를 쉽게 판단하고 있다.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도 흔히 이러한 원칙에 의해 작가는 스스로 논리적 이유를 세우면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의도가 객관적인가 혹은 주관적인가를 판단한다. 소위 예술적 표현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에 대한 객관적 진술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체험을 통한 자신의 순수한 주관적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편적 앎의 테두리 안에서 출발된 객관 타당한 코드에 관계하거나 혹은 비록 그것이 자신의 순수한 감각에서 출발하였다 하더라도 슬그머니 이미 공론화된 이슈나 의미화된 논리적 옷을 입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작가는 자신의 지극히 주관적인 메시지가 일반적 경향을 갖는 대중과 완전히 유리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보편 타당한 논리를 요구하는 대중과의 관계에서 관객의 최소한의 공론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작가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표현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적인 사고(인식론)를 가지는데, 사실상 많은 작가들은 그들의 창작적 출발점을 이러한 대중과의 공론을 위해 자신들의 경험이 아닌 외부로부터 형성된 앎의 체계에 의존하기도 한다. 특히 시각적 표현에 있어 단지 복사적 진술만을 허락하는 사진의 경우 이러한 두려움과 스스로의 강요는 더욱 더 분명하다. 이는 예술적 행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가 의식에 관계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객관이라는 개념은 대중이 공통적으로 이해하는 사실, 다시 말해 자신을 중심으로 볼 때 외부 즉 집단이 보편적으로 규정해 놓은 인식론적 사실에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타인과 교감할 수 없는 비논리적이고 개인적인 사고의 총체를 주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객관과 주관은 관점에 따라 서로 상대적이고, 존재론적 측면에서 볼 때 “생성-진화(devenir-forme)”적인 관계에서 이해된다. 쉽게 말해 이러한 두 영역의 분명한 구별은 사실상 모호하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병리학적인 콤플렉스나 혐오 혹은 지나친 편견 등의 극단적인 주관성과 학문적인 관점에서 통용되는 지극히 보편적인 객관성의 구별은 분명 반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호성은 이러한 구별에 필연적인 걸림돌이 된다. 객관과 주관에 대한 개념상의 모호성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한편으로 볼 때, 집단 사회에서 규정해 놓은 객관성은 사실상 상대적인 측면에서 본 편견적인 객관성이다. 예컨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는 인디언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발견자가 아니라 침략자일 수 있듯이 또한 종교적 이슈를 같이 하는 교회공동체에서 그들의 정당한 행위와 공통된 사고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주관적 사고로 볼 수 있듯이 한 집단 밖의 다른 집단의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정당성과 객관성은 일종의 집단 이기주의의 묵인된 객관성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모두에게 감각적으로 인정되는 공통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소 보편적 측면을 갖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집단의 안정과 이익 혹은 이데올로기적인 확신(특히 집단의 감시와 통제)을 위해 그러한 사실들이 객관 타당한 의미로 인정되지 못하는 경우(불관용)1)들이 있는데 이는 그들의 논리적 측면에서 볼 때 주관적인 사고로 간주된다. 그럴 경우 그것은 말하자면 공통된 사견 즉 공유된 주관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볼 때, 객관과 주관에 대한 획일적 판단의 맹신은 그들의 개념에 대하여 불변하는 어떤 정태적인 의미로 이해하려는 논리에서 비롯된다. 소위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객관적 규정은 “무엇은 무엇인 것 같다” 혹은 “무엇은 무엇처럼 보인다”라는 주관적 감각(figure)에서 진화된 형상(form)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규정된 “무엇인 사실”을 절대적 객관으로 착각하고 있다.
 
 또한 징후의 형태로 현실에 직접 출현하는 존재적인 그 무엇(figure 내재적 형상 혹은 안 보이는 세계의 실존)은 실제 일상생활에서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하나의 감각적 실체로 출현함에도 불구하고 이는 주관적 사고의 비 구체화된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관성은 아직 형상으로 공인되지 않았지만 이미 객관성의 가능태(態)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지금 현재 태양은 불변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화 과정에서 변전하는 모습이다 : 태양은 그 생성 단계인 우주의 빅뱅에 의해 탄생한 후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현재 젊은 항성으로 존재하지만 그 진화 과정에서 최후의 항성인 백색 왜성을 거쳐 결국 소멸의 단계를 가질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둘러싼 많은 시물라크르의 지표들(fiure의 주관적 출현) 역시 생성의 단계에서 막 출발되어 각기 다른 형상들(객관)로 진화하는 과도기적인 존재들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각자 개인의 주관적 감각 속에서 출현하는 지표들은 진화적인 관점에서 사실상 잠정적인 객관인 셈이다. 작가의 경험과 체험을 통해 감지된 많은 주관적인 감각들은 간혹 전혀 문화적 코드가 다른 것을 배경으로 하는 특별한 경우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거의 똑 같은 일상 생활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주관적 감각들은 이미 공유되고 인정된 주관성들로 볼 수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관객과 교차되는 경험에 관계하고 그때 사진은 우리 모두의 경험적인 혹은 상황적인 전달체로서 그 메시지는 대중의 객관성 그 바로 밑 문턱에 있는 셈이다.

  사진적 사실주의의 출현은 이미 알고 있듯이 절대적인 과거 사실을 말하는 시각적인 출현(analogon 외시)과 그 출현이 함축하는 의미적인 출현(signification 내시 혹은 공시)의 서로 다른 두 요소의 조합체로 나타난다. 그리고 후자의 출현은 다시 코드화된 앎을 배경으로 하는 의미 체계와 사진이 외시하는 것으로부터 직접 감각적으로 나타나는 탈 코드의 무의미 체계로 나누어진다. 결국 사진은 퍼스의 신호체계와 같이 절대적 복사를 말하는 도상(icon)과 의미 체계를 우선으로 하는 상징(symbol) 그리고 원인성에 의한 지표(index 징후)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사진은 대상과의 절대적 닮음 이외에도 상징과 징후의 또 다른 메시지들을 가지는데 특히 징후로서의 물리적 자국을 말하는 지표 혹은 인덱스는 그림이 가질 수 없는 사진만이 가지는 특별한 재현 체계(자동 생성 혹은 사진적인 것)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마치 삼중으로 된 샌드위치처럼 단지 관점의 변화에 따른 사진의 이해일 뿐 어떠한 경우에도 사진 그 자체의 분류 기준은 아니다.

  이와 같은 문맥에서 볼 때 작가의 입장에서 어떤 대상 혹은 어떤 현상을 의도적으로 재현하려고 할 때 세 가지의 유형상의 경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첫 째의 경우는 자료, 보고, 탐구, 등의 목적을 위한 대상이나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복사적 진술(도상)을 말하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그림의 재현 대상(초상이나 역사그림)이 아닌 오늘날 거의 사진에 의해 독점된 재현 방식이다. 두 번째의 경우는 의미와 함축의 시각적 재현(상징)으로 그 재현의 출발점이 비록 작가의 주관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하더라도 여하간 객관적으로 인정된 문화적 사회적 코드와 앎에 관계하는 경우이다.
 
흔히 이러한 경우에 사진은 하나의 언어로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전달적 기능을 수행하며 그때 작가의 의도는 특정한 하나의 집단 소위 대중의 객관적 인식과 이데올로기 달리 말해 예술적 언어가 아니더라도 일반적 이론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외재화된 형상)에 관계한다. 예컨대 사진의 주제로서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소외를 암시하는 물질사회의 병폐들(자아상실, 저항, 차별 등)은 오늘날(21세기) 더 이상 새로운 주제가 아니라 이미 명분과 이슈 혹은 타당성을 말하는 이론적인 객관성으로 함축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주제들이 새로운 예술적 유행을 형성하면서 도덕적으로 정의로운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엄밀히 말해 그것들은 하나의 의미를 규정하는 사실적 보고나 추상적 언어에 대한 시각적인 번역으로 간주된다.
 
그럴 경우 이러한 주제들은 집단 사회에서 묵인된 보편 타당한 객관성 즉 이미 외재화된 형상임과 동시에 진부와 평범의 진화 단계로 발전하는 진행적인 형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명분과 이슈(예컨대 정체성, 페미니즘, 동성애, 주체상실 등 80년대 이후 새로운 예술적 주제들)로부터 재현된 사진은 비록 작가의 경험에 의한 재현이라고 할지라도 창작의 본원적인 의미와는 달리 대중의 객관적 인식에 대한 반복과 확인적 작업(새로운 의미의 승인과 확인)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진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진들이 표현적 측면에서 예술적 가치를 상실한 무의미한 사진이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주제가 아직 의미의 옷을 입지 않은 생성(내재적 형상)의 형태로서 진정한 창작의 대상으로서 간주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작가의 의도는 엄밀히 말해 공유된 주관성이 아닌 이미 혹은 새롭게 묵인된 객관성에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대상을 재현하는 세 번째의 경우는 앞서 말한 일반적인 객관성 즉 외재화된 형상이 아닌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잠정적인 의미의 가능태를 추적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산 위에 피어나는 연기나 모래 위에 낙인된 발자국과 같은 징후(index)의 포착 즉 “생성의 재현”으로 인식의 영역 주변에서 부유하는 음의 존재(음영 ombres)에 대한 추적2)을 말한다. 이러한 생성 혹은 내재적 형상에 대한 시각적 재현은 일반적으로 현상학적인 방법으로만 추적 가능할 뿐인데 그때 카메라는 감각의 지팡이 역할을 하며 또한 찍혀진 대상은 그 생성의 흔적이나 자국 이외 어떠한 객관적 의미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곧 묵인된 객관성이 아닌 인정된 주관성을 말한다. “사진은 단지 암시적 출현을 그 목적으로 하고 모든 것은 사진의 대상이 된다.
 
특히 생의 고뇌, 번민, 욕망 등의 모든 형이상학적인 것을 함축한다”라고 뒤안 마이클스(Duane Michals)가 사진을 새로 정의하듯이(사진1) 의미의 생성으로서 내재적 형상(figure / forme immanente)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의 구조를 집어치우고 근본화되고 추상화된 형태를 말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잠정적이고, 예언적이고, 주관적이고, 정신적이고 상상적인 무형의 형상”3)을 말한다. 그림의 경우 이러한 무형의 형상들은 작가 자신의 직감과 감각에 의해 번역될 수 있지만 사진의 경우는 대상의 복사적 진술에 의한 징후 즉 생성의 누설(자동생성)로만 허락될 뿐이다. 사진은 “의미 이전에 인덱스”4)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객관적으로 규명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존재의 누설5)을 말한다.

  그래서 작가들의 진정한 사진적 재현 대상은 외부로부터 형성된 자신의 앎과 지적 체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실상 자신의 경험과 체험을 통한 내적 관찰로부터 포착된 감각(생성의 징후) 즉 지극히 주관적 인상이다. 달리 말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대상의 외관이나 장면의 재현이 아닌 자신의 측면(aspects de soim me)에 대한 시각화”6)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관성은 흔히 공통된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보편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징후와 관계한다. 이러한 내재적 형상을 누설하기 위해 작가는 한 장의 사진에 가장 즉각적인 징후 말하자면 폭탄의 뇌관을 장치하는데 이러한 감각의 뇌관을 흔히 푼크툼, 아우라, 탈 코드, 시니피앵스라고 언급하고 있다.
 
혹은 뒤안 마이클스 사진의 경우처럼 여러 장의 사진을 이용하는 시퀀스적 영화 방식을 동원하여 마치 연극이 끝난 뒤 관객이 가지는 감각의 여운과 같이 관객의 사고 순환 후 생기는 잔여 감정 즉 “사고-감정(pensee-emotion)”7)을 유발시키는 감각적 뇌관을 장치하기도 한다. 결국 이와 같이 장치된 사진은 “일상생활의 상황에서 교차된 경험”8)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또한 그때 사진은 관객에게 “유일한 이미지, 유일한 도덕 혹은 유일한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응시자 각자의 고유의 관점이나 경험에 따라 번역되는 상황의 연속으로 이해된다”9). 그것은 집단사회에서 획일적인 의미로 묵인된 객관성이 아니라 공유된 감각의 주관성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사진은 명분과 이슈로 무장된 열 장의 사진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 심연에서 잊혀진 애수와 회한을 깨우는 단 한 장의 주관적 사진이다. ●
 
<주>
1) 헨드릭 빌렘 반 룬/김희숙 정보라 옮김, 톨레랑스 책 참조

2) 창작의 의미는 결국 절대자와 같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미지의 검은 배경에서 작가 고유의 감각에 의해 은닉된 존재를 발굴하는 것이다.

3) Henri Van Lier, Histoire de la photographie, Les cahiers de la photographie, Paris, 1983.

4) Philippe Dubois, L'act photographique, Natan, Paris, 1990.

5) 흔히 사진을 인덱스로 간주한다는 것은 결국 창작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규명 불가능한 형이상학적인 무엇을 재현한다는 것으로 이는 논리와 명분의 객관성을 중요시하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볼 때 결코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없다. 20세기 후반 퍼스 이론은 사진이론에  새로운 관점(지표)을 형성하도록 한 중요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소위 "형이상학의 재발견"이라는 후기 구조주의 이론을 위한 하나의 설명적인 모델일 뿐이다. 그래서 사진 인덱스에서 사실상 인덱스 그 자체의 논리적인 이론(대부분의 인식론자들의 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논리와 의미를 초월하는 형이상학적인 현상에 대한 감각적 이해가 중요하다.

6) Macro Livinstone, Duane Michals, photographe de l'invisible, Edition de La Martiniere, 1998, Paris.

7) Michel Foucault, "Pensee-Emotion", Duane Michals, Paris Adiovisuel, Paris, 1982, p. 6, 유사한 용어로 들뢰즈의 “운동 이미지”(여섯 번째 테마 주9 참조)

8) 같은 책

9) Macro Livinstone, 같은 책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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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진의 출발인 1950년대 영상사진 ①의 개화로부터 1970년대 사진의 새로운 경향(존재론적) ②  그리고 그후 포스트모더니즘의 힘찬 사진의 도약은 의심할 바 없이 20세기 미국 사진의 승리를 단언하는 것이었다. 이는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미국 사진을 지배한 전통적인 형식주의(특히 매체 사진)와 인간 내적 탐구를 우선으로 하는 유럽의 실존주의 경향과의 적절한 접맥의 결과였다 : 예컨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랄프 으젠 미트야드(Ralph Eugene Meatyard), 랄프 깁슨(Ralph Gibson) 등과 같은 작가의 사진들은 엄밀히 말해 미국 사진의 전통보다 오히려 유럽의 실존주의나 초현실주의 경향에 더 가까웠다. 반면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또는 안셀 아담스(Ansel Adams)와 같은 사진가들은 전통적인 미국의 순수 사진계열 특히 대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를 재현하는 풍경사진을 선호했다. 그와 같이 1970년대 미국 사진은 전통적인 사진의 순수성을 바탕으로 풍부한 표현적 메시지를 은닉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유럽의 사진가들은 미국의 경우처럼 매체사진의 순수성을 그들의 전통으로 가진 것이 아니라 예술적 매체로서 표현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점진적으로 사진 매체의 순수성을 거부하고 오히려 매체에 인위적인 조형성을 부여하면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을 우선으로 하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사진을 더 이상 객관적 사건의 전달 매체가 아닌 붓이나 잉크와 같이 개인적인 표현을 위한 표현 도구로 간주하면서 또 다른 조형적인 활용을 시도했다. 사진의 영역에서 이러한 새로운 지형을 개척한 대표적인 작가들 중 하나는 이탈리아인 마리오 자코멜리(Mario Giacomelli)였다.
 
 비록 유럽 사진작가 대부분이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사진의 큰 영향력에 가려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마리오 자코멜리는 이미 1960년대부터 거의 유럽을 대표하는 서정 음유시인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특징적으로 그의 사진적 테마들은 삶과 죽음 그리고 대지와 생명과 같이 자신을 둘러 싼 진솔하고 담백한 일상생활의 서정들이며 그 이면에 인간의 내적 본성에 대한 존재론적 비밀을 누설하고 있다.

마리오 자코멜리는 1925년 8월 1일 이탈리아 중동부에 있는 마르케주 세니갈라(Senigallia)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줄곧 그 곳 리비에라(Riviera)③ 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그의 나이 9살 되던 1934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세 아이들의 생계를 댈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양로원 세탁소에서 고된 노동을 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가 일하는 양로원에 자주 갔고, 일찍부터 그 곳 노인들의 생활을 알게 되었다 : 생명의 시작만큼이나 삶의 종말이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고, 죽음은 어둠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한 과정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는 13살 되던 해 그의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경험이 되는 인쇄소에서 일하였는데, 거기서 (기술자가 아닌) 소년 직공으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차원적인 자음과 모음의 식자글씨와 이상한 형상들에 유혹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인쇄소의 주주로서 인쇄 일을 시작하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삶과 생명에 대한 시적 영감이었다. 그후 그는 은밀하게 시를 적기 시작하였고 점진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자신의 삶에 있어 일상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다.

그는 한 번도 사진 교육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 사진가였다. 그는 8포즈 대신 10 포즈를 가능하게 하는 필름 6 x 9 사이즈를 개조하였고 그의 집 돌 세탁장 구석을 개조하여 암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사진 행위를 독립된 예술 장르의 창작 행위로 생각하지 않았고 사진을 그림이나 데생으로 간주하여 최종적인 인화 과정에서도 자신의 표현에 적합한 흑백 종이를 선택하여 사진들을 현상했다. 왜냐 하면 그에게 있어 창조의 원초적인 힘은 자신이 체험한 시적 영감에 있었고 사진은 이러한 영감과 직감을 위한 시적 언어로만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코멜리는 그의 사진 인생에 결정적인 동기가 되고 또한 자신의 예술적 기질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을 만나는데, 그 인물은 고향 세니갈리아의 변호사임과 동시에 “라뷔솔라(La Bussola)”라는 아마추어 사진모임의 회장인 귀세프 카발리(Guiseppe Cavalli)였다. 카발리의 탁월한 지적 능력과 구상 미술의 박식함은 젊은 자코멜리를 강하게 유혹했고 그의 영향으로 표현상의 추상적 형태와 조형성 그리고 현대미술 특히 추상 표현주의의 강렬한 매력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진 행위로 연결되었다. ④  물론 카발리의 요청으로 그는 라뷔솔라 그룹에 들어가지만 곧 그는 아주 다른 이데올로기적인 견해 차이로 즉각적으로 탈퇴한다. 그는 그때부터 결정적으로 아마추어 문화로부터 거리를 가지면서 깊은 고독 속에서 끈질긴 개인적 탐구를 계속한다.
 
마리오 자코멜리의 사진들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내적 본성에 대한 서정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열정은 당시 전후의 암울하고 혼란스런 시대가 만든 작가의 깊고 원초적인 심리학적 충동과 자신의 특수한 성장 배경으로부터 형성된다 : 어린 시절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개인적인 고통, 전쟁으로 황폐된 재건 시대에 사회적 정치적 분쟁으로 야기된 나라의 집단적 위기의식, 외래 문화와 전통과의 혼동과 갈등은 근본적으로 작가로 하여금 거의 반사적으로 인간의 내적 본성에 대한 탐구와 인간적 연대 욕구를 발산하게 했다. 게다가 50년대 이태리 지방은 급속히 산업화되고 문명화된 도시와는 달리 아직도 내부적으로 많은 전통 종교와 우상 숭배적인 미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코멜리는 50년대 당시 이태리를 지배한 전통적 매체사진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일상의 서정을 농축시킨 삶의 흔적들과 특히 인간의 땀과 노동을 용해시키는 땅의 껍질과 주름(항공사진)을 통해 사랑과 일, 젊음과 늙음, 생명과 죽음 등의 보다 본질적인 주제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나 거기서 이미지들은 더 이상 현실의 사실주의적 재현이 아닌 일종의 시적 언어로서 추상적인 형태를 가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이러한 이미지들은 크게 두 가지 철학적 배경을 가진다.
우선 작가가 초기 사진부터 줄곧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자연과 문화의 조화”이다.
 
그것은 마치 음유시인이 읊는 가락과 같이 작가의 경험적인 체험과 내면적인 직감이 빚어내는 감정의 음색, 쉽게 말해 삶의 진실과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거기서 사진들은 언제나 감각 이전의 내재된 초월성 ⑤  즉 형태들의 생산 이전 단계로 거슬러 존재하는 내재적 생성 또는 구조화된 추상 이미지로 나타난다. 여기서 구조화(structuralisation)란 무엇을 말하는가 ? “그것은 이태리적인 영감을 말하는데, 그 의미는 현대 이태리어 “struttura”에서 아직 남아있는 라틴어 어원인 “structura”에서 암시되는데, 이 말은 뼈나 돌과 같이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여하간 모든 건설에 공통적인 무엇을 말하는 특수한 단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일종의 구성적인 근본이고, 모든 특별한 실현 그 이전에 일반적인 원칙 다시 말해 자연과 문화에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일종의 선험적(transcendantal)인 디자인이다 - 그러나 이것은 “초월적(transcendant)”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주 “내재적(immanant)”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예를 들어 독일 특히 헝가리의 바우하우스 디자인은 인공물 속으로 게다가 디지털 속으로 자연을 빨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이것(선험적 디자인)은 자연에서 문화로 가는(즉 문화 혹은 인공물이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 예 자연의 형태에 조화를 이루는 우리 나라의 초가집 경우) 것이다.” ⑥  

그래서 구조화라는 말은 구체적인 형태나 의미로 구성된 수많은 문화들이 사실상 형태가 없는 동일한 골격으로 환원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문화의 관점에서 자연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단지 자연의 표면일 뿐이고 구조를 말하는 배경에서 형태로 돌출된 구성(construction)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화와 자연의 조화임과 동시에 형태 없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말하는 구조화된 추상이다. 가령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산을 관통하여 만든 거대한 동맥의 고속도로, 지도를 바꾸는 엄청난 간척공사, 방대한 인간 조직과 그 집단 활동 등은 문화에 자연을 흡수하면서 언제나 구체적인 문화를 구성한다. 그때 자연과 문화는 별개의 것이 된다. 그러나 대지의 품에서 활동하는 인간의 땀과 노동은 자연에 흡수되어 구조(본질화)화 된 문화가 된다. 거기서 우리는 문화와 자연의 조화를 볼 것이며 형태와 의미 이전의 본질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자연에 대한 시적 영감과 직감은 문화를 자연 속에서 이해하는 구조화(조직화)된 가장 전형적인 것이다. 그때 시적 영감의 이미지는 단지 추상적인 형태만을 가질 것이다. 마리오 자코멜리는 자신의 풍경 사진들에 대해 “그것은 추상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본질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소위 “메타”라고 언급할 수 있는 정상적인 형태로부터 이탈된 그의 사진들(리터칭 된)이 단순히 시각적으로 변형된 풍경이 아니라 자신의 시적 영감에서 구조화된 본질적인 풍경이라는 것을 말한다.

자코멜리 사진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내적인 개념은 삶과 죽음 그리고 대지의 순환을 말하는 “생성-형성(devenir-forme)의 시적 재현”이다. 그는 “모든 역사는 세계가 진행하고 있는 역사(진화)를 자연적이고 우주적인 틀 내부에서 이해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의 사진들이 암시하는 어떤 순환적인 리듬과 반복은 일종의 무의식적인 제식화로 나타나는데, 이는 대지로부터 탄생하여 다시 대지로 돌아가는 동양의 윤회사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대지와 생명,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등과 같이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을 가지는 사진의 테마들은 마치 웅장한 서사시에 적용되는 후렴구처럼 언제나 반복과 리듬을 가진다.

 언제나 위대한 문학가나 시인들을 유혹한 것은 특별한 영적 신비 의식(초월성)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 은닉된(내재성) 삶과 죽음의 순환이었다. 마찬가지로 자코멜리를 유혹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의 진실이었다. 그를 유명하게 한 양로원(사진 1), 어린 신학생들(사진 2), 스카노(사진 3) 등과 같은 매혹적인 사진 시리즈들은 어떤 신비론적이고 종교적이고 예언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아주 강한 흑백 콘트라스트와 거친 입자 그리고 무차별한 인공 빛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통적으로 우리 일상의 어떤 존재론적인 내재성을 지시하고 있다. 특히 삶의 종착역인 “양로원의 삶”을 들추어내는 묵시론적인 이미지들은 무기력하게 던져진 고통과 죽음의 상처 그리고 이러한 자국들 뒤에서 미리 사후의 세계를 예견하듯이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연속적인 시간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 존재와 대지와의 관계는 언제나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생명이다. “생명, 그것은 자연, 들판의 일, 축제, 어느 젊은 커플의 열렬한 포옹, 웃음, 노래, 미소,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춤이다. 삶의 원초적인 제스처와 유머로 가득 찬 대지의 역사들은 우상숭배의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관능으로부터 시적인 모든 상상에 적절한 환기적이고 서정적인 긴장을 진동시킨다.” ⑦ 엄마 손길과 같은 천성적 대지, 풀밭 위 젊은이들의 열애, 식사와 노동, 마르케의 땅, 거기로부터 나온 시(詩)적 영감이 바로 사진이고 그때 사진가는 음유시인이 된다.

대지와 생명을 노래한 1950-60년대 자코멜리의 풍경 사진 시리즈(사진 4)는 최고의 모상 즉 대지에 공헌된 한 편의 서사시로 간주된다. 비행기(큰 소리를 내는 모터 달린 조립형 경비행기)에서 포착된 풍경들은 우리로 하여금 밭고랑의 운각으로 나누는 분절과 앵글 속에서 보잘 것 없는 하찮은 것 소위 의미 없는 “무 - 기표(insignifiant)”의 존재를 알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풍경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자연적 지형의 모사가 아니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구조화) 조화의 풍경을 말한다.
 
다시 말해 풍경들은 모든 원근법적이고 피토레스크적인 규범들을 비우면서 땅, 밭고랑, 나무 그리고 땀(노고)과 같은 이름을 부여하는 종속이상 더 이상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풍경의 본질적이고 거시적인 재구성을 보여준다. 결국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한 번도 경작 안 된 황무지를 보여주는 단순한 지형적 탐색이 아니라 거기에 남긴 밭고랑, 구획, 들판의 자국들 즉  인간의 노동(문화)이다.
 
자코멜리 사진이 가지는 구성상의 특징들(탈-형식주의, 항공사진, 거친 입자, 강한 콘트라스트, 리터칭, 영화화된 장면 등)은 궁극적으로 표현적인 조형성을 우선으로 하는 탈 - 형식주의(anti - formalisme)경향을 가진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의 순수사진들이 전통적으로 표명하는 형식주의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 거의 직감적인 음 - 양(clair-obscur) 이미지, 구상 예술의 전통적 양식과 형식주의로부터 이탈, 구성상의 자유로운 흐름 등 특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적인 측면을 암시하는 극단적인 콘트라스트와 의도적으로 필름과 인화지에 직접 실행하는 모델라주(modelage /리터칭)는 작가의 표현주의적 의도를 잘 말해줌과 동시에 형태들(formes)의 생산 이전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화된 추상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그가 사진을 통해 재현하려는 이미지는 구조(골격)화 된 이미지였다. 이를 위해 우선 기복이 심한 이태리 풍경에서 의도적으로 선들을 굵게 하기도 하고 자세한 부분을 지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조와 지움은 “어떤 형이상학적 의문을 놓는 것이다.
 
즉 배경(fond)이 무엇이고 형태(forme)가 무엇인가 ? 자연(nature)이 무엇이고 문화(culture)가 무엇인가 ? (...) 1963년 스카노의 거리에서 검은 외투의 부인들과 어린 소년의 등장인물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구조화(textural 짜여진)된 추상에 의해 내재되어 있다” ⑧  구조화된 추상 이미지, 그것은 작가의 시적 영감과 직감에 대한 사진적 재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리의 현실을 떠난 초월적(au-del )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심연(ombres)에 존재하는 내재적(en-de a)인 감성의 음색이다. ●

주요 참고 서적
Ennerry Taramelli, Mario Giacomelli, Contrejour 1992/Nathan 1998, Paris, 1998.
Enzo Carli, Giacomelli, cat., Charta, Milano, 1995.
L'echappe europenne, Les cahiers de la Photographie, Paris, 1992.
Mario Giacomelli, cat., Centre Regional de la Photographie Nord-Pas-de-calais, Douchy, 1987.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Cahier de la photographie, Paris, 1987.
 
① 여러 번 언급되는 말이지만 영상사진의 “영상”은 외래어인 이미지(image)를 번역하여 만든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 의미는 코드화(양식화) 할 수 없는 혹은 그 이전의 존재론적 대상을 내포하는 그러한 사진을 말한다. 이는 언어로서의 사진이 아닌 사진 그 자체로서의 언어를 가지는 사진을 말한다. 필립 뒤봐는 이러한 사진을 포괄적으로 말해 현실의 변형(상징, 코드, 의미, 관습, 약속, 문화 등)이 아닌 “지표로서의 사진(La trace du reel)”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사진적 장치(dispositif)”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후기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대략 197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언급된 것이다. 그러나 논리와 의미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 영상이라는 순수한 어원적인 단어(텍스트가 없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인해 영상사진을 흔히 텍스트 없이 서술화 된 사진 이미지(스토리 사진 ?)로 오해한다. 결국 "영상"이라는 뜻을 앞서 말한 존재론적 관점에서 기표 없는 무의미를 말하는 존재의 자국으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해석학적인 장면으로 이해한다면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이다.
 
② 프랭크 이후 1970년대 아버스나 아베돈과 같은 거의 대부분의 현대 사진가들이 실행한 억압되고 망각된 존재들(음영, 시뮬라크르, 탈-구조 등)에 대한 사진적 탐색을 말한다. 이때 사진들은 코드가 아니라 영상 언어들이다.
 
③ 그는 몇 번의 외국 여행과 전시 그리고 외국의 단기 체류 목적으로 고향을 떠나기는 하였지만 거의 줄곧 자신의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거기에 살고있다.
 
④ 그러나 리터칭과 덧칠 같은 조형성을 허락하는 이러한 사진 행위는 오늘날 1980년대 이후 연출사진이나 구성사진과 같은 조형사진 계열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의 조형성은 단지 표현을 위한 사진적 방식 또는 강조로 간주되며 그의 사진은 조형사진이 아니라 순수 서정 사진으로 이해된다.
 
⑤ 철학에서 “초월”이라는 용어는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스콜라 철학에서 초월은 보통 사고의 범주 이상의 것으로 초감각적인 것 즉 “지적 직관”을 말한다. 두 번째로 칸트의 인식론적 관점에서 본 초월 용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에서 이해된다. 먼저 “초월적 (transcendant)”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 지식 외부에 있다는 의미로 인간의 실천적 행위를 규제하는 기초(영혼불멸, 신)로 간주한다.
 
그래서 인식론적으로 경험 불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는 의미에서 “내재적”이지 않다. 반면 “선험적 (transcendantal)”이라는 것은 “초월적”과 같은 어원이지만 이것은 인간 지식의 성립 기초로 이해된다. 그래서 인식론적으로 경험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는 의미에서 “내재적(immanent) / 내재성(immanence)”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의 “내재성”은 신은 세계 내에 존재한다는 범신론 관점에서 본 것이다. 끝으로 실존주의 철학에서 유신론적 관점에서 초월의 용어는 키에르케고르 신이나 야스프스의 포괄자가 보는 성스러운 초월을 말하며, 무신론적 관점에서 볼 때 특히 하이데그 사르트르 철학에서 실존이 그 존재방식으로서 끊임없이 현실을 뛰어넘어 가는 것을 “초월한다”라고 한다(참조, 철학 용어 사전, 동녘).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초월은 인식론적으로 경험 가능한 범위에서 칸트의 선험적 초월인 “내재성(immanent)”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어떤 존재가 실재 밖의 비현실적인 상부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실재한다는 설명을 위해 칸트의 “내재적”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사실상 이 말은 우리의 경험과 인식이 도달하지 못하는 심연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이고 비인식적인 무엇을 지칭한다. 이러한 심연의 영역이 원래의 “초현실주의” 개념인 것이다. 고로 초현실주의의 대상들은 단지 내부적 혹은 보이지 않는 현실일 뿐이고, 작가가 감지하는 영감이나 직감 또는 대상과의 교감에서 포착되는 감성의 음색은 비록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현실에 분명히 실재하는 내적 대상인 것이다.
 
⑥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Cahier de la photographie, Paris, 1987, p. 162.
 
⑦ Ennerry Taramelli, Mario Giacomelli, Contrejour 1992/Nathan 1998, Paris, 1998, p. 18.
 
⑧ Henri Van Lier, op. cit., p. 164.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사진 1) 양로원 시리즈 중 1955-1968
(사진 2) 어린 신학생들 시리즈 중, 1961-1963
(사진 3) 스카노 시리즈 중 1957-1959
(사진 4) 풍경 시리즈 중 1955-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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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테마 사진은 비어 있는 의미 공간이다.
 
사실상 아무리 위대한 사진이라 할지라도 응시자의 체험적인 의식이 투영되지 않은 이미지에서는 그 어떠한 자극에도 우리는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감동을 주는 좋은 사진은 의미적으로 텅 빈 사진이다.
 
인간의 기억만큼 복잡한 구조를 가진 정신적 현상은 없다. 아무리 생리학이나 의학이 발달해도 우리의 기억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과학적 사고는 보편적 진리의 타당성을 위해 오래 전부터 형성되었고 특히 19세기말부터 합리론과 경험론 특히 실증주의의 명분 아래 더욱 가속화되어 발전된 것으로 오늘날 거의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고 있다.

  분명한 논리를 앞세우는 과학적 사고는 물질 중심의 많은 철학적 유파들과 20세기초 구조주의자들의 근본적인 사변적 배경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사고와는 달리 비물질적인 정신적 현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과학적인 철학(형이상학)도 당시 과학 지상주의(양의 세계) 시대에 또 다른 큰 줄기(음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무의식의 발견과 심리학의 지속적인 발전이 그것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근본적으로 그 차체를 실증하는 물리적 혹은 논리적 타당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니체와 베르그송의 반-과학주의 사고 그리고 실존주의와 현상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철학에 있어 사실상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예로 인간의 “기억”이라는 정신적 현상을 볼 때 기억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생리학적인 관점으로 기억 현상은 의학과 그 첨단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더 이상 신비한 신체의 생리 현상으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 예컨대 기억 현상은 소뇌와 대뇌의 유기적 관계에서 어떤 분비물의 작용으로 우리가 기억하거나 혹은 망각이나 치매현상을 일으킨다고 설명된다. 이는 흔히 일반적으로 과학적 사고에 의한 기억의 실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볼 때 기억은 인간이 의식할 수 없는 거대한 형이상학적 창고에서 어떤 외부조건에 의해 혹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의식에 돌출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정신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의식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이는 마치 육안으로 보이는 빙각의 일산이 침수된 빙하의 거대한 하단을 이끌고 있듯이 우리의 정신은 단지 의식에 표출된 기억이나 인식 현상을 말하는 상부구조(혹은 양의 세계)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식의 배경(fond)이 되는 흔히 심리학에서 무의식(혹은 철학적으로 비인식)이라는 거대한 하부구조(음의 세계)와 함께 이중으로 된 구조를 가진다고 보는 관점이다. 프로이드는 자신의 무의식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델을 설정하는데 그 중에서 사진의 잠상을 무의식으로 간주하고 시각적으로 출현한 사진을 의식이라고 언급했다. 그래서 흔히 “사진을 기억의 은유”로 규정(Philippe Dubois)하기도 한다.

  그와 같이 표출된 기억은 거대한 하부구조 안에서 그 원인적인 것(현상학에서 본질)과 관계를 가지고 또한 연속적으로 서로 상관관계(대부분의 경우 원인관계)를 가질 수 있는데  이러한 연쇄적인 반응을 연상1)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식하는 기억(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은 언제나 그 의식의 원인성을 갖는 무의식(비인식)의 세계와 관계하며 이때 상부에 나타난 기억들은 일종의 징후로 간주된다.2) 그러나 과학적 인식은 단지 표출된 징후로부터 보편 타당한 하나의 가설이나 원칙을 세워 혹은 경험적인 사실로부터 그 징후의 본원적인 실체를 논리적 혹은 의미적으로 밝히는 것(이와 같이 가설적으로 밝혀진 본질을 “형상 form”이라고 한다)을 우선으로 하는 사고이다.
 
그래서 과학적 인식의 관점에서 볼 때 인식 가능한 대상(의미의 틀을 갖는 형상)으로부터 제외된 현실의 많은 징후들(의미의 영역 밖의 비인식의 대상들)은 그들 역시 가설적인 형상들을 가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예외적인 영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학문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말하자면 플라톤 동굴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부분에 존재하는 대상들로 단지 무의식의 세계(혹은 하부세계)에서 잠정적인 존재로만 남게된다(생성 존재론). 가령 어떤 현상이 비록 누구에게나 감지되는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보편 타당하지 않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은 단지 징후로만 출현할 뿐이다.

  구조주의자들의 공통적인 방법론은 상부구조에 출현한 대상들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논리와 의미의 타당성을 그 근거로 대상을 분석하는 방식 즉 코드화 된 징후들의 체계적인 분석에 기본을 둔다고 할 때 후기 구조주의의 방법론은 의미와 코드의 옷을 입지 않은 많은 징후들의 비논리적인 대상(시물라크르 figure)으로부터 하부구조의 그 원인적인 생성을 추적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물질 중심의 편협적인 관점으로부터 오랫동안 무시된 정신 세계를 포함하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의 이동(대표적으로 예술의 포스트 모더니즘)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70년대 말부터 구조주의자들은 과학적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분석적 방법론(대표적으로 기표 signifiant와 기의 signifie 의 소쉬르 기호학)의 한계로부터 또 다른 방법론을 모색하였는데 우선 그들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19세기 말 미국의 철학자이자 기호 논리학자인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신호체계(논리적 실용론)에서 징후로만 존재하는 현실의 많은 대상들을 새롭게 파악하게 되었다. 이는 후기 구조주의의 출발점이면서 또한 그 이론적인 모델이 되었다. 특히 퍼스의 인덱스 개념은 후기 구조주의 개념의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쉬르의 기호체계에서 현실에 출현하는 기호는 두 가지 형태로 파악되는 것과는 달리, 퍼스는 현실의 신호체계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퍼스는 자신의 책 “신호 체계의 서술 Logic as semiotic ; the theory of Signes (1895-1902)”에서 그 첫 기호 유형으로 아이콘(icon 도상)을 들면서 아이콘은 마치 교통표지판의 신호나 화장실의 성별 구별을 위한 그림처럼 “대상이 존재하거나 부재하는 특징을 근거로 하여 단순히 아이콘이 외시하는 대상으로 보내는 신호”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그는 두 번째 신호로 상징(symbol)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상징이 외시하는 대상에 보내는 신호로 이러한 대상은 참조에 의한 상징적 번역을 결정하게 하는 어떤 법칙 혹은 평범하고 일반적인 연상을 근거로 한다.” 예컨대 사랑을 의미하는 하트, 평화를 뜻하는 비둘기 혹은 특히 현시 광고에서 보여지는 많은 의미적인 제스처나 대상들은 바로 이러한 신호체계에 속한다. 그와 같이 상징은 가장 보편적인 우리들의 지적인 앎과 이성 즉 문화적인 코드(사진에서 스투디움)에 관계한다.

  퍼스는 이러한 아이콘과 상징이 다소 분명한 그 지시대상들을 가지는 것과는 반대로 단지 불특정한 지시대상을 지시하는 또 다른 신호체계를 언급하였는데 그것은 징후 혹은 인덱스(index)로 발자국이나 연기 등과 같이 “지시대상과 실질적인 연결 혹은 물리적 연상에 의한 원인적 관계를 가지는 신호를 말한다.” 징후 즉 인덱스의 특수성은 앞서 말한 두 신호체계에서 보여지는 지시대상과의 유사성 혹은 상징성(의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원인성”에 있고 언제나 일 대 다수의 지시대상을 갖고 있다.

  19세기 말 퍼스는 이러한 인덱스를 설명하기 위해 프로이드와 마찬가지로 사진을 언급하였는데 프로이드가 사진(양화)을 무의식으로부터 상부구조에 표출된 의식(기억)이라고 비유하는 것과는 달리 빛과 그림자로 찍혀진 사진은 발자국이나 연기와 같이 하나의 자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퍼스의 이러한 설명은 단순히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진을 언급했고 그의 징후론은 오랫동안 구조주의적 분석에서 객관 타당한 의미의 부재와 대상의 불확실성의 이유로 사실상 기호학적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약 70년 후인 1970년대 말 당시 비평가들 특히 기호- 구조주의자들(후기 구조주의로의 이동)은 퍼스가 언급한 인덱스의 개념을 다시 인용하면서 사진을 더 이상 필연적 유사성에 의한 이미지로 간주하지 않았다 : 사진 영상(특히 스냅사진)은 “절대적 닮음이라는 이유에서 단순한 아이콘이나 보편적인 상징이 아닌 개인적인 대상과 기억이나 의미와의 물리적 접촉에 의한 상황적 원인성을 갖는 하나의 신호”라고 규정하고 또한 “이러한 닮음은 자연에 한 점 한 점 관련되도록 물리적으로 강요된 상황 속에서 생산된 사진에 의거하고 있다”3). 그와 같이 “사진은 어떤 상황들 이상 생각할 수 없다”4)라고 설명된다. 쉽게 말해 사진에서 재현된 대상은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발자국과 같은 자국으로 이러한 발자국이 있게 한 원인성 즉 그러한 상황만을 말하고 있다. 보여진 발자국은 사실상 어떤 특정한 대상(발자국의 주인 즉 의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응시자의 경험과 주관적인 경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발자국(사진)의 의미는 사실상 텅 비어 있다. 이와 같이 사진을 의미가 아닌 징후(index)로 간주하는 개념은 오랫동안 사진을 의미와 코드의 분석적 대상으로 간주해 온 당시 기호- 구조주의 학자들5)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곧 후기 구조주의의 결정적인 이론적 형성에 중요한 축을 세우게 했다.6) 또한 모더니즘의 탈당을 결정적으로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포스트 모더니즘의 근본적인 이론적 배경을 이룰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러한 인덱스 개념 즉 로잘린 클라우스(Rosalind Krauss)가 70년대 말부터 집요하게 추적한 “사진적인 것”의 개념이었다.

  사진을 인덱스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침수된 빙하(하부구조)를 끌고 있는 빙각의 일산(상부구조)을 말하는 것으로 하부에 존재하는 본질(작가의 본원적인 의도)과의 유사관계가 아닌 원인관계에서 출현한 징후를 말한다. 이것은 마치 찍혀진 모래 위의 발자국에 특정한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강압적으로 부여하는 분석적인 구조주의자들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존재론적인 개념이다. 벤야민의 아우라 발견 이후 처음으로 사진에서 이러한 탈-의미의 개념을 언급한 이는 앙드레 바젱(Andre  Bazin)인데 그는 그의 “자동생성(la genese automa-tique)”에서 그것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 “처음으로 외부 세계의 이미지는 엄격한 규범에 따르는 인간의 창조적인 중재 없이 자동으로 형성된다. (...) 모든 예술이 인간의 출현 위에서 세워지지만 유일하게 사진은 인간의 부재에서 출현한다.
 
사진은 우리에게 마치 꽃이나 눈의 결정처럼 “자연적”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그 꽃과 눈의 아름다움은 식물이나 자연현상의 오리지널들과 분리할 수 없다.(Ontologie de l'image photographique)”7) 여기서 찍혀진 꽃이나 눈은 아름다움이라는 하부구조의 본질을 재현하기 위해 단지 징후로서 선별된 대상일 뿐이지 사실상 일반적인 꽃이나 눈에 관한 상징이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그림의 경우와 같이 작가가 감지한 본원적인 음색을 재현하고자 할 때 의도적인 자신의 번역이 가능하지만 사진의 경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진은 필연적으로 대상을 선별한다. 그런데 그 대상은 원인적인 관계에서 단지 징후를 말하는 일종의 신호탄이나 유도체에 불과하다. 이것은 마치 멀리 산 넘어 피어나는 연기와 같은 것으로 그 연기(사진)의 객관적 의미를 규명하기에는 불가능하고 또 그러한 의미로 본다면 완전한 수수께끼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황의 원인성”인데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하부구조를 말하는 산 넘어 존재한다는 사실(사진의 신빙성으로부터)이다.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응시자는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관련된 의식(연상의 경향)을 가지게 된다 : 예컨대 농부는 산불을 생각할 것이고 군인은 전쟁을 생각할 것이다. 이때 연기에 비유되는 사진은 이러한 연상을 갖도록 하는 일종의 연상 유도체(conduct-eur)역할을 하며 그때 사진을 “생성” 혹은 보다 일반적으로 “사진적인 것(The photograp-hic)”이라고 한다. 결국 사진적인 것(index)의 지시대상은 하부구조에 은닉된 본원적인 음색(작가의 창작적 생성)이라고 할 수 있다.8)
  창작의 관점에서 사진작가들이 재현하려는 것은 앞의 여러 테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편 타당한 의미나 언어로서 표현 가능한 상황들이 아니라 의미의 옷을 입지 않은 내재적 상황이나 음색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것들의 사진적 재현은 대부분의 경우 징후로만 가능하며 그때 징후로서 상부에 표출된 대상들은 하부구조의 동체(본질)를 암시할 수 있는 그 동체의 “상황적인 단편들”인 경우가 많다. 그때 이러한 징후들을 마치 얼굴사진으로 그 사람을 대변하듯이 “얼굴화 된(visagefiee) 형상들”9)이라고 한다. 가장 좋은 예로 포도주를 찍은 랄프 깁슨(Ralph Gibson)의 사진을 들 수 있다. 여기서 포도주는 어떤 문화적인 코드로서 축제나 파티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연기나 발자국처럼 각자 포도주와 연관된 기억의 환기에 관계하는 인덱스 즉 얼굴화 된 본체의 단편(혹은 푼크툼)이다. 사진은 그때 텅 빈 의미 공간(반-의미적인 사진)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순간 응시자는 보여진 포도주를 중심으로 엄청난 기억의 연상적 확장(푼크툼의 환유적 확장)을 경험할 것이다. 텅 빈 공간은 곧 바로 응시자의 의식에 의해 채워질 것이다.
 
바로 이 순간이 자동생성의 순간이고 타인의 경우가 자신의 경우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거기서 사진의 위대한 힘을 확인할 것이다. 왜냐면 마치 자극된 뇌관에 의해 내향성 폭발이 일어나듯이 자신의 억압된 무의식으로부터 감정의 연쇄적 돌출은 곧 감동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아무리 위대한 사진이라 할지라도 응시자의 체험적인 의식이 투영되지 않은 이미지에서는 그 어떠한 자극에도 우리는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감동을 주는 좋은 사진은 의미적으로 텅 빈 사진이다. ●
 
<주>
1) 연상에는 현재에서 과거로 하강하는 수직 연상과 그 수직 연상 이후 과거의 거대한 기억 창고에서 일어나는 수평 연상이 있는데 그때의 연상은 시간적인 전후가 없는 무시간적인 연상이다(Henri Bergson의 “물질과 기억”에서 기억의 무시간성).

2) 기억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외부의 자극에 의해 의식에 표출되는데 그 중 시각적인 자극이 가장 중요하다.

3) 퍼스 신호체계에 관한 위의 몇몇 인용구는 C.S. Peirce, Ecrits sur le signe, Paris, Seuil, L’ordre philosophique, 1978, cite par Philippe Dubois, L’act photographique, Natan, Paris, 1990, pp.58 - 63에 관계한다.

4) Philippe Dubois, 앞의 책

5) 당시 기호 구조주의자(semio-structuralisme)는 크게 전통적 기호학자 분석가(메츠, 에코, 바르트, 렝드켄 등)들과 이데올로기 비평가들로 나누어지는데 후자는 다시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 첫 부류는 감각 심리학에서 본 이론가들로 1965년 프랑스 구조주의 이전의 구조주의자들이고, 둘째 부류는 아른하임 바젱, 다미슈, 보드리, 부르디으 등의 이데올로기적 특징을 갖는 구조주의자들이다. 마지막 부류는 사진의 인류학적 관점에서 본 구조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된다.

6) Philippe Dubois, 앞의 책.

7) Andre Bazin, Ontologie de l’image photographique, (1945) in Qu’est-ce que le cinema?, Tome I, Ed. du Cerf, Paris, 1975, pp.11-19. 그러나 바쟁은 퍼스의 인덱스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1950년대 당시 퍼스의 이론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고려해 보면 자신의 자동생성 개념은 기호학적 추론이 아닌 사진의 존재론적 개념으로부터 온 것으로 간주된다.

8) “생성”은 원점, 제로 상태, 출발점으로서 시작을 말한다. 본원적 음색의 사진적 재현이 자국으로서 사진이고 다시 말해 출현된 사진은 출발점으로 간주되는 생성의 형이상학적인 것을 그 지시대상으로 한다. 좀  더 확장적으로 말해 거의 모든 예술의 시공간적 출현은 이와 같은 사진의 인덱스의 원리에서 하나의 징후(사진적인 것)로 이해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개념의 변화(물질이 아닌 정신적 관점) 속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근본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9) 얼굴화 된 것은 곧 인덱스화 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표현적 움직임(Le movement d’expression!)”라고 하는 존재론적 감정들을 끌고 있다(들뢰즈의 용어, “단편미학”에 관계한다). 들뢰즈는 이런 이미지를 또한 “탄착 impacts”이라고 한다. 그것들은 감각과 행위가 사라졌을 때(부동의 진술) 남는 잔여 찌꺼기(잔류전기)로 마치 감정의 여운(흔히 사진에서 아우라, 푼크툼과 유사)이 어떤 얼굴(표면, 탄착) 위에 남아 물결쳐 지나가고 반사하는 이미지들(무의미, 탈코드)을 말한다. Gilles Deleuse, Cinema, L’image-movement, Minuit, 1983

글 .이경률
(미술사 박사)
 
랄프 깁슨 “프랑스 역사” 시리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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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정보 매체의 엄청난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며 또한 소위 생중계라는 방식으로 사건과 거의 동시에 우리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과 백 여 년 전 19세기 당시 어떤 사건에 대한 시각적 전달은 1839년 사진 발명 이후 사진이 전달 매체로서 지속적인 발전(사진 엽서, 신문 삽화의 자료로 활용되는 사진① , 과학적 자료집이나 도감 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보도사진에 비교해 볼 때 사실상 거의 실험 단계에 있었다. 당시 이러한 전달적 역할은 오랫동안 서양 사회에서 일종의 정보 전달자 역할을 한 유랑 풍속화가(peintre d'moeu-rs)들에 의해 실행되었다. 그들은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그 지방의 생생한 사건과 풍물을 그림으로 전해주는 화가들이었는데 이들을 “거리의 풍속화가”라고 하며 또한 그들의 그림을 “풍속화(peinture d'moeurs)”라고 했다.
 
특징적으로 그들이 재현하는 대상은 단순한 풍경(대부분 픽토레스크)이나 풍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당시 사회의 여론이나 불만 혹은 억압과 같은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일종의 풍자화였는데 이는 한 마디로 단순한 시각적 전달이 아닌 사회적 진실을 위한 정신적 폭로인 셈이었다. 당시 보들레르는 그들이 “현재의 미를 들추어낸다”는 의미에서 그들을 “현재의 본질적인 질” 다시 말해 현실에 대한 진실의 폭로자라고 격찬하기도 하였다.②

  그러나 사진 발명 이후 점진적으로 보도사진과 기록 영화는 이러한 풍속화를 대신하게 되었고 풍속화가들 역시 거의 사라졌다. 20세기 전반기, 보다 엄밀히 말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까지 보도사진의 시각은 특이한 사건 혹은 결정적 순간과 같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인상주의적이었다. 이러한 사진은 궁극적으로 인본주의의 명분 아래 언제나 범 우주적이고 객관적이고 사건 중심적이었는데 거기서 모든 형식은 사진 미학의 전통적 규범 속에서 이해되었고 어떠한 주관적 풍자나 고발을 허락하지 않는 사건의 절대 객관적 기록성을 앞세우고 있었다.
 
보도사진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

  그러나 처음으로 1950년대 윌리엄 클라인(로버트 프랭크 역시)이 던지는 “전통적 규범의 이탈”은 그때까지 정형화된 보도 사진의 개념을 전복하면서 보도 사진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이탈은 단지 틀이나 구성과 같은 형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측면에서 현실의 이면에 감추어진 내재적 진실의 폭로에 관계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클라인과 같은 소위 “거리의 사진가(The street photographer)”는 더 이상 객관적 대상에 대한 전달적 의도가 아닌 우리들 사회와 문화 그리고 풍속의 진실한 전달자, 다시 말해 그들은 이미 사라진 19세기 풍속화가들의 역할을 다시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클라인의 사진들 특히 그의 뉴욕(New York, 1955년)에서 보여진 사진들은 당시의 관점에서 볼 때 빗나간 사생아 혹은 터무니없는 상식 밖의 사진들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이러한 사진들은 매체의 전달적 목적에서 포착된 전통적 보도사진으로 읽혀졌기 때문인데 이는 사진을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이나 결과론(혹은 형상론)적 관점에서 본 시각이기도 하였다. 그의 사진들은 정 반대로 지극히 주관적 사진 즉 자신의 눈에 비친 물질 문명 세계를 고발하는 일종의 “부조리 연극”으로 간주된다. 모든 해석과 이해를 사진이 보여주는 결과물에서 출발한다면 이미지들은 우선 다큐멘터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동시에 당시 사회의 모든 활동적 양태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일종의 유형학적 사진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존재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이미지들은 그것들을 있게 한 원인적인 측면 다시 말해 촬영 당시 작가가 가진 어떤 존재론적 본질이나 충동에 의한 자국 혹은 인덱스로 이해될 것이다. 그럴 경우 클라인 사진을 특징짓는 많은 신기한 것과 이상한 것 혹은 괴기스러운 것 등은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본질을 암시하는 하나의 문화적 신호(signes de culture)로서 나타난다 : 신호는 그 본질인 동체를 예측하게 하는 지시로서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보통 현실에서 볼 수 없는(인식할 수 없는) 많은 것들 심지어 초감각적인 것들까지 암시하는 하나의 징후로 간주된다. 바로 이러한 사인들은 의심할 바 없이 클라인의 사진에서 주제임과 동시에 소재가 되며 이러한 사진을 “사인-사진(signe-photo)”이라고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클라인은 자신의 감각을 통한 물질적 사인에 대한 일종의 암호 해독자인 셈이다. 거리의 갱들이 활보하는 뉴욕의 광란, 토쿄의 이데오그램, 소련의 군사 문화, 로마의 종교 문화 등 50년대 이후 후기 정보 사회의 물질(소비 사회)과 정신(문화와 이데올로기)의 혼돈과 무질서는 사회적 문화적 혹은 정치적 단편들(사인들)로 추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적은 결코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혹은 편견적이고 일반적인 사고에서가 아닌 자신의 예리한 관찰과 통찰력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클라인의 뉴욕에서 보여진 거리 이미지들은 전통과 결별하는 새로운 독창성을 창조함과 동시에 당시 실존주의 계열의 부조리 연극과 현대 물질 문명을 비판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 현대 도시의 신화를 정면으로 전복시키는 제스처로 간주된다. 이미지는 그때 일종의 조롱적이고 풍자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사물화 현상”에 대한 사진적 재현으로 간주되며 대부분의 사진은 “사물화 된 인간과 물질이 대치”되어 나타나는 병치 효과 다시 말해 들뢰즈의 용어로 “문화와 자연이 충돌하여 그 표면에 발생하는 사건(evenement)”에 관계한다. 이는 또한 인간의 번민 고독 소외 통속 유행 속물 등을 암시하는 당시 1950년대의 문화적 신조어(의미의 생성)들 즉 시대의 시뮬라크르들이기도 하다.
 
클라인은 팝아트의 선구자


  클라인의 사진들은 단순히 현대사진의 역사적이고 진화적인 맥락에서만 이해되지 않는다. 앞서 이미 보았듯이 이러한 사진들이 추구하는 본질적 재현 의도(사물화 현상)는 단지 사진의 영역뿐만 아니라 1960년대 예술의 거대한 폭풍을 가지고 올 팝 아트의 전반적인 주제가 된다. 그러한 문맥에서 볼 때 클라인의 사진은 팝 아트를 알리는 최초의 신호탄이며 오늘날 역사적 관점에서 몇 몇 비평가들(1980년대 이후)은 클라인을 팝 아트의 선구자로 간주한다.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물질 속으로 정신(인간)이 빨려 들어가 버리는 허무”를 조형적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 바로 팝 아트의 본질적 의도임을 고려해 본다면 클라인의 간판, 광고, 글씨, 이데오그램 등의 문화적 신호들은 의심할 바 없이 인간의 사물화를 재현하는 팝 아트의 전조로 간주된다.
 
클라인의 모든 사진들 특히 뉴욕의 사진들과 그의 단편 영화(예를 들면 “Broadway by night”)를 잘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뭔가 암시적인 은밀한 알파벳이 있다 : 모든 자본주의 나라의 도시에 공통적으로 출현하는 무한히 반복되는 네온사인, 현란한 광고 글씨 그리고 많은 소비 문화의 조짐들과 같은 클라인의 “거리의 언어들”은 팝아트의 출현보다 무려 5년③ 이나 앞서 나타난다. 도시를 소재로 잡은 뉴욕의 사진에서 클라인은 강렬하고 폭로적인 그리고 조롱적인 이데오-상업적(ideologico-commerciale) 선전을 강조하고 있다 : 특히 네온사인은 자본주의의 상징으로서 당시 전 세계 자본주의 도시에 불고 있었던 열풍 같은 문화의 새로운 것이었다. 공중전화 박스 안의 여자들, 밤의 감시자들, 은행과 영화, 간판 슬로건 뒤에 갇힌 계산원, 밀려오는 군중, 열광하는 관객들 등은 궁극적으로 소비 문화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인간 더미와 인간 소외 혹은 경찰 몽타주의 상품화 된 인간유형과 같은 인간의 사물화를 암시하고 있다. 이는 거의 정확히 1960년대 유령 같은 먼로, 무한히 반복되는 돈이나 콜라, 자동차 사고 등을 보여주는 앤디 워홀의 그림(일종의 사진-그림)과 같은 맥락을 가진다. 그러한 관점에서 클라인을 당시 “어떠한 화가도 그것을 하지 않았던 것(aucun peintre n'avait jamais fait ca)”을 처음으로 실행한 진정한 팝아트의 선구자④ 로 간주할 수 있다.
 
 
  클라인의 사진을 특징짓는 전통과의 단절 혹은 반-사진적 요소들은 한편으로는 개념적 측면에서 또 한편으로는 기술적 측면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사진의 개념적 특징들은 당시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야기된 새로운 문화적 통념(코드)에 관계하고 있다. 클라인 자신이 “사진적 행위는 동시에 일어나는 수 백 개의 사물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순간을 포착하는 황홀한 순간이다”라고 언급하듯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만남”이었다. 실질적으로 그의 사진 작업은 그때까지 촬영 방식을 지배한 “연극적인 비밀의 자물쇠 구멍(렌즈)”을 통한 순간 포착 즉 미리 계산된 조준사격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우연들의 다발, 다시 말해 무차별 난사식 사격을 통해 거의 직감적인 한 장의 장면을 선택(암실 안에서)하는 감각적 만남에 관계하였다.
 
 이러한 만남은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으로부터 극단적으로 증폭된 우연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클라인의 만남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의 단면 즉 누구나 공통적으로 이해하는 문화적 코드로서 정확히 “객관적 우연”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클라인의 사진에는 언제나 엉뚱하고 이상한 무엇(푼크툼)이 출현하는데 이는 특징적으로 한 부분으로 전체를 짐작하게 하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 이러한 만남들은 사진에서 무모하고, 통속적이고, 저속하고, 뻔뻔스럽고, 강렬하고, 거칠고 동시에 난잡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적절히 말해 자연과 문명의 교차 면에서 발생하는 예술적 형태로서의 무모성이나 무질서에 대한 사진적 추적으로 간주되다. 또한 인간은 거기서 일종의 물질의 장식품이나 부속물로 간주되고 도시 생활의 질식과 우글거림, 혼란, 뒤죽박죽, 와글와글한 군중들의 떼 등과 같은 것들은 현대 사회의 다량 유통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설적으로 흔히 자신이 역사적 증인으로서 직접 군중 속에 합류하면서 촬영하였는데 거기서 자신이 확인하려 한 것은 우리 모두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였다.
 
전통적 규범에서 이탈, 틀의 자유성 추구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사진들은 그때까지 통용된 전통적 규범을 더욱 더 분명히 이탈하고 있다.⑤ 우선 “틀의 자유성”을 추구하는 잘려지고 불안정한 화면 구성은 의도적으로 화면의 왜곡을 야기 시킨다. 또한 가능한 화면을 꽉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35 mm 광각 렌즈의 사용과 대상을 겨냥하지 않고 바로 코앞에 바짝 붙여 촬영하는 근접촬영(close up)은 결과적으로 대상을 착각과 환상적 효과 속에서 괴물⑥ 같은 인상을 준다(사진 1). 영화의 시퀀스와 사진과의 접맥에서 나온 많은 사진적 표현들(순간 동작, 제스처, 찰나 등) 역시 이러한 강렬한 특징을 더 해주고 있다. 게다가 움직임의 자국을 남기는 오픈 플래쉬(open flash)의 활용은 살아있는 생명 혹은 생동감의 효과로서 이용하였는데 클라인은 이러한 효과를 특히 80년대 초 자신의 패션사진에 하나의 특수 효과로 이용하였다.
  클라인의 많은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두 가지 특별한 구성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 하나는 공간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시선들이 마치 물수제비 뜨기처럼 서로 관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선의 다각화(사진 2)이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현대 사회의 냉정함과 비정함 그리고 불신과 멸시를 암시하기도 한다. 또한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여하간 화면 구성에서 흔히 촬영 당시 누군가 렌즈를 쳐다(훔쳐)보는 시선이 나타난다.
 
또 하나는 마치 “프레스코 벽화”처럼 하나의 평면에 수많은 사람들을 비늘형식으로 병치시키는 공간 구성의 극대화(사진 3)이다. 이러한 구성은 우선적으로 광각 렌즈의 집단적 효과에 그 이유가 있지만 언제나 피사체의 분명한 공간성과 그 움직임을 강조하는 거의 1/125초의 노출 속도와 대략 15도 각도로 약간 굽어보는 낮은 앵글을 활용하는 작가의 의도적인 선택에도 그 원인이 있다.⑦ 그러나 이러한 방식들은 근본적으로 작가가 인간 존재를 벽면에 부조된 기념물이나 건축적 장식물로 간주하려는 예술적 의도⑧  에 관계한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클라인의 사진을 특징짓는 또 다른 요소는 비교적 다른 동시대 작가들의 사진에 비해 유달리 독특하고 이상하고 별난 것(푼크툼)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1980년 이후 소위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사진을 자신들의 이론적 모델로 하여 밝혀낸 독특함(sing -ularite)과 증거성(attestation) 그리고 지칭성(designation)으로 정의되는 사진의 특성에 관계하고 있다. 소위 사진-인덱스는 전혀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사진-관객의 주관적 관점(사진적인 것)을 가지며 그때 외시된 이미지는 단지 자국 혹은 징후일 뿐이다. 알다시피 바르트는 자신의 이론적 입지를 위한 배경 혹은 모델(탈-코드)로서 사진 이미지를 도입했는데 특별히 여기 보이는 유명한 두 장의 사진(밝은 방)을 통해 그는 새로운 사진 읽기의 실례를 결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1959년 5월 1일 노동절 모스크바”라는 제목을 가진 사진(사진 4)으로 우선 여기서 문제는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는 할머니이다 : 할머니는 찍히는 줄 알았기 때문에 이미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클라인은 중앙에 있는 할머니를 겨냥했다. 그러나 나머지 다른 여섯 인물들은 작가를 알아보지 못한 채로 찍혀졌고 각각은 사진기 앞에서 조롱, 불안, 멸시  등 다양한 심리적 기질들을 보여 주고 관객들 역시 이러한 감동적인 다양성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바르트가 보기를 원하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자료이다 : 예컨대 여기 1959년 러시아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또 어떤 모자를 썼는지, 어떻게 그들의 머리를 잘랐는지 등의 사실적 자료들이다. 한 마디로 사진 읽기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클라인은 자신의 인터뷰에서 바르트가 자신의 사진에 대해 언급한 사실들에 관해 “내가 놀란 것은 사진가의 어떤 의도를 알려는 관심에 대한 그의 거절이다”라고 진술했다. 마치 사진을 우연히 발견된 오브제로 간주하듯이 ...⑨

  또 한 장의 사진은 “뉴욕 이탈리아인 거주지 1954년”이라는 제목의 사진(사진 5)이다. 클라인은 거리에서 우연히 이 가족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기분 좋게 가족은 그들 스스로 알아서 (포즈를 위해) 그룹을 만들었다. 아이의 권총을 가진 엄마는 아이의 관자놀이에 갖다 대었다. 아이의 눈은 자신의 엄마 쪽으로 돌려 웃었고 자신의 손은 엄마의 손으로 가져갔다. 큰 누나는 렌즈 앞에서 애교를 부리기 위해 상체를 숙였다. 한방의 사진 .... 거기서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윌리엄 클라인은 뉴욕 이탈리아인 거주지의 젊은 아이들을 찍었다. 그것은 감동적이다 ... 그러나 내가 끈질기게 계속 보게 되는 것은 이 개구쟁이의 썩은 이빨들이다”⑩ 결국 바르트가 몰두한 것은 문화적으로 약속된 주제 즉 촬영자의 의도(스투디움) ⑪가  아니라 푼크툼(punctum)이었다. ●
 
주요 참고 도서
William Klein, New York, , Edition du Seuil, Paris, 1956.
William Klein, texte de Christian Caujolle, coll. Photo Poche, C.N.P., Paris, 1985.
Close up, Thames & Hudson, London, Paris, New York, 1989.
Roland Barthes et la photo : le pire des signes, Cahiers de la photographie, Contrejour, Paris, 1990,
Gabriel Bauret, “Des fresques au 1/125 de seconde”, Zoom, avril, 1981, p. 92-99, 127.
Alain Jouffroy, “William Klein : un portrait”, Zoom, n 19, Paris, juillet 1974, p.33-57.
Michel Nuridsany, “William Klein : la cam ra visible”, Art Press, n 69, avril 1983, p. 4-7.
 
(주)
① 신문 삽화로서 사진의 도입은 19세기 말 사진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가능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보도사진으로서의 역할은 사실상 20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당시 사진 제작에 있어 많은 사진적 기술이 발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단지 삽화를 위한 자료로서 오랫동안 신문 삽화로 이용된 석판화를 대신하지 못했다.

② 참조, Alain Jouffroy, “William Klein : un portrait”, Zoom, n 19, Paris, juillet 1974, p.33-57.

③ 물론 영국의 초기 팝 아트 운동은 콜라주를 중심으로 보다 일찍 시작되었고 또한 로첸버그의 콤바인 페인팅과 존스의 그림 역시 50년대 후반에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팝아트의 시작(1958-1968)은 워홀와 로젠퀴이스트 등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광고 이미지의 출현 즉 1960년대를 기다려야 한다.

④ 엄밀히 말해 윌리엄 클라인 이전 1949년 레이몬드 하인즈 (Raymond Hains)는 광고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사진적 작품으로 만든 첫 사진가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완전한 사진이 아닌 일종의 꼴라주 방식을 하고 있다 : 사진과 영화의 형식을 도입하여 만든 게시광고물로 일종의 레디-메이드이다. 여하간 클라인과 하인즈는 서로서로 팝의 선구자들로 간주된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대조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근본적인 공통점은 광고와 글씨의 사진적 조합에 있었다.

⑤ 여기서 비평가들은 실질적으로 전문적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던 클라인의 사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하면 당시의 관점에서 지나치게 대상을 왜곡시키는 상식 이하의 촬영 기법은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의 기술적 무지에서 왔다고 한다. 사실상 클라인은 파리 체류시 자신의 회전 광고 사진 확대 기술을 위해 처음으로 사진을 이용했는데 당시 그는 화가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작가가 생존하는 오늘날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⑥ 몇몇 비평가는 이러한 왜곡된 형상들을 르네상스 당시 이탈리아 망투(Mantoue)의 테(Te) 성에 줄 로맨(J. Romain)이 조각한 괴물들과 비교하기도 한다.

⑦ 참고 Gabriel Bauret, “Des fresques au 1/125 de seconde”, Zoom, avril, 1981, p. 92-99, 127.

⑧ 클라인은 자신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 “나의 사진들은 어떤 고전주의를 들추어낸다. 아마 사진들이 수다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난 Piero della Francesca를 참조하였는데 사진에 있어 나의 항구적인 의도들 중 하나는 1/125 초의 속도로 일종의 프레스코 벽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난 의도적으로 기념비와 벽화를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자신의 예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프레낭 레제(Fernand Leger, 1881-1955)의 “인본주의”에 관계한다. 레제의 그림은 도시 사회의 저속성과 현대 산업 사회와 물질 사회의 병폐를 폭로하면서 인간의 사물화를 추상 기하학적 방식으로 풍자하였다.

⑨ 참고, Roland Barthes et la photo : le pire des signes, Cahiers de la photographie, Contrejour, Paris, 1990, p. 30.

⑩ 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 note sur la photograpgique, Cahier du Cinema / Gallimard / Seuil, 1980, p. 74.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사진 1)군중 속에서, 뉴욕가 5번지, 1955년
(사진 3)롤링스톤 공연, 파리, 1982년
(사진 2)추수 감사절 행렬, 뉴욕, 1959년
(사진 4)1959년 5월 1일 노동절, 모스크바
(사진 5)뉴욕 이탈리아인 거주지, 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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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테마 스투디움과 푼크툼
 
 거의 대부분의 사진에서 재현된 대상은 그것이 함축하거나 상징하는 의미 즉 문화적인 코드를 가질 수 있다. 가령 시골 초가집과 토담이 보이는 배경에 엉뚱하게도 현대식 양식으로 지은 주유소의 원색적인 건물을 병치시킨 사진이라든지 혹은 황량한 아스팔트 틈 사이로 돋아난 이름 모를 잡초를 보여주는 사진 등은 언제나 우리들의 문화적 코드에서 읽혀진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어느 시골 간이역에 짐 보따리와 지팡이를 쥐고 쪼그려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여주는 흑백 사진,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그러나 언젠가 본 듯한 향수어린 시골 풍경사진, 웃지도 울지도 않는 평범한 아줌마의 어설프고 어색한 사진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재현된 대상 뒤에서 다소 분명한 함축적 의미(신구 문명의 교차, 생명력, 소외된 계층 등)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사진을 보는 순간 응시자의 앎과 지식이라는 의식 속에서 즉각적으로 번역되어 읽혀지고 누구나 공감하는 객관 타당한 의미 속에서 이해되는 문화적 코드로 간주된다. 이와 같이 찍혀진 대상이나 상황 혹은 그 분위기가 문화적으로 약속된 의미 속에서 이해되는 개념적인 것을 총체적으로 스투디움(studium)이라고 하는데 그때 우리가 사진에서 느끼는 것은 거의 문화적으로 길들여진 평범한 감정을 들추어낸다. 이 용어는 언어학적으로 “함축적인 의미”를 뜻하는 내시(connotation)라는 말보다 더 포괄적인 용어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스투디움은 근본적으로 응시자의 주관적 관점이 아닌 외부로부터 길들여진 문화적 앎을 지칭하기 때문이다.1)

  그러나 사진에는 이러한 문화적인 코드와는 관계없는 또 다른 메시지가 있는데 그것은 응시자의 주관적 시각에 의해 감지되는 푼크툼(punctum)이다. 이 용어는 스투디움에 대비되는 총체적인 개념을 언급하기 위해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1980년 그의 책 “밝은 방”에서 명명한 지극히 개념적인 말이다. 스투디움 개념이 보여진 대상과 그 지시대상 사이에서 언제나 일 대 일의 대응 관계의 분명한 객관적 의미를 가질 때, 푼크툼은 흔히 우리가 인식의 실체로 인정하는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구체적인 현상을 지칭하지 않는다.
 
 이는 대상과 그 지시 대상 사이에서 언제나 일 대 다수의 불특정하고 불확실한 개념을 말하고 있다. 굳이 푼크툼을 정의하자면 사진적 사실주의에서 찍혀진 대상으로부터 “무엇을 의미(뜻)한다”라는 객관적 영역 밖에서 뭔가 분명히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하는 “의미의 과잉 혹은 결핍”을 말한다. 이때 존재론적 관점에서 볼 때 푼크툼은 의미를 갖지 않는 무(無)개념이 아닌 탈-의미 혹은 탈-코드(sans code), 다시 말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문화적 코드로부터 이탈한 다른 종류의 주관적 의미(가능태로서의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우리의 이성이 도달치 못하는 영역 속에서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어떤 이상한 현상이나 대상 혹은 예견치 않았던 사실에 대한 의문을 말하고 있는데 정상적인 논리로 볼 때 언제나 의식의 혼동과 무질서를 동반한다. 철학적으로 이러한 개념은 형상이탈(deconstruction)에 관계하는데 역사적으로 많은 선구자들의 진보적 예술 행위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고 오늘날 흔히 말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근본적인 표현 대상도 사실상 이성과 의미 그리고 문화적인 앎으로부터 이탈된 형이상학적 대상인 것이다.2)

  그렇다면 이러한 개념은 사진에 있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이며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가? 그리고 결과적으로 좋은 사진의 대상은 언제나 푼크툼의 재현만을 말하는 것인가? 이러한 논제에 대한 분명한 해명은 사실상 모호하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푼크툼은 의미적인 관점(인식론 혹은 형상론)에서 볼 때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개념 다시 말해 논리적으로 규명 불가능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푼크툼의 개념은 어떤 특정한 형상을 갖지 않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존재론적 관점에서만 이해되는 개념이다.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을 위해 우선 역사적으로 사진에 대한 관점의 변화, 즉 인식론적 규명에서 존재론3)적 시각으로의 의미적인 변화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을 보는 관점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가지로 이해되어 왔다.4) 우선 사진을 대상에 대한 정확한 닮음 혹은 복사로 보는 견해 즉 현실의 거울로 이해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진을 보는 것은 단순히 현실의 객관적 유사성에 국한되어  결국 사진은 근본적으로 현실의 모방이라는 것이다. 특히 19세기 당시 사진에 관한 많은 담론들은 단순히 사진의 모방력에 관계하고 있다 : 사진적 재현을 부정적 측면으로 이해한 보들레르(C. Baudelaire)는 기계적으로 완벽한 사진적 모방은 예술가의 천재성과 탁월한 재능과 절대적으로 대립되며 사진을 언제까지나 예술의 종으로 간주했다. 그와 같이 몇몇 픽토리얼리즘에 관계되는 철학적 담론을 제외하고는 19세기 사진에 대한 대부분의 사진적 견해는 예술로서의 표현적 사진이 아닌 단순한 현실의 복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세기를 넘어오면서 사진을 더 이상 단순한 현실의 모사로만 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사진을 현실의 모사(mimesie)가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현실의 변형”으로서 사진을 보는 관점이고, 또 한편으로는 사진을 언어가 아닌 단순한 사진 고유의 현상 즉 “현실의 자국”으로 보는 경우5)이다. “모든 사진 영상은 현실의 변형적 번역 즉 문화적이고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인 코드로 분석된다”라고 언급하듯이 사진을 현실의 변형으로 볼 때 사진적 행위를 상징적 문화적 그리고 이념적인 “코드화(codificaion)”에 둘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유형이 있다 : 외재적 코드화와 내재적 코드화. 사진을 외적으로 코드화 된 장치로 보는 관점은 오랫동안 언어학적인 분석 방법을 우선적으로 하는 구조주의(structuralisme)에 관계하는데 사진의 분석에서 언제나 관객에게 언어나 코드와 같이 일종의 암호풀이와 같은 분석(이미지-상징 혹은 이미지-코드)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특히 “기호-구조주의자”들에 의해 이론화된 이러한 유형의 사진은 찍혀진 대상이 이미 작가와 관객이 암암리에 약속된 공통된 의미 혹은 코드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보여진 그 대상으로부터 분석적 이해와 번역적 해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우리들의 사고를 지배한 의미론적 관점과 논리적인 체계에서 이해되는 전형적인 사진의 이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적 문화적 인류학적 혹은 과학적인 참조에 의해 객관 타당한 의미 속에서 잡혀진 사진을 “외적인 코드화”로 볼 수 있는데 많은 보도사진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은 반드시 번역을 위한 어떠한 비평이 필요하며 언제나 사진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진술된 텍스트를 대하듯이 우리의 앎과 지식(스투디움)을 중심으로 번역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이때 재현된 이미지와 코드와의 언어학적 연결은 결국 비평의 기능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단순한 상징이나 코드를 초월하여 어떤 경험적인 사실이 아닌 감각적인 측면에서 존재론적 “내부적 진실”을 폭로하는 사진들이 있는데, 이러한 사진들은 언제나 객관적 의미와 익숙된 문화적 코드를 초월하여 단지 사인들(signes)로만 출현한다. 이때 사진을 “내적으로 코드화 된 장치” 혹은 코드 그 자체를 넘어 “내재화된 존재의 사진적 출현(음영 ombres)”이라고 한다. 이러한 출현은 대부분의 경우 사진기의 객관적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비밀스런 본질(essence)에 관계한다.
 
이와 같이 외적 현실(코드와 의미)을 초월한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비평은 최근 수 십 년간 가장 중요한 사진의 관점이며, 또한 언어로서의 사진이 아닌 탈-언어(코드)적인 관점으로 1970년대 후반 많은 구조주의자들이 사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변화를 가지고 온 존재론적인 시각(후기 구조주의)이기도 하다 : 대표적으로 영상사진과 조형사진(포스트모더니즘).

  그러나 여기서 재현되는 내재적인 형상 혹은 초월적인 코드를 비록 그 대상이 우리의 앎과 인식을 초월한 의미의 이탈(음영계)이라고 할지라도 그 대상을 일반적으로 푼크툼(punctum)이라고 하지 않고 탈-의미 혹은 시니피앵스(signifiance)라고 한다. 왜냐면 푼크툼은 작가와 사진의 관계에서가 아닌 장면과 그 장면을 응시하는 관객과의 주관적 관계 엄밀히 말해 관객의 의식이 사진에 투영되어 자아의 정신적 반응을 일으키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진적 현상(아우라의 정의)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푼크툼의 용어는 사진을 문화적 코드로 보는 관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현실의 자국” 즉 사진을 사진적인 것 혹은 인덱스로 보는 관점(사진을 보는 세 번 째 관점)에서 언급되는 용어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개념은 사실상 개념적으로 볼 때 앞서 언급한 의미의 영역을 벗어난 내재적 형상 혹은 작가가 감지한 은밀한 감각의 음색과 같은 문맥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바르트가 말하는 푼크툼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근본적으로 작가와 재현된 사진의 함축적 관계에서가 아닌 기계적 생산물인 있는 그대로의 사진적 사실주의의 절대적인 외시와 관객과의 지극히 주관적 관계에서 이해된다.6) 그래서 푼크툼의 출현(말하자면)은 작가의 예술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극히 평범한 광고 사진의 한 귀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리고 아주 낯선 장면 혹은 수수께끼 같은 익명의 대상이나 상황 등에서도 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상들의 공통점은 사진적 형태로 나타나는 “이상함”, “특이한 것”, “부분적인 것” 그리고 “불확실한 것”이다. 이때 감각의 주체는 응시자이고 언제나 장면으로부터 응시자로 하여금 설명할 수 없는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음색을 갖게 한다. 그것은 사진이 내포하는 함축적인 의미(스투디움)가 아닌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상식 밖의 무엇이다. 이것이 장면을 떠나 응시자의 감각을 관통하는 화살(pointe)과 같은 감정의 동요자 즉 푼크툼이다.7) 그때 출현하는 음색(impression)의 이미지는 이성의 가장자리에서 부유(浮游)하는 달무리 같은 존재일 뿐이다.

  바르트는 일인칭 서술 형식으로 기록한 그의 책 “밝은 방”에서 바로 이러한 비정상적인 감각의 설명을 의미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이상하고 특이한 대상들(구두끈, 썩은 이빨, 베레모, 긴 손톱, 큰 구두 등)에 빌리고 있고, 또한 그는 푼크툼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스투디움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문화적인 기능에서 충분히 친숙한 의미의 확장"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비논리적인 감각은 사실상 이미 1930년대 발터 벤야민이 발견한 “아우라(aura)”의 누설과 그후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이 언급한 사진의 존재론적인 특성(자동 생성) 그리고 바르트의 제 3의 의미 즉 옵튜스(obtus)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이는 곧 영상 이미지에 은닉된 탈-코드에 대한 최종적인 진술임과 동시에 사진-인덱스론(photo-index)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간주되고 있다. ●
 
<주>
1) 바르트는 우리가 사진에 관심을 갖거나 그 사진들을 정치적인 증거물로 보거나 역사적인 좋은 증거물로 그것들을 음미하는 것은 바로 스투디움에 의한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형상들과 제스처들 그리고 행위들에 참여하는 것은 문화적<이러한 내시(connotation)는 스투디움 안에서 출현된다>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 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공동체 사회에서 그 현상의 원인과 결과가 비교적 분명하게 논리적으로 밝혀진 현상이나 대상 역시 스투디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2) 이러한 관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은 형상론(인식론)자들이 70년대 말부터 수용된 후기 구조주의의 이론(생성 존재론)을 배경으로 일종의 탈-의미 혹은 아직 의미의 옷을 입지 않는 모습(figure) 즉 시물라크르에 의미의 옷을 입힌 예술적 표현에 관계하고 있다.

3) 여기서 존재론은 모든 대상을 형상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형상적 존재론이 아니라 생성-진화 혹은 생성-변전(devenir-forme)의 관점에서 진화 과정의 한 단계로서 이해하는 생성 존재론을 말한다. 예술적 실행에 있어 전통적 모더니즘의 논리적 시행에서 탈-의미적인 포스트 모더니즘 행위로의 이동은 바로 이러한 정신적인 변화에 의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4) 참조 Philippe Dubois, L'acte photographique, Natum, Paris, 1990.

5) 대략 후기 구조주의의 출발 시기로 간주되는 1970년대 말부터 이론화되는 생성 존재론적 관점으로 사진을 단지 빛의 낙인 혹은 징후 즉 “사진적인 것(The photographic)”으로 이해한다.

6) 왜냐하면 사진적 사실주의는 본원적으로 재현된 대상에 절대적인 신빙성(앙드레 바쟁의 자동 생성)을 주기 때문이다.

7) “뾰족한 도구에 의한 이러한 상처, 이러한 찌름, 이러한 표시를 지칭하기 위한 단어는 라틴어에 존재한다 : 이러한 단어는 단어가 또한 구두점의 개념(idea)으로 보내지고 내가 말하는 사진들이 사실상 이러한 예민한 점들로부터 점이 찍히고 가끔씩 얼룩이 지는 것보다 훨씬 나에게 와 닿는다 : 정확히 말해 이러한 상처들과 표시들은 점들이다. 그래서 스투디움을 교란시키는 이러한 두 번 째 요소를 나는 푼크툼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면 푼크툼, 그것 역시 찔린 자국, 작은 구멍, 작은 자국, 베인 작은 상처 그리고 또한 즉각적인 한방이다. 사진의 푼크툼, 그것은 그 자체에서 나를 찌르는(또한 나를 죽이고 나의 심금을 울리는) 우연이다.” 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 Gallimard, pp. 48-49.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Minigang, Amsterdam Avenue, New York,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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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진의 출발을 흔히 1950년대로 간주한다. 이러한 구분의 가장 큰 이유는 전후 대중 전파 매체(특히 텔레비전)와 정보산업의 발달로 사진이 소위 상황 미학(보도 사진)이라는 객관적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전달 매체에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표현 매체로의 개념적  이동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 1950년대는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그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시기였는데, 이 시기는 거의 모든 자연적 개념들(예술까지도)이 급진적으로 인공화(예를 들어 새로운 학문으로서 수용되는 많은 과학적 공리들) 되는 때이기도 했다.
 
특히 후기 정보산업의 개화기인 1950-1975 기간은 1930년에서 1950년 사이의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기를 거쳐, 19세기 후반기의 산업 혁명의 기술적 발전과 같이 또 한번 엄청난 과학적 도약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혁명은 지난 세기의 산업혁명과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전파 매체의 급속한 발달에 의해 엄청나게 팽창된 대중 지향성과 물질 문명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그 맹신을 들 수 있다.
 
사실상 1948년의 정보 이론과 인공 두뇌학의 발달, 1952년 유전자의 이중 나사구조 DNA의 발견과 단백질의 기본이 되는 아미노산의 획득, 1964년 빅뱅의 개념 그리고 1969년 아폴로의 달 착륙 등 지속적인 과학의 경이로운 발전은 이성과 과학에 대한 신빙성을 더욱 더 높였고, 이로 인하여 우리를 둘러 싼 모든 물리적 사실뿐만 아니라 정신적 현상까지도 우리는 사실상 공리(수학, 논리)개념을 통해서만 그 설득력과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 인간은 자연의 신비와 기상까지도 지배하고, 장치 인간에 유용한 모든 것은 19세기 계몽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과 같이 하나로 통제된 이성(인간의 의도)에 의해 가능하다는 확신을 더욱 더 분명히 가졌다. 이는 곧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 인공의 불균형 속에서 어떤 “중간 현실” ① 이라는 조화 속에서 현대 문명과 철학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또 다른 숙제를 갖게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차 대전 이후의 예술은 크게 대중과 물질(오브제, 키츠) 즉 지나치게 팽창된 인공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팝 아트(Pop Art)와 누보 레알리즘(Nouveau Realisme)을 들 수 있는데, 그것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후기 산업 시대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문화에 대한 반-인공주의였다 : 앤디 와홀(Andy Warhol)의 유령 같은 마릴런 먼로 얼굴이나 소비 사회의 풍요로움 그 이면에 숨겨진 허상 ② 을 폭로하는 많은 일상 오브제의 예술적 활용 즉 키츠 미학은 정확히 당시 물질 사회의 반작용으로서 나타난 반-인공주의였다.
 
이와 같이 전후 예술적 영역에서 작가들이 던지는 공통된 메시지는 인공에 침식된 자연에 대한 예술적 의문과 그 장막에 출현하는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의 영역에서 1950년대 이후 소위 영상사진이라고 하는 현대사진의 특징 또한 반 - 인공주의와 시뮬라크르의 폭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 작가들이 재현하는 예술적 방식은 물론 각자 달리 나타난다. 의심할 바 없이 어빙 펜(Irving Penn)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선두주자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사진은 전달의 매체가 아니라 표현적 도구

1917년 미국의 플레인필드(Plainfield)에서 태어난 어빙 펜은 1934년 필라델피아 산업예술학교에 들어가 예술가(특히 화가)로서의 기질을 쌓는다. 그후 그는 그의 예술적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선생과 제자 관계)인 하퍼스 바자르(Haper's Bazaar)의 알렉스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 1898-1971)를 만난다.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인도에서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41년 사크스(Saks)라는 잡지에서 일하면서 에반스와 앗제 스타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는 두 번째 결정적인 만남인 알렉산드 리베르만(Alexander Liberman)을 만나는데 당시 뉴욕 보그잡지 예술 부장인 리베르만은 1943년 펜을 보그(Vogue)잡지의 조수로 고용하여 그에게 잡지 커버를 맡긴다. 젊은 사진가는 패션 액세서리로 된 양식화된 정물을 실현하는데 그 형태와 구성은 엄격하고 단순하고 그리고 당시 아방가르드 사진에서 또한 패션 잡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탁월한 질을 보여준다. ③ 

1947년부터 그는 전쟁 전의 “상황” 미학(보도사진)과 단절을 가지면서 아주 간결한 스타일로 유명 예술가와 문학가들의 얼굴을 촬영한다. 원래 화가 지망생으로서 다양한 미술과 조형적 지식을 갖고 있었던 그는 이미 사진은 더 이상 전달 매체가 아니라 현실의 이면을 암시하는 표현적 도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펜이 자신의 개인적인 스타일을 확고히 한 결정적인 시기는 자신이 파리에 머무는 1949년에서 1950년 동안이었다.
 
 거기서 그는 초상, 누드, 패션, 정물 등 다양한 양식을 두루 거치며, 이미 특징적으로 배경과 형태 사이에 강한 콘트라스트와 간결하고 청명한 실루엣 그리고 대조적인 구성(특히 누드에서 어두운 톤을 배경으로 배치된 아주 하얗고 창백한 모델)을 분명히 했다. 또한 컬러의 특징에서 펜은 아주 밝은 색채와 공간을 가지는 패션이나 누드에 모든 문화적인 미적 개념(세련됨과 우아함)을 적용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어빙 펜의 사진이 가지는 예술적 가치가 단지 이와 같은 우아함과 세련미의 극치에만 있을까 ? 물론 어빙 펜의 사진은 외관적으로 우선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고전미의 예찬이나 거의 완전한 상업 광고사진으로서 절대적 양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양식들은 모든 가치를 물질에 두는 상업에 의해 예술을 부패하게 하고 또한 이미 1850년대 보들레르가 그토록 경계했던 타락한 예술 그 자체가 아닌가 ?
 
사진의 진정한 예술적 메시지는 이러한 외적인 양식(형식) 이면에 은닉된 내재적 존재의 출현 즉 시뮬라크르의 누설에 있다. 프로이드 심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기억-화면(은페/위장 기억)으로 이해되는 이러한 누설 ④ 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두 가지 서로 상반된 요소들의 병치와 대립에서 온다. 다시 말해 외면적으로 완벽히 위장된 세련미와 동시에 전통적 그림의 예술적 제스처와의 의도적인 병치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면성은 이미 앤디 와홀이 거의 산업용 벽지가 된 또는 사실상 상업용 광고지가 된 자신의 “인공적” 그림(현대 대량 소비 산업의 은유)에 의도적으로 보상효과를 주기 위한 “그림화 작업(picturalisation)”과 유사하며, 또한 리차드 아베돈(Richard Avedon)의 유명인의 초상사진에서 보여주는 “가식과 진실의 폭로” 즉 인간의 사회적 마스크와 생물학적 진실 사이의 딜레마와 같은 이중 구조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어빙 펜은 자신의 패션사진과 광고사진의 많은 경험을 통해 오늘날 대량 소비 사회가 요구하는 대중적인 미는 오랫동안 예술의 자연미가 아닌 인공의 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예술 역시 이미 상업화된 인공 예술임을 간파했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다이안 아버스나 리차드 아베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패션은 여자를 상기시킨다.
 
그래서 패션은 전통과 관습에 의해 체계화 된 미, 나르시즘, 변심, 교태의 개념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흔히 남자들에 의해 생각되는 패션 오브제로서 여자는 자연적 미의 상징이 아니라 인공적이고 모조적인 미의 상징이다 : 펜에게 여자는 그의 정열을 실현하게 하고 그의 스타일을 무한히 다양하게 하는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 또한 여자는 남자(그리고 여자) 관찰자의 이상화 된 시각을 보들레르 이후 단지 “이성과 계산”의 결과만을 낳는 귀족적이고 이상적인 미에 관계한다. “모든 아름다운 것과 귀족적인 것은 이성과 계산(예견)의 결과이다 (...). 그래서 패션은 자연적인 삶이 거기서 상스럽고 세속적이고 추잡한 것을 축적하는 모든 것을 넘어 인간 두뇌에 떠다니는 이상의 취향의 증세”⑤  로 간주된다.
 
결국 작가는 오브제에 영원의 인상(L'impression d' ternite)을 수여하면서 의도적으로 사진 이미지에 연극적이고 인공적인 강렬한 불빛 아래 소비 사회가 요구하는 아주 세련됨과 우아함 즉 미리 연출된 인공미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이러한 사진이 실리는 고급 잡지의 호화로운 지면은 대중 광고들이 상연하는 일종의 부조리 연극을 말하고 있고, 나아가 결국 오늘날 소비 사회를 암시하는 플라톤의 동굴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그는 결코 사진을 우연에 맡기지 않는다 : 포즈, 자세 그리고 제스처 이 모두는 세심하게 계산되고 의도적으로 연출된다. 예를 들어 1950년 모델 잔  패체트(Jean Patchett)를 재현한 보그지 표지는 펜의 진행에 있어 완벽한 삽화를 보여준다. 여기서 재현된 여자는 펜 특유의 고전적 미와 정련된 형태들 그리고 완벽한 양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미의 극단적인 재현과 동시에 이와는 정반대의 예술적 요소들(말하자면 자연미)을 의도적으로 병치시킨다 : 어느 인공 스튜디오의 흰 직물 앞에서 익명의 페루의 인디언 (1948), 누벨 기네의 인디언 (1970), 모르코의 인디언(1971), 시가 담배꽁초(1972), 길에서 발견된 물건들(1975), 비참한 정물들, 강철이나 유골 블록(1980) 등과 같이 현실로부터 단절된 사물들의 하루살이 특징과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 그리고 그것들의 단순한 형태 등은 인공미에 의해 위장되고 사치스런 물건으로 구성된 컬러 정물의 요란한 치장과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의도적인 연출은 세속적인 현실을 승화시키는 일종의 묵시론적인 가장행렬을 보는 듯하다. 그때 이미지는 마치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과 같은 인상을 주는데 그 이유는 우선 재현된 이미지들은 흑백의 아주 부드러운 톤을 가지면서 세기초부터 포기되었던 그리고 펜이 다시 가치를 올려놓은 백금 - 팔라듐(le platine - palladium) 인화 기술 ⑥ 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예술적 규범에 역행한 사진이미지

사진의 형태로 나타나는 전통 예술의 재현은 오늘날 특히 광고와 대중 매체로 대변되는 물질 사회의 요구 즉 예술의 상업화에 분명히 역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작가의 정물 시리즈이다. 거기서 사진은 허무(Vanites) 와 해골(Memento Mori)과 같은 다양한 상징들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예술(Art)의 대문자 A(순수 전통예술)를 강조하면서 예술의 영역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활용은 예를 들어 해골, 말라빠진 꽃, 부서지고 망가진 오브제들 ⑦ 을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우리를 죽음으로 끌고 가는 시간의 빠른 소실을 환기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와 같이 바로크와 르네상스 그림 세계를 복사한 도상(초상, 성상)적 체제는 적어도 사진이 보여주는 미적 체제와는 다른 측면을 상기시키는데 그것은 그림의 원작을 말하는 그리고 모더니즘의 대표적 특징인 재현의 희귀함과 유일성이다. 한 번 이상으로 이러한 것들(희귀성과 유일성)을 얻기 위하여 펜이 적용한 예술적 전략은 그것으로부터 사실상 그림의 양식으로부터 사진적 흉내 즉 모작을 생산하는 것(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이러한 작전을 위해 그는 의도적으로 아주 큰 음화로부터 밀착 인화를 하면서 마치 사진이 그림이 된 듯한 풍부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 종이와 음화 사이에 놓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는 밀착과 무한히 세밀하고 고운 백금 인화는 감각적으로 (그림의) 희귀성을 주고 궁극적으로 작품에 유일성의 어떤 아우라를 부여한다. 또한 확대를 이용하지 않는 밀착인화에 필요한 보다 큰 대형 음화를 얻기 위하여, 펜은 사진기의 특별한 타입 ⑧ 을 활용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그림과 데생의 유일한 이미지를 생각하게 하면서 작품의 아우라와 유일성을 보다 분명히 나타나게 했다.

그는 해골, 담배꽁초 혹은 다른 찌꺼기들과 같은 이미 덧없이 분해된 오브제들(사진 3. 4)을 그의 단순하고 엄격한 미학에 복종시킨다. 그는 또한 일상의 찌꺼기 정물들을 구성하면서 그리고 17세기 네덜란드 정물들(사진 1. 2)을 흉내내면서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지배하는 현대판 “허무(vanit )”를 창조하려 했다. 수 십 년 동안의 패션 사진 활동을 통해 그가 반사적으로 직감했던 것은 허무와 죽음으로 가는 점진적 소멸 등과 같은 규명할 수 없는 그러나 유령과 같이 떠도는 시뮬라크르들이었다. 이와 같은 개인적인 체험들은 결국 유리 안의 마네킹, 시내거리 간판과 같은 무기력한 것, 시든 꽃의 꼬꾸라진 돌출부, 부패한 과일, 일상의 찌꺼기와 폐물들, 해골 등의 오브제를 의도적으로 이용하게 했다.

의도적으로 연출된 어빙 펜의 사진 이미지들은 당시 완전히 시대의 예술적 규범에 역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미지들은 새로움 그 자체였고 또한 시뮬라크르의 재현을 위해 폭로적 효과를 만들었다. 당시 대량 생산과 소비 사회의 급격한 양적 팽창(대중 광고) 속에서, 이성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인공미의 질적 팽창(패션) 속에서, 예술세계가 시선의 한계 자체의 묘사로서 상업 사진 쪽으로 돌린 바로 그 시기에, 펜은 의심할 바 없이 상업 사진의 세계를 피하기 위하여 예술 쪽으로 방향(반 - 인공주의)을 돌렸다. 많은 다른 위대한 사진가들처럼 어빙 펜 역시 이러한 한계를 초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펜의 사진은 우아함과 세련미, 양식과 형식의 극단적 인공미로 위장된 요란한 연극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면에서 여기 저기 출현하는 시뮬라크르 체제를 폭로하는 그리고 “예술적 작품”이라는 라벨을 단 부조리 연극이다. 그것은 또한 (전략적인) 예술적 퇴행 ⑨ 을 말하는 것이다.
 
주)
① 중간 현실(une realite  mediane)은 1958년 프랑스 작가 시몽동(Simondon)의『기술적 오브제들의 존재 방식으로부터(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에서 보여주는 개념으로, 현대 문화의 철학을 지탱하는 1962년 그의 유명한 작품 『새로운 시대(Nouvelle Age)』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참고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Cahiers de la photographie, Paris, 1992, p.136.

② 이는 철학적으로 말해, 물질 이상주의 주위를 떠도는 시대의 시뮬라크르(simulacre)로 이해된다.
 
③ 펜은 보그 잡지 역사상 처음으로 커버사진에 정물을 실현시켰다(보그지의 표지면은 컬러 정물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그의 모든 창작의 특징을 이룰 것이고, 또한 바로 이 잡지의 틀 안에서 그는 당시 컬러 사진의 거장이 되었고 곧 몇 몇 유명한 테마 시리즈들이 만든다.

④ 참조, Rosalind Klauss, "Note sur la photographie et simulacre", Le Photographique, Pour une Theotie des Ecarts, Edition Macula, Paris, 1990, pp. 208-222.

⑤ Texte Annemarie H rlimann, Irving Penn, cat. Musee d'art et d'histoire, Fribourg, Edition Benteli, Fribourg, 1994, p.10.

⑥ 펜은 특징적으로 풍부한 톤과 어두운 부분과 회색조의 예민한 그라데이션의 이유로 잘 알려진 백금-팔라듐(Le platine-palladium) 기법을 활용하였는데, 이 기법은 픽토리얼리즘 이후부터 번거롭고 복잡한 과정으로 인하여 이미 폐지된 방식이었다.

⑦ 여기서 어빙 펜이 재현한 오브제의 개념은 무시간 속에 놓여진 지속으로서의 오브제가 아니라, 생성-형성 과정 속에 있는 진행적인 무엇을 말하고 있다 : “과정(process)”이라는 말은, 중세부터 “실체/물질 substance”과 “사고 accident”, “대상 objectum = objet”과 “주제 subjectum = sujet”에서와 같이, 되고 있는 흐름(유통 /courant)이었다. 라틴어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브제의 개념은 라틴어에서 “objicere” (길을 가로질러 던지다)로 알려졌지만, “objectum(가로질러 거기 앞에 던져진 무엇)”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다.
 12세기부터 이러한 개념은 중세 라틴어로 objectum, 프랑스어로 objet, 영어로 obtect, 독일어로 Gegenstand, 네덜란드어로 voorwerp, 러시아어로 predmiet의 형태로 알려지면서 유럽을 휩쓸었다. 부르조아적 철학 용어로 대상과 주제(objet/sujet)로 짝을 이루게 된 이 개념은 혁명적이었다. 대상들(les objets)은 시스템의 유일한 책임자들인 “과정(processus)”의 국부적이고 이동하는(과도기적인) 생산물 이상 아니었다. 그와 같이 자동차는 자동차의 과정(processus Automobile)에 있고, 여자는 여자의 과정(processus Femme)에 있다. 참고, Henri van Lier, op, cit.

⑧ 이러한 타입의 사진기는 소위 “연회용 사진기 (chambre de banquet)”라고 하는데 주름과 거대한 사진판 덕분으로 그에게 촬영순간(대상을) 확대해주는 옛날 사진기이다. 그룹들, 축구팀들 혹은 자선단체의 조직을 촬영하기 위해 고안된 이러한 사진기 덕분에, 펜의 이미지들은 대부분의 사진기의 넓이와 높이의 비률과는 아주 다른 비율을 가지면서 길게 늘어진 큰 직사각형의 사진판을 가질 수 있었다.

⑨ 신디 셔먼의 작품이 예술적 카테고리들을 해체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의도적으로 연출한 상황에서 돌출하는 시뮬라크르를 따라간다고 할 때, 이와는 반대로 역전된 상황, 다시 말해 예술적 효과를 생산하기 위해 시뮬라크르의 문제를 감추고 거의 피할 수 없는 예술적 퇴행을(le retour du refoule) 실행하는 작가들 중 하나는 어빙 펜이다. 참고, Rosalind Klauss, op. cit., p.219.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사진 2) 뼈와 풍경, 1980
(사진 3) 담배꽁초, 시리즈 123번, 1972
(사진 4) 쓰레기 장갑, 1975
(사진 1) 해골과 정물,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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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테마 사진과 아우라 현상
 
 
 
 
사진 용어에는 “아우라(aura)”라는 말이 있다. 원래 이 용어는 사진에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존재론(음의 세계)적 용어이다. 이때 용어의 개념은 앎과 이성을 초월하는 그러나 반박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의 신비에 가까운 감정의 음색(tonalite)으로 의미의 영역밖에 존재(플라톤 동굴의 어둠)하는 비논리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응시자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어느날 오래된 사진첩을 뒤지다가 발견한 돌아가신 어머님의 사진을 보았을 때 웃고 있는 젊은 어머니의 얼굴에서 갑자기 눈가에 고이는 눈물이라든지, 시골 대청 마루 위에 걸려있는 오래된 가족사진에서 유령같이 모여 있는 어느 가족, 연도가 1951년이라고 적힌 낡은 사진에서 웃고 있는 익명의 군인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기분, 가로등만 훤히 켜진 아무도 없는 대도시의 야경 사진에서 느끼는 왠지 모를 오싹한 공포감, 혹은 지하철 광고 사진에 흐리게 잡힌 어느 소녀의 옆모습이 주는 어떤 아쉬운 기억 등을 들 수 있다. 공통적으로 그러한 감정들은 모두 보여진 대상으로부터 “나” 즉 “경험적인 연상”과 관계한다. 특히 찍혀진 인물의 운명(과거 속의 미래)을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더 이러한 사진적 현상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결코 단순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라틴어 어원을 갖는 아우라는 그 사전적 정의를 참조해 보면 종교적 후광, 무리(halo) 등 어떤 사물이나 존재를 감싸는 정신적인 분위기로, 사진의 어떤 객관적 의미보다는 주관적인 가치를, 또한 물질적이라기보다 신비적인 측면을 갖는다고 한다. 이는 또한 “미적이고 의미적인 방식에서 절단된 낡은 타원이 가끔씩 쬐는 수증기 같은 원에 비유하고 또 그것은 일종의 가벼운 원(기체)이다. 그 속에서 훈영(후광)을 보지 못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마치 토스칸과 옴브리(이탈리아)의 옛 거장들이 일상생활에서 기적을 수행하고 있는 성인들 얼굴 주위에 그려 넣는 금관과 같은 것이다.”1)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우라를 상기할 때 우선 모델의 “성스러운 것” 혹은 “이미지의 유일성”과 연관시켜 흔히 이미지 그 자체에서 또 다른 의미나 구체적인 사실이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초상은 아우라의 마지막 피난소이고 그 아우라가 인간의 얼굴 위에 최후의 불똥을 던진다”라고 1930년대 당시 재생 이미지의 문화적 가치에 대하여 탈 신성화와 세속화(아우라의 상실)를 주장했다.
 
 이러한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아우라는 일종의 사진 이미지 그 자체에 실질적으로 이미 함축되어 있는(전혀 응시자와 관계없이) “신성한 이미지” 혹은 그러한 실체를 말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래서 객관적 논리만을 수용하는 양의 세계(모더니즘)에서 볼 때 “아우라”는 흔히 복제된 이미지에서는 볼 수 없는 어떤 작품의 개성이나 독창적인 분위기를 지칭하고 있다.2)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단지 지나치게 구조화된 기호-논리에 의한 비유적인 수사학에 불과하다. 아우라는 결코 실체론적 대상으로 규명되지 않는다. 비록 이러한 현상이 언어의 역사와 사진 물리학 혹은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설명된다 하여도 사실상 아우라의 정확한 규명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아우라는 단지 의미의 과잉을 말하는 푼크툼의 비논리적 영역에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의 상실”은 대량 복제로 인하여 이미지 그 자체에서 분실된 “오리진”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미 함축되고 의미화된 대상에 대한 응시자의 무반응 혹은 무감각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아우라의 현상을 다소 비현실적인 형태로 사진이 은닉한 또 다른 고유한 이미지로 생각한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오랫동안 우리가 의미적인 분석에 너무 익숙해 왔기 때문이다. 아우라는 사진에서 지칭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사진의 대상으로부터 전염된 응시자의 주관적 기억 연상에 관계할 뿐이다. 역으로 창작자의 입장에서 작가가 포착하려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으로부터 전염된 아우라의 음색(대표적으로 초현실적인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재현된 사진 이미지(사진적인 것)는 다시 한번 더 언급하지만 대상에 이미 본원적으로 내포된 장면의 재현(미술의 경우)이 아니라 사실상 작가도 모르는 전혀 불확실한 감각적인 재현(사진의 징후)일 뿐이다.
 
왜냐면 사진기는 번역적인 도구가 아닌 내면으로 향한 일종의 더듬이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작가가 감지한 아우라를 흔히 자신만이 감지하는, 극히 주관적인 감각적인 “느낌(sens)” 또는 “기분(humeur)”3), 쉽게 말해 “직감(intuition)”이라 할 수 있다.

  아우라에 관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을 해보면 철학적으로 실체론과 존재론의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이론들은 인식(陽  pist mologie)과 비인식(ontologie / 음영 蔭映 ombres) 혹은 실체와 존재의 철학적인 대립 속에서 서로 공존하여 왔다. 실체론적으로 본 아우라는 보다 논리적인 설득력을 갖고 있다. 즉 아우라는 하나의 물리-심리적 현상으로, 일반적으로 대상이 흐리고 불확실한 실체 혹은 그러한 효과가 만들어 내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아우라는 근본적으로 사진의 흐린 효과(레미니센스의 은유)에 직접적으로 관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4) 라틴어에서 아우라는 그 첫 의미로 가벼운 입김, 안개, 바람 그리고 공기와 대기까지 지칭한다. 또한 생리학적 용어로 어떤 신체, 어떤 실체의 방출을 지칭하는데 이렇게 만질 수 없는 유동 즉 입김은 신체와 실체에 의해 생산된다. 사진에서 아우라의 물리적 실체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효과에 빚지고 한다.

  한편으로 아우라는 사진의 부드러운 중간 톤을 말하는 메조-틴토(mezzo-tinto)로부터 야기된다. 원래 이것은 연속판인 동판(부식)에서 색조의 “연속(continuit )” 즉 가장 밝은 빛에서 가장 어두운 그림자로의 절대적인 연속적 색의 변이를 말하는데 여기서 중간 색조는 시각적으로 아주 부드러운 효과(거의 환상적)를 준다. 이러한 효과는 전통적 그림의 대기 원근 효과, 즉 “스푸마토(sfumato)”처럼 그림의 중요한 “환기적 효과”와 동일시되었는데, 한때 19세기의 많은 사진들(특히 초상사진들)에 있어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비현실적인 초상)를 위해 메조-틴토를 의도적으로 선호했다. 게다가 제작 과정의 긴 노출시간과 기술적 문제로 당시에는 이것을 하나의 효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딱 한 장만 존재하는 거의 모든 다게레오타입에서 나타나는 “연속적인” 중간 톤은 모델을 유령과 같은 비현실적인 인물로 재현하였다.5)
 
그때 그 극단적인 부드러움 속에서 언제나 인물을 감싸는 무엇을 발견하는데 이것을 아우라로 보았다. 사실상 1930년대 벤야민의 텍스트에 예로서 언급된 사진들은 공통적으로 마치 동판 위에서의 메조-틴토처럼 극도로 부드러운 흐린 안개 효과에 관계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아우라는 순수하게 물리적으로 사진에 직접 출현한다. 아우라 현상은 사진적인 실험에서 정확히 물리적 현상으로 실재하는데 그것은 무리(halo)이다. 무리(달, 해의 무리와 같은)는 예를 들어 창에 의해 아주 강하게 비친 실내를 촬영할 때 또 카메라를 창으로 향하게 하여 촬영할 때 특별히 생기는 빛의 방사로 나타난다 : 그때 인화 작업에서 창가들은 마치 빛에 의해 먹혀진 것과 같이 흐려지고 불확실하게 나타나는데 일종의 후광(aureole)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현상은 메커니즘 측면에서 의외로 단순하게 설명된다. 물론 근본적으로 기술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오랫동안 유리판으로 작업한 19세기 많은 사진가들이 애착을 가진 것은 밀착 인화에서 유리판의 부드러운 입자(연속적인 중간 톤)로 인하여 사진에서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현실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극도로 선명한 입자(pique)도 아니고 더욱이 칼로타입에서 종이의 거친 입자가 주는 흐린 효과도 아니다. 엄밀히 말해 이는 광학적으로 빛이 표면의 감광층을 지나 유리판을 통과할 때 유리판의 두께로 인하여 생기는 빛의 굴절 현상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인화에서 시각적으로 가벼운 무리현상을 일으킨다. 이러한 현상들은 대표적으로 으젠 앗제의 많은 유리판 사진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이와 같이 아우라는 벤야민의 존재론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진 그 자체에서 하나의 물리-심리적 현상으로 간주되었고 또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이러한 현상은 마치 화가가 자신의 화폭에 유일한 작품이라는 의미로 기입하는 사인처럼 자신의 독창적인 사진적 효과로 간주되었다. 특히 논리와 의미를 기반으로 하는 모더니즘 관점에서 볼 때, 아우라는 어떤 작품의 존재적인 유일성을 보장해 주는 필요조건 즉 독창성(authenticite)이라는 개념과 동의어로 간주되었다. 모더니즘은 그처럼 아우라의 실체론적 개념에 의미적인 옷을 입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론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우라는 단순히 과학적인 현상 즉 빛의 굴절이나 경계면의 흐린 효과 혹은 빛 바랜 세피아 색으로부터 야기되는 물리-심리적 효과로만 인정되지 않는다. 더구나 20세기에 들어 와서 렌즈와 음화의 급속한 질적 향상은 사실상 아우라에 대한 관심을 실체론적인 분석(인식론)에서 수수께끼와 같은 인간의 존재론적 정신 현상으로 이동시켰다. 왜냐하면 아우라 현상은 단지 흐린 효과에서만 유발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선명한 사진에도 일어날 수 있는 극히 유동적이고 주관적이고 또한 프루스트의 무의식적 기억처럼 대상과 응시자의 쌍방적인 정신현상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처음으로 초월적인 사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무리(halo) 혹은 그림에서 성인의 후광으로 이미 알려진 “아우라”라는 용어를 차용한 발터 벤야민은 사실상 아우라 현상을 앞서 언급한 실체론적 방법으로 밝히지 않는다 : 벤야민은 힐과 아담슨, 으젠 앗제, 오귀스트 잔더 등의 사진을 분석하면서 사진을 사진 그 자체에서 발하는 비현실적 출현을 직접 기술하고 있다.
 
 그는 사진에 출현하는 현재적인 이미지와 그 출현 속에 지나간 과거의 여운(reste) 혹은 향수(nostalgie)가 발한다고 하면서, 반박할 수 없는 과거 사실의 출현 주위를 맴도는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예리한 감정, 이러한 감정을 “아우라”라고 분명히 언급했다. 이것은 그림이나 다른 예술에서는 볼 수 없고 유일하게 사진에서만 출현하는데 응시자의 내부에서 은밀하고 주관적이고 무의식적인 자리를 만든다. 바로 여기에 사진의 독창성이 있다고 한다.6) 벤야민은 모든 것이 괴상하고 모조적으로 나타나는 카프카(Franz Kafka)의 젊은 사진(옛날 사진들)에서 또한 뉴 해븐(New Haven) 항구의 어부들을 보여주는 힐과 아담슨(Hill and Adamson)의 사진에서 아우라의 탁월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 “(...)아주 정확한 사진기술은 손으로 그려진 어떠한 그림에서도 볼 수 없는 어떤 마술적인 것을 누설하고 있다.
 
사진사의 노련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또한 어색한 모델의 포즈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은 슬그머니 사진과 유사한 이미지 속에서 자신 스스로 지금 그리고 여기서 튀는 일종의 불똥을 찾게 된다. (...)”7) 여기서 말하는 불똥은 어떤 이상함, 회고적인 시각, 멜랑꼴리 등과 같은 응시자의 경험과 체험에 관련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음색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진 그 자체에서 응시자로 전염된 존재론적인 출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우라에 대한 벤자민의 존재론적 발견은 당시 인정받지 못했고 오랫동안 사진적 현상이라는 구조주의의 실체론 속에서 거의 잊혀졌다. 그후 이러한 존재론적인 재발견은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의 “자동 생성(La genese automatique)”을 거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참조주의까지 무려 반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때 아우라는 신비적이고 회고적이고 또한 역사적인 문맥으로 축소되면서 더 이상 실체론적인 의문을 달지 않을 확실한 어떤 사진적 공리가 된다 : 푼크툼. ●
 
1) Alain Buisine, Eugene Atget ou la melancolie en photographie, Edition Jacqueline Chambon, Paris, 1994, p. 118.

2) 아우라는 원래 사진의 대상과 응시자의 관계에서 주관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주의(모더니즘)적인 관점에서 용어의 진화에 따라 모든 예술작품에 함축된 “오리진” 혹은 “독창성”과 동의어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실체론적 관점에서 아우라는 대상을 흐리게 하여 응시자로 하여금 회고적인 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일종의 환기적 효과로 간주되기도 한다.

3) 이러한 용어들는 “나”라는 이성의 범주 즉 주관적 관념론(칸트)의 범위를 벗어나 거의 신비론과 유신론에 가까운 번역 불가능한 존재론적 용어들이다. 유사한 용어로는 강렬한 인상, 도취, 황홀, 절정, 기질, 음색, 멜랑콜리 (독/stimmung, gemut, 불/tonalite , impression, temperament ...) 등의 개념을 들 수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이러한 존재들에 대한 추적 바로 이것이 진정한 창작의 원동력이다. 참조. Alain Bonfand, Paul Klee, L'oeil en trop, Edition de la diff erence, Paris, 1988. 그때 아우라는 사진적 매체에서 발견된 최초의 이론적 용어(1930년대)이다.

4) 엄밀히 말해 이것은 착각이다. 결코 기억은 시간의 경과에 비례하여 사라지지 않는다. “사진은 기억”이다(Philippe Dubois)라는 명제에서 흐린 사진을 기억의 쇠약 혹은 망각으로 쉽게 간주하는 것은 우리들의 “논리적 기억(la m emoire logique)” 때문이다. 참고, 앙리 베르그송의 “무시간적 기억 회상”(La matiere et la memoire).

5) 유령과 같은 이러한 초상은 손으로 직접 그려진 사실주의 초상화(예로 현대미술에서 게랄트 리히터의 “48명의 유명 초상”)를 상기시킨다.
  
6) 사진이 그림과 달리하는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최초의 존재론적 발견으로 약 15년 후 앙드레 바쟁이 언급하는 “자동생성(일종의 무의식적 연상)”과 같은 문맥을 가진다.

7) W. Benjamin, “La petite histoire de la photographie”, Poesie et revolution, Danoel, paris, 1971.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으젠 앗제, 브로카 길 41번지,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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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질적 정신적 현상(phenomene)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인식 대상으로서 구체적인 것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현상에 대하여 그 실체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흔히 앎(“보이는 세계”)이라고 하고 철학 용어로 외재적 형상(Forme)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이와 반대로 어떤 현상의 분명한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는 그러한 비 구체적인 무엇을 말한다. 흔히 이것을 인식론적 관점에서 “안 보이는 세계”의 어떤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존재론적 용어로 내재적 형상(La figuralite  immanente)① 이라고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우선 전자의 경우는 산 하늘 강 집 사자 코끼리 등과 같은 자연적 형태는 물론이고 사랑, 평화, 동정, 소외, 부조리, 도덕적 고발, 삶과 생명의 예찬, 인본주의 등과 같이 관념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읽혀지는 보편적 앎(코드나 일반적인 상식)을 지칭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물질적이든 관념적이든 언제나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는 객관적인 인식 대상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러한 인식 대상들이 아니라 이성과 논리 영역밖에 존재하는 그러나 이미 그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후자의 경우이다.
 
 예컨대 꿈이나 환상, 예수의 형상(신의 산재성), 음악의 인상, 작가의 예술적 직감 등은 가장 전형적인 내재적 형상들이다. 또한 일상 생활에서 갑자기 돌출하는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나 충동, 굳이 예를 든다면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 온 배우자나 가족에게 느끼는 갑작스런 혐오감, 첫사랑의 이미지 혹은 첫인상에 느끼는 강렬한 애정, 변질된 성적 욕구, 엄마 품을 떠난 아이가 느끼는 엄청난 공포와 같은 아주 익숙한 곳에서 아주 낯선 이상함, 어떤 자극에 의해 불현듯 솟아오르는 레미니센스와 멜랑콜리 그리고 그 순간의 도취나 자살 충동 등도 역시 상황(특히 일상 생활)에 은닉된 내재적 형상들이다. 이것들은 특징적으로 “어떤 형태의 구조를 집어치우고 근본화 되고 추상화 된 형태를 가지면서 잠정적이고 예언적인 또한 예견치 않은 무엇(라틴어 : numen)을 말한다”.②  또한 이것들은 주관적이고 비 구체적이고 정신적이고 상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무형의 존재들 다시 말해 흔히 우리가 현실이라고 간주하는 인식 영역에서 이성과 논리로 규명 불가능한 것들(시뮬라크르 / 음영)로 대부분의 경우 단지 어떤 사건(ev enement)이나 상황에 대한 비 구체적인 원인으로만 감지되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들이다.

사실상 이러한 무형의 존재들은 오랫동안 위대한 예술가의 근본적인 재현 대상이 되어 왔고 특히 오늘날 현대 미술의 중요한 테마들 중 하나(일상과 시뮬라크르)를 이루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존재에 대한 시각적 재현은 흔히 창작 행위의 가장 본질적인 제스처로 간주되는 추상과 표현주의 형태로 나타난다.③ 그러나 일종의 시각적 번역으로 간주되는 그림과는 달리 과거 사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재현만을 허락하는 사진의 경우 특히 사진의 기록성과 그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보도사진에서 앞서 언급한 내재적 형상들은 사진의 재현 대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진은 내재적 형상을 재현하는데 있어 그 어떤 전달 매체보다도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사진적 사실주의④의 개념적 활용은 현대 미술의 가장 중요한 담화로 나타났고 또한 사진은 소위 시뮬라크르(포스트 모더니즘에서 도용, 혼혈, 잡종 그리고 저항과 자아상실 등)의 재현에 있어 필수적인 예술적 표현 도구가 되었다. 왜냐하면 내재적 형상은 거의 대부분 상황 속에서 은닉되고 암시되기 때문인데 이때 사진은 상황 설정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활용된다.
 
정상적인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 내재적 형상은 일반적으로 한 장의 사진이 보여주는 절대적 사실주의(analogon)로부터 즉각적인 감각 즉 아우라, 탈코드, 푼크툼 등의 형태로 발산된다. 특히 앗제나 빌 브란트와 같은 초현실주의 계열에 속하는 많은 작가들의 사진에서 포착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분위기나 인상은 이러한 초감각적인 존재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관객이 가지는 즉각적인 인상은 사진의 단편적 상황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내재적 형상은 단편적 상황이 아닌 특히 시퀀스 방식과 같은 사진의 연속적 상황에서도 암시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70년대 듀안 마이클스의 사진들이 바로 이러한 연속적 상황 설정을 위해 동원된 일종의 논리적 배경들이고 궁극적으로 그의 사진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것은 일상 생활에 은밀히 감추어진 감각적 메시지들이었다. 이때 관객이 가지는 감정은 사진이 외시하는 상황으로부터 즉각적으로 반사되는 의미적인 무엇이 아니라 마치 영화나 연극에서 상황이 끝난 후 은밀히 남는 잔여 감정과 같은 것이다. 미셀 푸코(M. Foucault)는 듀안 마이클스 사진에 대한 자신의 텍스트에서 이러한 여운을 “사고-감정(pensee-emotion)”⑤이라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일상 생활에서 비논리적으로 잠재된 존재(안 보이는 세계)의 누설을 위해 마이클스는 대부분의 사진 구성에서 시퀀스(sequence) 방식을 도입하여 의도적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논리적 상황을 설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관객 스스로의 사고-순환을 위해 도입된 시퀀스 방식은 마치 홍당무로 당나귀를 유인해 함정에 빠뜨리는 경우와 같다. 왜냐하면 내재적 형상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대상들로 단지 사건이나 상황의 불확실한 원인으로만 출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재적 형상의 추적에 관하여 마이클스는 사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 “사진은 단지 암시적 출현을 목적으로 하고 모든 것은 사진의 대상이 된다. 특히 생의 고민 번뇌 욕망 등 모든 형이상학적인 것들을 함축한다”⑥ 이 말은 결국 진정한 사진의 재현 대상은 보이는 인식 대상이 아니라 안 보이는 형이상학적 대상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데 이때 사진은 사진이 외시하는 상황 설정(픽션)을 통해 안 보이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환원시키는 역할을 한다. 좀 더 구체적인 메시지의 전달 과정을 언급해 보면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 작가의 의도와 서술적 상황 설정 그리고 관객의 이미지 읽기. 우선 작가가 표현하려는 예술적 의도나 메시지는 일상 생활의 은밀한 주제들이다. 이것들은 일반적인 앎의 영역에서 객관적 의미와 명분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경험(내적 관찰)을 통해 포착된다.
 
 다시 말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외부 대상이나 장면의 재현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측면(l'aspect de soi-meme)에 대한 시각화로 간주된다”.⑦  이와 같이 포착된 감각적 음색에 대한 사진적 재현을 위해 작가는 “사진을 경험적 전달체로 이용한다”.⑧ 그러나 그는 이러한 설정에 한계를 가지는 전통적 방식(한 장의 단편적 상황)을 탈피하여 시퀀스 방식을 통한 서술적 상황을 전개시킨다. 이때의 상황은 작가의 주관적 상황 묘사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우리 모두가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는 “공유된 주관성”에 관계한다. 미셀 푸코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진들의 경험은 나를 유혹한다. (...) 사진들이 마이클스의 경험에 빚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상) 그의 경우인지 나의 경우인지 스스로 자문해 본다”.⑨ 라고 언급하고 있다. 결국 마지막 단계의 관객의 입장에서 본 사진은 “유일한 의미와 유일한 도덕 혹은 유일한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응시자 각자의 관점이나 경험에 따라 번역되는 사건이나 상황의 연속으로 이해된다”.⑩ 
 
위와 같이 작가의 주관적 경험으로부터 포착된 내재적 형상은 관객 스스로의 경험적 연상에 의해 전달된다. 그때 관객의 사고-순환을 유도하는 상황 설정은 단지 응시자 각자의 경우로 환원시키는 수레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위해 마이클스는 방법적으로 영화적 시퀀스를 도입하고 또한 분명한 상황 설정을 위해 텍스트를 사진에 첨가한다. 이런 경우 사진은 더 이상 장면 묘사의 시각적 전달체가 아니라 상황 전달을 위한 일종의 설치 역할을 한다. 원래 사진은 전통적으로 생생한 현실을 재생하는 자료적 혹은 복사적 기능을 가지며 반대로 그림은 주관적이고 상상적인 비 현실을 암시하는 “재현적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여기서 마이클스는 사진의 기능을 그림의 기능으로 전이시키고 있는 셈이다. 결국 작가는 사진적 매체가 가지는 재현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도 속에서 사진의 전통적 관습을 분명히 거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진의 연속 장면들은 듀안 마이클스의 사진 시퀀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19세기부터 몇몇 사진가들은 연속적인 재현 방식을 도입하였다 : 단순한 서술이나 알레고리를 위한 피터 로빈슨(P. Robinson)의 합성 사진들, 동작과 움직임의 재현을 위한 뮈브리츠의 연속 사진들이나 20세기 초 미래주의자들의 사진들 혹은 다양한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잡힌 입체파 양식의 사진들, 이러한 사진들은 비록 영화적 방식이 아니라 할지라도 여하간 역사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연속 사진들이었다. 이때 사진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시간의 지속성과 공간의 형태 변화를 묘사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 그러나 마이클스의 시퀀스가 의도하는 것은 이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영화적 서술 구성이다. 다시 말해 시각적이고 조형적인 장면이나 혹은 어떤 특정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시퀀스 방식을 동원하여 관객이 “서술적 논리”를 야기시키려는 의도를 가진다.
 
거기서 관객은 스스로 자신의 함정을 파면서 상황적 울타리 뒤편에 은닉된 무엇(생성)을 발견할 것이다. 사실상 우리들의 기억은 언제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러한 기억의 동공을 보완하려는 심리적 현상 즉 “논리적 기억”을 작동시킨다. 그래서 마이클스가 만든 장면들을 보는 관객은 “자신의 논리적 기억을 동원해서 자신의 어떤 이야기를 꾸미고 싶어한다”.⑪ 그러나 이러한 논리적 서술 구성은 관객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서술 공간으로 열려져 있는데 이는 연속적 사건의 점진적 전개를 가지는 영화의 지속성과 분명히 구별된다.
 
듀안 마이클스 사진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텍스트를 사진에 첨가하는 행위이다. 이미 60년대 말부터 마이클스는 자신의 사진에 단어나 문맥을 기입하여 더욱 더 이미지의 서술적 측면을 풍부히 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의 도입 이유는 근본적으로 한 장의 사진으로 작가의 사고를 표현하는데 불충분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러한 행위는 당시 거의 신성 불가침으로 간주된 전통적 사진의 순수 이미지에 일종의 신성 모독이 되었다. 그러나 텍스트와 사진 이미지의 조합은 70년대 이후 특히 개념미술에서 중요한 예술적 전략(이미지-텍스트)이 되었다. 원래 사진의 텍스트 첨가는 특히 광고 사진에서 사진이 내포하는 모호한 함축적 의미 즉 내시(connotation)를 축소하여 사진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마이클스의 텍스트 첨가는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객의 자유로운 상상적 항해를 유도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때 도입된 텍스트는 비록 작가의 주관적 관점에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관객 자신의 주관적 상상 속에서 상황적인 사고-순환을 가지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방식은 자신(작가)의 경우를 다른 사람(관객)의 경우로 바꾸는 “주객 전도의 역할”을 하며 궁극적으로 작가와 관객의 “교차된 경험”을 유도하고 있다.⑫
 
결국 마이클스의 사진 활용은 외적 대상에 대한 기록이 아닌 일상 생활에 은닉된 내재적 형상의 재현에 있다. 방법적으로 시퀀스를 이용한 서술적 상황 전개와 의도적인 연출사진 그리고 미지의 비 현실적 세계로의 열린 공간 구성(사진 1) 등은 당시 그 누구도 가지지 않았던 탁월한 작가의 상상력을 말해준다.⑬ 특히 작가가 만드는 시퀀스의 소재들은 신비, 환영, 기적, 불가사의, 공포, 동성애⑭ 종교, 천국, 예수 등과 같이 거의 대부분 보이지 않는 세계의 형이상학적 대상들(초현실적이고 신비적이고 환상적인)이다. 거기에 작가는 자신이 카톨릭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물질 사회와 집단 사회의 지배 도구로서 이용된 종교적 억압과 폭력을 조롱적 방식으로 은밀히 채색하고 있다(사진 2 시퀀스). 오늘날  합리주의와 과학적 논리 그리고 그 절대적 이성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멀리 추방된 수많은 존재들, 그것들은 의심할 바 없이 언제부터인가 집단 통제를 위해 원천적으로 말살된 우리 모두의 공통된 망각들이다. ●
 
<주요 참고 도서>
* Marco Livingstone, Duane Michals, Photographe de l'invisible, Edition de La Martiniere. Paris, 1998.
* Duane Michals, Texte de Renaud Camus, Photo Poche, C.N.P., Paris, 1988.
* Michel Foucault, "La pensee, l'emotion", Duane  Michals, photographies de 1958 a 1982, cat., Muse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Paris, 1982.
* Changements, Photographies et textes de Duane Michals, Edition Herscher, Paris, 1981.
* Vrais Reves, Editions du Chene, Paris, 1977.
 
주)
① Henri Van Lier, Histoire de la photographie, cahier du cinema, Paris, 1990, p. 여기서 "내재적(內在的 immanente)"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인 형상(forme)이 우리의 의식에 드러나는 것을 말하는 "외재적(外在的)"이라는 의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의식 밑에 잠재된 비구체적인 상태를 말한다.

② Ibid.

③ 니콜라 스타엘, 폴 클레, 알베르토 자코메티, 장 뒤뷔페, 프란시스 베이컨, 앤디 와홀 또한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위대한 작가들의 공통된 메시지는 전통적 코드의 이탈과 전복을 말하는 비정형의 “형상 이탈”로 규정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내재된 형상의 시각적 재현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대상의 재현은 더 이상 사실주의가 아닌 개념이나 표현에 관계한다.

④ 단지 인화지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물질로서의 사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 천 유리 모니터 프로젝트 등 모든 물질 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물질 이전의 비 물질적인 사진을 말하는데 손으로 그려진 사실주의와 반대로 렌즈에 의해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사실주의를 사진적 사실주의(The photographic realism / Le realisme photographique)라고 할 수 있다.

⑤ 관객의 논리적 사고 순환 후 발생하는 돌발적인 감정을 말한다. Texte de Mlchel Foucault, "La pensee, l'emotion", Duane  Michals, photographies de 1958 a 1982, cat. Muse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Paris, 1982.

⑥ Marco Livingstone, Duane Michals, Photographe de l'invisible, Edition de La Martiniere. Paris, 1998.

⑦ Ibid.

⑧ Ibid.

⑨ Texte Michel Foucault, op. cit.

⑩ Marco Livingstone, op., cit.

⑪ Texte Michel Foucault, op. cit.

⑫ Marco Livingstone, op., cit.

⑬ 비록 듀안 마이클스의 사진들이 지나치게 담백하고 솔직한 감성으로 재현되고 가끔씩 어설픈 표현들을 가진다고 비난받음에도 불구하고 사진들은 오늘날 현대 미술(개념 미술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차갑고 냉정하고 무기력한 측면과는 반대로 순수하고 솔직한 감정을 던지면서 대중과의 강렬한 교감을 주고 있다. 70년대 개념 사진의 선두주자로 간주되는 듀안 마이클스 사진은 거의 모든 재현 예술에서 형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개념적인 측면에서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현대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의 연속(시리즈)이나 이미지와 문맥의 조합(이미지-텍스트)은 이러한 시퀀스 사진의 영향을 잘 말해주고 있다.

⑭ 동성애는 듀안 마이클스 사진에서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이다. 자신이 동성연애자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의도는 종교에 의해 추방된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면서 단지 이성만 선택되고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카톨릭 종교와 집단 사회의 가치관을 전복시키는데 있다. 역시 동성연애자였던 미셀 푸코(1984년 에이즈로 사망)는 자신의 책 ‘성의 역사’에서 “과거에 남색은 일시적 이탈이었으나 이제 동성애는 하나의 인간 유형이다”라고 폭로하고 있다. 원래 동성애는 정상적인 인간 본성의 한 유형이었는데 집단 사회 체제 유지를 위해 오랫동안 억압 대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 농경 사회에서 인구 증가의 노동력 재생산을 중요시하는 계급 사회에서 종교와 관습은 일부 일처제를 강압적으로 법제화하였고 상대적으로 소수의 동성애는 추방되고 억압되었다.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사진 1) 빛을 발하는 남자, 1969 년
(사진 2) 시퀀스, 뉴욕에 나타난 그리스도 텔레비전에서 종교 위선자가 된 그리스도
무허가 낙태 수술실에서 죽은 젊은 여자를 보고 슬퍼하는 그리스도
동성연애자를 보호하는 그리스도
브루클린가에 사는 우크라이나 출신 할머니와 함께 개 먹이 통조림을 먹는 그리스도
강간당하고 있는 여자를 보고 있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뒷골목 어느 미친놈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두 번째 강생이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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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테마 사진과 글의 따로 국밥
 
  사람이 살다보면 뭔가 남기고 싶고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갔을 때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 경우라든지, 어떤 상황이 인상적일 때 혹은 괴로울 때 흔히 일기 형식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그때의 심경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흔하고 또한 오랫 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별히 시(詩)적 형식을 빌리지 않는 한 이러한 방법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왜냐면 뭔가 남기고 싶은 대상들이 아쉬움이나 애석함, 무기력하고 허탈한 일종의 공허함, 갑작스런 충동 혹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거나 당해야하는 상황 등 대부분의 경우 사실상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음색(tonalite)이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상황같이 불확실하고 추상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것들을 언어 대신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다소 미술에 소질이 있을 경우 화폭에 자신의 심경을 재현(특히 추상적 방법으로)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표현은 일반적으로 주관적인 번역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사실상 자신도 그러한 표현적 번역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비록 추상적인 것이지만 뭔가 재현할 대상이 있었다는 사실(존재의 형이상학적 대상)인데, 그것은 현상학적으로 말할 때 장님이 추리하는 코끼리의 실체 혹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술에 소질이 없어 카메라로 그것을 재현하려고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 알다시피 특별한 소질이나 기술 없이도 누구나 카메라로 대상을 녹음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인화도 해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방법은 어렵다. 차라리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쉽다. 아니 황당하다. 왜냐하면 카메라는 최소한 찍는 순간만큼은 어떠한 번역도 허락하지 않는 너무나 단순한 기계이면서 동시에 일단 결정된 대상에 대하여서는 무차별하게 기록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작가의 번역 방법은 사실상 파인더로 들어오는 대상의 선택적 방법 외에는 없다.1) 그러나 시각적 재현이라는 장르에서 사진은 오랫동안 그림의 형식에 동화되어 왔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진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타인에게 내 보일 때 전시, 카탈로그, 서명, 판매 등의 최소한 외형적으로 사진을 그림화 하고 또 그러한 사진 작품이 출현했을 때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림의 양식에 따라 작품의 제목과 주제 그리고 적절한 해설(분명한 정답 ?)을 찾는다. 사진 비평 역시 마치 손으로 그려진 그림 이미지에 대한 분석적 담론을 행하듯이 거의 정확히 그림의 비평 양식을 따른다.

  그러나 사진은 근본적으로 미술과 다른 매체다. 우선 그 진행 과정에서 그림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재현하려고 할 때 마치 베틀에서 한 올 한 올 엮어 직조를 하듯이 혹은 벽돌을 쌓아 올리듯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붓 터치의 확산에 의해 완성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림을 이루는 최소 단위를 “조형적 세포”라고 할 때 사진의 경우는 “광자(光子)적 세포”라고 한다.2)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라도 사진을 이루는 세포들은 빛에 의해 동시에 생성되고 또한 동시에 확산되기 때문이다. 그처럼 그림적 사실주의와 사진적 사실주의3)는 본원적으로 서로 다른 출현 조건으로부터 생성되기 때문에 결국 의미적으로도 분명히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림적 사실주의는 세포의 확산에 따른 작가의 필연적인 “번역”을 허락한다.
 
회화의 극사실주의가 말해주듯 작가가 아무리 대상과 똑같이 모사한다 하여도 완성된 그림 이미지에는 최소한의 자신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림은 그 메시지가 객관적 의미를 가지든 혹은 무의미(탈 의미 즉 음영의 불특정 의미)를 암시하든 재현되는 대상 위에서 적어도 의도적인 번역에 의해 완성된다고 할 수 있고, 그때 작가의 예술적 의도와 완성된 이미지와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일 대 일” 대응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그림은 비교적 분명한 회화적인 메시지를 이미 표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보다 정확하고 올바른 작가의 예술적 의도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작품에 첨부되는 비평문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래서 비평은 원칙적으로 작가의 의도와 그 의도로부터 번역된 작품(그림적 사실주의) 사이에서 작품이 표명하는 메시지에 대한 일종의 보조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광자적 세포를 갖는 사진적 사실주의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의도 혹은 번역을 그림처럼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선택된 대상의 절대적 모사(caaete)뒤에서 은닉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진은 번역적 재현이 아닌 함축적 재현이다. 그래서 재현된 사진적 사실주의에서는 그림의 경우와는 달리 작가의 의도가 언제나 이미지의 모호한 함축적 의미 즉 내시(혹은 공시, connotation)의 형태로 나타난다. 쉽게 말해 대상의 절대적 닮음(analogon)만을 갖는 사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그림의 분명한 “일 대 일”의 시각적 번역과는 달리 언제나 찍혀진 대상이 상징하거나 암암리에 객관적으로 약속된 의미 즉 코드의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그림 역시 상징적 메시지를 표명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진은 근본적으로 그 절대적 외시(denotation)로부터 “무엇을 뜻한다” 혹은 “무엇을 상징한다”라는 의미적 코드(symbol)에 묶이게 된다.4) 달리 말해 사진적 메시지는 처음부터 상징이라는 우회적인 틀 속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흔히 작가들은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사진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분명히 인정되는 함축성 즉 공동체적 코드에 동화시키기도 하며, 반대로 관객 역시 이러한 문화적 사회적 코드 속에서 공통된 메시지를 찾으려 한다.
 
사실상 우리는 이러한 사진적 메시지(특히 다큐멘터리 사진)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림과 달리 사진이 쉽게 진부하고 판박이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판박이 혹은 붕어빵의 형상(form)들은 사진이 찍는 자와 찍히는 자 그리고 구경꾼 같은 관객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약속된 메시지(studium)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판박이의 주제는 언제나 모호하고 유동적이다. 왜냐면 아무리 과거에 드물고 특이한 사진 주제라도 오늘날 이미 보편화된 주제(앎)라면 그것은 하나의 붕어빵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왕따”라는 개념은 이미 보편화된 사진적 주제 즉 판박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이 아직 인식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현실에서 징후로서만 나타난(말하자면 음의 세계에서 존재했던) 과거 시대에는 의심할 바 없이 특별한 사진의 주제였을 것이고 아마도 당시 위대한 사진작가(장님)는 자신의 감각적 지팡이로 이미 이러한 개념을 재현했을 것이다.

  사진적 사실주의에서 일반적으로 내시는 이미지가 지시하는 외시의 조건에 달려 있다 : 함축적 메시지인 내시가 증폭되면 사진 메시지는 모호해지고 반대로 축소되면 그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초보적인 현시 광고의 첫 조건은 텍스트를 동원하여 최대한 사진 이미지의 내시를 극소화하는 것인데 내시를 무력화시키는 사진적 조건은 사실주의와 상징주의 그리고 쇼크 사진이다.5) 왜냐하면 광고는 그 속성상 메시지가 누구에게나 즉각적으로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카메라에 담겨지는 함축적인 메시지를 분명히 하면 할수록 사진은 결국 광고와 같이 어떤 목적을 위한 사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익히 약속된 메시지는 사진의 형식적인 측면(조형성, 기술성, 솜씨 등)에서 전통적으로 인정되는 작품성을 가질지는 몰라도 사실상 우리에게 감동은 주지 않는다.6)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감동을 주는 좋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보다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이 빈약한 매체라는 사실은 보다 엄밀히 말해 예술적 표현 방식에 있어 사진적 사실주의는 극히 제한된 매체라는 사실에 관계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예술적 의도와 재현된 이미지가 함축하는 의미와의 관계가 사실상 “일대다수”의 관계를 갖는다는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림적 사실주의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를 외시적으로 표명하고 있지만 사진적 사실주의는 이미지 그 자체인 외시적 메시지 외에 어떠한 시각적 번역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함축적으로 모호한 다수의 번역 가능성만이 내포되어 있을 뿐이다. 그림을 그릴 때 화가는 붉은 사과를 자신의 감정에 따라 파란 사과로 그릴 수 있지만 사진은 단지 붉은 사과만 재현할 뿐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재현된 붉은 사과는 함축적으로 찍혀지는 상황이나 조건 혹은 첨부된 텍스트(주제, 설명, 비평 등) 그리고 관객의 주관적인 관점(지시론적 관점)에 따라 달리 읽혀 질 수 있다.
 
 예컨대 신문에 실리는 많은 보도 사진은 편집자의 의도나 텍스트의 조합에 의해 하나의 의미만을 갖도록 인위적으로 편집된 종속 사진인데, 어떤 경우에는 원래의 사진 메시지가 전혀 다른 메시지로 둔갑되는 경우가 바로 이러한 특수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사진은 그 자체의 외시 만으로 정확한 전달적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코드화(codific -ation)된 형식, 달리 말해 함축적 의미를 최소화시키는 보조적 장치(대표적으로 텍스트의 첨가)가 필요하다(Roland Barthes). 그래서 사진은 근본적으로 조작과 왜곡 혹은 인위적인 의미 변경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사진을 도용하는 현대미술의 주요한 테마들 중 하나).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진과 관객을 이어주는 사진 비평은 마치 신문사의 편집장이 사진이 가진 다변적 의미들 중 자의든 타의든 그의 의도에 가장 적절한 의미만을 노출시키기 위한 편집과 같은 역할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진 비평은 그림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관객으로의 의미적 전달에 거의 절대적 역할을 한다. 더구나 일단 사진과 텍스트가 조합되면 사진의 기록성과 증거성 앞에서 우리들의 “논리적 사고”는 텍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사진은 본원적으로 모호한 전달 매체이기 때문에 비평은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코드화 작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만큼 의미적으로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경우 사진과 글의 관계는 따로 국밥이다.

  또 다른 따로 국밥의 원인은 사진이 작가의 근원적 메시지 즉 음영의 “무의미 혹은 탈 코드”로부터 재현되었을 때 그것에 대한 “코드화된 비평”으로부터 온다. 사진은 함축적 번역만을 허용하기 때문에 작가의 정확한 의도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텍스트(비평)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작가의 사진적 메시지가 코드화된 의식(틀)에서 올수록 비록 그 메시지가 사진의 함축적인 장치 속에 은닉되어 있다 하더라도 비평가나 관객의 의미적인 눈에 그것이 쉽게 읽혀 질 수 있다. 그러나 코드의 영역을 떠난 음의 대상들은 객관적 논리로 코드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특별한 작가의 주관적 해설이나 정확한 비평가의 설명 없이는 사실상 의미적인 코드에 익숙한 관객의 눈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더구나 사진은 절대적인 대상과의 닮음 이외에 어떠한 번역적 재현(그림에서는 가능한)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의 비논리적인 메시지는 더욱 더 은닉되어 있다. 이는 오랫동안 광고나 보도사진 혹은 대중사진과 같이 코드화된 사진 이미지 그리고 그런 비평에 익숙한 우리들의 맹목적인 사진 읽기에도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래 전에 자신의 고향인 시골을 떠나 대도시에 살고 있는 어떤 사진 작가가 대도시의 냉정하고 비정한 인간 관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정 넘치는 시골 노인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카메라로 재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고향에 내려가 고향 노인들을 찍어온 사진들이 있다(도판1). 우선 오늘날 우리들의 객관적인 코드에서 짐작해 볼 때 흔히 노인의 웃는 모습이나 거기서 보이는 몇 남지 않은 이빨과 주름살, 문화의 옷을 입지 않은 할아버지의 남루한 차림새와 때묻은 골동품 같은 물건, 금방이라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상기시키는 할머니의 자연스런 제스처 등에서 풍기는 소박한 이미지일 것이고, 또한 거기서 즉각적으로 “노심(老心)”이라는 서정적이고 추상적인 메시지 즉 하나의 분명한 의미적 코드가 읽혀 질 것이다. 또한 이때 조합되는 비평은 이러한 사진적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코드화된 비평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정작 고향 노인들과 만나 느낀 것은 자신이 찾고자 했던 시골노인의 소박한 인간미가 아닌 뭔가 잘못된 노인들의 비정한 눈초리나 경계의 시선(?)에서 감지되는 형용할 수 없는 모순된 상황이었다. 어쩌면 비교적 교육의 기회와 문화와 접촉이 잦은 대도시의 노인들에게서 오히려 순수한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을 지 모른다 : 오늘날 시골 노인들의 가치관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긴 하루의 고독을 메우는 수단과 또 그들에게 세상 정보를 제공하는 유일한 채널은 사실상 대중 매체 특히 텔레비전 뿐이다. 몇몇 사회적 치부가 단지 우리 사회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사회 전체의 단면인양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엄청난 뉴스와 고발기사의 홍수는 결국 획일화 된 맹목적인 믿음과 잘못된 판단, 물질에 대한 절대적 가치와 숭배 또 그것을 위한 지나친 자기 방어와 타인에 대한 경계 등 변질된 가치관을 그들에게 고착시키게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늘날 대도시의 정신적 병폐 현상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의 이성적 구조에서 시골 노인의 왜곡된 가치관은 쉽게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대도시와 시골이 역전된 듯한 다소 황당하고 모순된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의 눈에 비친 시골 노인의 얼굴은 괴물이었고 이러한 괴물을 재현하기 위해 그는 마치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의 사진처럼 의도적으로 가능한 한 엉뚱하고 이상한 노인의 모습을 찍었다.
 
그러나 이렇게 재현된 사진은 진짜 괴물 같은 노인이 아니라 단지 이상한 노인의 모습일 뿐이다. 왜냐면 미술의 영역에서 이러한 괴물의 재현은 역사적으로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인간 유형의 변태나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인간 실존의 왜곡된 모습과 같이 분명한 시각적 언어로 번역될 수 있지만 사진에서는 특별히 조형적인 요소(조형 사진)를 도입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번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적 실체인 괴물의 사진적 재현은 단지 현실의 자국인 징후(index)로만 가능하다. 이와 같은 자국의 재현이 바로 사진이다. 그래서 음의 세계를 재현한 사진적 이미지를 객관적인 코드의 눈으로 보면 사진은 일종의 수수께끼가 되고, 또한 징후로서 암시된 사진적 메시지를 코드화된 비평으로 설명한다면 사진과 글의 관계는 분명히 따로 국밥이다. 결국 이 작가가 재현하고자 한 괴물은 코드가 없는 하나의 징후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코드화된 정태적 의미가 아닌 진화적인 “동태적 의미”로 이해된다. 이는 곧 음의 세계에 존재하는 진정한 사진의 대상인데 이때 그 존재의 출현을 철학적 용어로 “내재적 형상(La figure immanente)의 재현”이라고 한다. ●

주)
1)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오늘날 비평가들은 사진을 그림과 비교하여 “빈약한 사진(La photogra -phie pauvre)”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진은 그 조형성에 대하여 절대적인 한계를 가진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외시적으로 절대 빈약한 표현 매체임을 시사하고 있다. Dominique Baque, La photographie plasticienne, Regard, Paris, 1998, chapitre I.

2)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Cahier de la photographie, Paris,1987 에서 인용된 용어.

3) 사진(The photograph)은 분류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 흔히 물질(특히 인화지)에 관계하는 반면, 사진적 사실주의(The photographic realism)는 비물질적인 실체로서 사람의 손이 아닌 기계적 방법에 의해 생산된 총괄적인 복사 이미지를 말한다. 예컨대 캔버스에 복사적으로 나타난 사진 이미지나 혹은 디지털 화면에 출현한 사진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사진적 사실주의라고 언급해야 한다. 이는 손에 의해 복사된 그림적 사실주의와의 분명한 구별을 위한 개념적 용어이다. 그러나 사진과 사진적 사실주의는 넓은 의미에서 사실상 동의어로 이해된다. 특징적으로 이러한 비물질적인 실체의 출현은 언제나 종이, 천, 캔버스, 화면 등 물질적인 것을 동반하고 있다.

4) 사진을 대다수의 19세기 사진과 같이 그림을 위한 대상의 복사적 기능(icon)으로 보는 관점은 제외하고 

5) Roland Barthes, L’obtus et l’obvie, Cahier de la photographie,Paris, 1977 참조

6) 엄밀히 말해 이러한 유형의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창조적 의미에서 볼 때 작품성과 예술성은 이론적으로 분명히 다르다. 왜냐하면 적어도 예술은 발견되지 않은 대상에 대한 감각적 추적이기 때문이다(존재론). 감동은 반복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움에서 온다. 감동을 주는 것 혹은 느낌을 주는 것, 그것은 진정한 작가의 예술적 의도다. 그러나 감동을 주는 모든 사진 이미지들을 예술사진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가령 광고지 귀퉁이에서 발견되는 푼크툼는 단지 찍혀진 대상과 관객과의 주관적 관계에서만 이해될 뿐이지 작가의 의도에 의한 모두에게 공유된 메시지는 아니다. 영상 이미지에서 푼크툼과 작가의 예술적 의도는 사실상 별개의 문제이다.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김선희, 낯선 초상 시리즈 중,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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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서 혹은 육교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의 초라하고 측은한 모습들 특히 오늘날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불구를 강조하며 구걸하는 소위 장애인이라는 사람들의 거의 반 폭력적인 행위들,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존재들의 출현에 관해 우선 부정적이다.
 
이와 같이 신체적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경우 소수의 예외적인 존재 혹은 부속적인 걸림돌로 간주되며 결국 우리에게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집단이라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는 우월과 열등이라는 부등호의 원칙이 성립하는데 오랫동안 이러한 원칙에서 소위 가진자의 “동정”이라는 우월적인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동정이라 함은 예컨대 구걸하는 맹인에게 동전을 적선한다든지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 등과 같은 선의적인 제스처들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소외된 자에 대한 의도적인 배려는 사실상 집단과 전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편견과 불평등의 신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행위는 거의 상징적으로 “인본주의”의 명분 아래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 모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강압적인 원칙에 복종되어 있다. 이러한 원칙에는 두 가지 교묘한 지배 논리가 있다 : 하나는 “평등”이라는 집단 우선적인 개념이고 또 하나는 “정상”이라는 모든 대상에 대한 절대적 가치관이다. 원래 평등과 정상은 관용(똘레랑스 tolerance)① 이 아닌 불관용(앵똘레랑스 intolerance) 즉 특정한 집단 이기주의를 위한 마스크이고 계몽의 이성이 낳은 과학적 사고(합리와 경험)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근대 국가 지배 개념의 산물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해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대상들은 그 대상이 훈련된 우리의 인식으로 의식할 수 있든 없든 여하간 “그냥 있는 그대로” 즉 서로 절대 가치의 우위를 측정할 수 없는 불평등한 존재로 출현할 뿐이다. 다시 말해 원래 존재는 “그대로의 출현”이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평등을 빙자한 “민주”와 보편 타당성을 원칙으로 하는 “정상” 다시 말해 어떠한 불순도 허용하지 않는 획일성 혹은 통일성이 강요하는 절대적 흑백 논리는 오직 집단을 위한 이성이라는 시퍼런 칼날을 앞세우는 사변적 폭력으로 간주된다. 오늘날 물질 사회 속에서 특히 유일하게 자본주의만 부화된 한국의 물질만능의 현실에서는 오직 민주와 평등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할 뿐이다. 마치 아메리칸 인디언의 입장에서 볼 때 콜롬부스는 침략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콜롬부스는 언제나 발견자 혹은 정복자(또한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의 우월성)가 되듯이 자신과 다른 상대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 정상과 비정상만 인정하는 흑백 논리의 세상 그것은 바로 평등과 민주에 대한 맹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원래 진보는 소수를 위한 개념적 포용이지 다수를 위한 논리적 반전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러한 개념을 언급해 보자. 종교적 전도라는 명목으로 지하철 안 많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멀쩡한 외모를 가진 어느 독실한 교인의 침튀기는 설교, 오직 기존 정권의 전복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야당 인사의 정치적 폭력, 북한 사회주의 관점에서 본 남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사회를 전복하려는 과격한 노동 파업과 그 연대 투쟁, 이러한 명분과 주장들은 우리의 정상적인 의식에서 마치 지하철 안에서 구걸하는 장애인과 같이 비정상적 존재의 돌출로 간주되며 또한 사실상 거의 설득력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것들은 단지 정상이 의도적으로 구획해 놓은 상대적인 관점일 뿐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진자 혹은 기득권자의 지배논리로 이해되는 동정이 아니라 또한 옳고 그름을 가리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획일화되지 않는 다양한 사변적 “공존”이다. 이러한 공존은 정상과 비정상, 강자와 약자, 혹은 다수와 소수의 존재론적인 일치(관용 혹은 포용)를 말하고 있다 : 예컨대 두 눈을 가진 사람이 외눈박이 세상에서 장애인이 되듯이 정치에서 우파의 눈에는 좌파가 적이 되며 좌파의 관점에서 우파 역시 적이 된다. 또한 심지어 우리가 흔히 위험하다고 하는 소수의 극좌파 혹은 극우파의 지배 이데올로기 안에서 온건파나 중도파의 노선은 오히려 억압되고 망각된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견인데 후설은 “우리는 언제나 중성인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언급하면서 이러한 것의 상황을 이미 암시하고 있다.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들이 누설하는 은밀한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공존” 혹은 “관용”에 있다. 그녀의 많은 사진들이 공통적으로 외시하는 비정상적인 장애인들은 이러한 사변적인 징후를 암시하는 가장 좋은 모델로서 선별되었을 뿐이다. 쉽게 말해 그녀의 사진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회적 지표로서의 다큐멘터리도 아니며 장애인에 대한 사진이 사회적 현상을 고발하면서 또 다른 사진의 사회적 역할을 호소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동정이나 인본주의적 명분을 앞세우는 계몽적 사진은 더욱 더 아니다. 더욱이 우울증이나 강박관념과 같은 자신의 정신분석학적인 성향에 대한 은유적 메시지나 불행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도 아니다. 그녀에게 모델로서 장애인은 흔히 우리가 정상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누락된 존재의 가장 확실한 출현이기 때문에 사진은 단지 의도적으로 또한 노골적으로 이러한 “존재적 진실”을 폭로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나 아버스의 사진들은 서로 대립되는 두 세계의 출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예 : 사진 2). 이성에 의해 규정된 “정상”의 세계(보이는 세계)와 “비정상”의 세계(안 보이는 세계)를 병치하면서 소위 괴물이라고 간주되는 비정상적인 존재들의 출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 신체 불구자, 거인과 난쟁이, 정신박약, 동성연애자, 성전환자 등 마치 생물학적 도감을 보듯이 공통적으로 뭔가 엉뚱한 괴물로 나타난다. 정면으로 출현한 이들은 장애인 이전에 하나의 인간 유형으로 마치 누군가(조물주) 만들어 놓은 피조물로서의 숙명적인 존재로 규정된다(사진 1, 3, 4). 이를 위해 그녀의 촬영방식(거의 50mm 표준 렌즈 / 초기에는 소형 카메라, 60년부터 6 x 6 필름을 사용)은 일반적이고 도식적인 단순한 방식을 하고 있고 또한 그 구성에서도 대칭성과 정면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폭로는 방법적으로 역설적이고 동시에 대조적인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결국 그녀가 포착한 것은 대상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음의 존재들(ombres)이었다. 이러한 존재들은 “이성의 눈으로 볼 때 공통적으로 비정상적이고 산발적(소수)이고 또한 징후적인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이러한 것들은 사회가 규정한 범주 밖의 괴물, 기형, 히피와 같은 비정상적인 존재들 즉 프리크(freaks)들로만 나타난다. 원래 어원학적으로  프릭크는 알려지지 않은, 불명의 혹은 미지의 어떤 것을 지칭하고 그들은 본원적으로 ‘이상한 혹은 엉뚱한 것(oddity)’ 즉 부등의, 부조화의, 기수의, 짝이 맞지 않는, 비스듬한, 삐딱한, 만사가 신통치 않은 불완전한, 부족한 등 공통적으로 어떤 비정상(imparite)에 관계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들은 모두 조물주의 동등한 작품으로 원래 정상적인 존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획일성과 보편성 그리고 타당성이라는 집단적 개념에 의해 소외되고 억압되어 ‘비정상’으로 치부된 것들이다.
 
사실상 정상과 비정상은 상대적인 것이다 : 가령 모두가 왼손잡이인 집단에서 오른손잡이의 출현은 상대적으로 기형의 분류에 속할 것이고 또한 키 작은 난쟁이 집단에서 키 큰 사람 역시 기형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성혼을 원칙으로 하는 집단에서 이성의 결혼은 물론 금지될 것이다. 그와 같이 비정상은 단지 한 집단이 선별적으로 규정한 편견에 의한 것이다.”② 그래서 아버스의 인물들은 단순한 장애인의 유형학적 진술이 아니라 소외된 존재의 누설로 간주된다. 역설적 방법으로 매조키즘(피학대 음란증)적인 비관주의적 시각에서 세상의 ‘추함’을 의도적으로 들추어내는 것은 일종의 불행의 신호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특별히 그녀가 의도적으로 활용한 과도한 플래쉬는 모델을 더욱 더 경직스럽고 인위적이고 순진한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는 낮보다 밤에 오히려 더 많은 기형(oddity)를 생산한다는 유태인의 사고에서 온 논리이기도 하다.

  1971년 여름 그녀가 자신의 집 욕조에서 신경안정제인 바르비투스산제를 먹고 동맥을 끊고 자살하기 얼마 전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창가에서 보이는 뉴욕 센트럴 파크를 인간 동물원이라고 규정하고 거기서 산보 중인 사람들을 마치 각기 다른 동물들의 종족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특별한 시각은 사회학적 관점 이전에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아버스의 사진은 정상적인 우리들의 이성의 눈(코드)으로 이해하기 힘든 작가 자신의 고유한 표현이 있으며 또한 이를 위해 응시자의 눈에 원칙적으로 이러한 시각의 개종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기형인, 늙은이, 정신박약자와 같은 비정상인은 사실상 정상인과 같은 인간 존재의 원초적인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은 단지 집단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한 다수의 보편적 기준에서 그들을 예외적인  존재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신호로서 나타난 그들의 출현은 열등한 종족의 괴물이 아니라 모두에게 감추어진 우리의 ‘이중적인 얼굴’임(Norbert Bernard)과 동시에 오랫동안 망각된 존재의 진실 즉 우리 모두의 ‘증세와 기념비’(Henri Van Lier)가 된다.”③
 
  근본적으로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집단 사회(특히 물질사회)가 규정한 획일적인 가치기준에 대한 의심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경험했던 패션사진 작업에서 발견한 것은 사회적 빈부차이나 물질 만능사회에 대한 체제적인 모순이 아니라 도덕과 관습을 대표로 하는 집단사회가 통일된 지향성을 위해 규정해 놓은 미(넓은 의미에서)적 가치에 대한 편파적 기준이다 : 오랫동안 우리는 이성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불행, 비극, 추함 혹은 소외를 부정하면서 언제나 인간조건의 이상적인 조화와 긍정적인 시각에 익숙하여 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것은 사회가 추구하는 우상이나 모델을 위한 강압적인 규범으로 사실상 반쪽 세상의 불관용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불행의 신호로 간주되는 비 정상인을 모델로 하여 그녀가 생물학적 관상학적 방법으로 세상의 추함과 불행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은 역설적으로 앞서 말한 억압된 존재의 폭로로 볼 수 있다.”④ 그것들은 이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오늘날 시뮬라크르임과 동시에 하나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
 
<주요 참고 도서>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김희숙 정보라 옮김, 똘레랑스, 길, 2000. (참고 : 임지현 평, 동아일보)
Doon Arbus, Diane Arbus, Aperture, New York, 1972.
Regis Durand, La part de l'ombre, Essais sur l'experience photographique, La Diffrence, Paris, 1990.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Cahier de la photographie, Paris, 1987.
La photographie comme destruction, Universite de Provence, Arles, 1993.
Diane Arbus Sans Titre, Aperture/Edition de La Martiniere, New York/Paris, 1995.
Diane Arbus, Photoraphe de presse, Aperture/Herscher, New York/Paris, 1984.
 
주)
① 똘레랑스(tolerance, 라틴어 tolerare)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무엇을 “지탱한다 혹은 감수한다(supporter)”라는 뜻에서 유래한 외래어로 이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관용”이라는 단어로 번역될 수 있다. 흔히 관용은 사전적 의미로 남에게 베푸는 너그러움이나 자선이라는 다소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개념으로 이해되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동양의 미덕을 상기시키는 단어이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개념은 어떠한 억압된 상황에 묶인 무엇에 대한 “허용”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앵똘레랑스(불관용, intolerance)”는 일반적으로 지배적이고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보다 엄밀한 단어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외래어(불어)인 “똘레랑스”는 우리의 전통적 계급사회에서 통용되었던 “관용”의 개념과는 다소 의미적인 차이를 보인다. 오랫동안 우리의 가부장적 사고에서 특히 유교문화의 미덕이라는 개념에서 이해되는 동양의 관용은 우선 가진자 혹은 지배자를 말하는 베푸는 주체와 그 수혜자인 객체와의 분명한 계급체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부처님이 베푸는 자비, 주인이 죄지은 하인이나 구속된 자들에게 주는 사면, 혹은 가진자들이 서민들을 위해 만든 빈민구제 제도 등에서 볼 수 있는 동양의 “관용”은 절대자 혹은 지배자의 선행이 피지배자에 대한 “동정”으로 행하는 일방적인 진행을 가지며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평등적인 계급체제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양의 똘레랑스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사고방식 혹은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행동의 자유를 “존중한다”라는 뜻이며 적용되는 두 개체 사이에서 주체와 객체는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물론 “불관용”은 이와 반대로 언제나 타자와의 구별 속에서 자신의 주체를 모든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놓는 절대적인 개념이다 :  일반적으로 서양의 입장에서 발견자로 기록되는 콜롬부스가 당시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의 상대적 입장에서는 침략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니체의 상대적 이론)은 이러한 관용의 상대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두 개체 사이의 똘레랑스 개념은 계급관계가 아니라 평등관계 즉 동등한 두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그 철학적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소외된 개체의 존재론적 인정(승인)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두 개체 사이의 계급관계에서 야기되는 동정이나 자선 혹은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미덕이 아니라 동등한 수평관계에서 이해되는 “상호 존재의 일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경률, “똘레랑스와 사진”, 사진비평, 2001년 가을호, 타임스페이스, 서울.

② 같은 책.

③ 같은 책.

④ 다시 말해 그들의 흑백논리에서 이러한 소외된 존재들은 비정상적인 존재들이다. 결국 물질과 집단을 배경으로 하는 양의 세계에서 인정하는 보편적 대상들을 정상이라 규정하고 역으로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난 소수의 비정상적인 대상들을 괴물로 간주하여 억압하고 멸시하고 소외시키는 편견적 사고를 불관용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관용은 상대적인 관점으로 이러한 비정상적인 것들을 인정하면서 정상과 비정상의 공존 즉 존재의 다양성을 원칙으로 하는 포괄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전자의 시각을 통일된 하나의 논리만을 인정하는 “존재의 획일성”에 관계된다는 의미에서 “불연속(discontinuite)”이라고 하며 반대로 후자의 경우는 보이는 세계를 관통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투시한다는 의미에서 “연속(continuite)”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조르주 바타이유) 또한 넓은 의미에서 “망각된 존재의 추적”이라고도 한다(마르틴 하이데그). (집단사회가 강요한 미적 추종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는 “추의 예찬”은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눌프 라이너(Arnulf Rainer)의 “복개(couvering)”작업에서 분명히 설명된다) 같은 책.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사진 1) 호텔 방에서 타올을 덮은 멕시코인, 1970
(사진 2) 뉴욕 브루클린 젊은 가족의 일요일 나들이, 1966
(사진 3) 뉴욕 100번지 거실의 러시아 난쟁이들, 1963
(사진 4) 뉴욕 20번지 집에서 파마를 한 젊은이,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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